프로포즈 논란 중간 정산

2014.04.15 23:09

commelina 조회 수:3756

애초에 평화로운 게시판에 망글하나 올려서 파이어를 불러온 장본인으로, 몇몇 분들이 감정상해 하시는 것을 보니 마음이 무겁습니다. 또 별 것도 아닌 걸로 쟤들 왜 저러고 치고받고 싸우냐고 느끼실 분들께는 죄송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겠지만 나름의 소영웅주의의 발로로 논쟁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이끄는게 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지금까지의 논쟁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최초의 제 문제제기는 (어떤) 프로포즈는 결혼이 결정된 뒤에 하는데, 시기상 이상하고 프로포즈하는 남자로 하여금 거짓에 가까운 '진심'을 강요한다, 이상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부는 공감을 표시하셨습니다만, 일부는 사생활이므로 제3자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사후 프로포즈가 그다지 보편적이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문화 현상 일반에 대한 비평은 제3자에 대한 간섭이 아닙니다. 댓글로도 단 바 있지만, 제가 만약 장동건의 고소영에 대한 프로포즈를 특정하여 그 프로포즈의 이상함을 주장했다면, 할 수는 있겠지만, 어찌되었든 오지랖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사후 프로포즈가 상당히 널리 퍼진 문화인 것으로 보이고, 많은 예비 신랑이 원하지 않는 사후 프로포즈로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후 프로포즈는 충분히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고, 그 문화에서 논쟁거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 입장에서는 '제3자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물론 이러한 사후 프로포즈가 제 생각과는 달리 일부의 사례에 지나지 않는다면 이 주장은 허물어질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문제와 관련한 신뢰성 있는 조사는 없는 듯 하므로 어쩔 수 없는 약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후 프로포즈의 맥락에 대하여 설명하신 분들도 계셨습니다. 의외로 결혼하는 커플들이 결혼의 결정이라는 부분은 두루뭉술 넘어가고, 바로 바쁜 결혼 준비 단계로 넘어가 버린다는 겁니다. 따라서 프로포즈의 기원과 어원을 생각하면 좀 이상하지만, 결혼의 결정 단계를 확실하게 하고 둘의 애정과 다짐을 확고하게 하는 차원에서 사후 프로포즈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프로포즈의 기원과 어원에 집착하기 보다 의식의 취지를 강조합니다.


저는 일리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위의 취지라면 약혼식이라는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 형태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분들이 말씀하시는 취지에 더 부합합니다. 그러면 현재에 약혼식은 약화되고(제가 보기에는 거의 없어진 것으로 보이고), 프로포즈가 주도적인 의례로 나타났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몇가지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제 생각에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아마도 "프로포즈가 예비신부의 판타지에 더 잘 부합하는 이벤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 근거는 직관에 의존하기는 하는데, 제 생각에는 많은 남자들은 약혼식이든 프로포즈이든 (심지어 결혼식이든) 이러한 의례에 큰 관심은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상대방이 원한다가 답이 될 거라는 겁니다. (이 주장에 최근 격화되고 있는 여성비하나 "무개념" 논란은 끼어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사후 프로포즈라는 의례는 이 지점에서 예비 신부가 원하는 "연극"이 됩니다. 부연하자면, 프로포즈의 주된 형식이 "우리는 사랑하고 앞으로 결혼할거야"가 아니고, 일방의 "(이미 결혼하기로 했지만) 나랑 결혼해 줄래"와 그에 따른 승낙과 정서적 동요이기 때문에 연극이라는 겁니다. 많은 의례가 있고 대부분의 의례들은 특정 감정을 강요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사후 프로포즈는 유독 명시적으로 거짓말(도덕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거짓말이 아니고, 결혼이 결정된 상태에서 결혼의 승낙을 묻는다는 의미에서)을 해야한다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사후 프로포즈가 이상하다고 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위화감을 크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후 프로포즈가 여전히 필요하다고 주장하려면, 프로포즈 특유의 남다른 유용성을 제시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많은 의례와 마찬가지로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는 방법은 내가 프로포즈를 원한다는 감정을 솔직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너무 나가지 않았나 하는 걱정은 들지만, 아무튼 제 결론은 이렇습니다.


그러면 프로포즈를 원하는 감정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의 결혼이 지구상의 수많은 결혼 중 단지 하나가 아니라, 둘의 사랑으로 특별해지고 유일해지는 결혼을 원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고, 프로포즈는 그 사랑을 확인하는 가장 극적인 형태라는 점이 있을 것입니다. 내 결혼에는 극적인 순간이 필요하고, 그것이 어렵다면 그야말로 연극으로라도 극적인 순간을 만들고 싶은 감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극적인 형태가 하필 (일반적으로) 남자의 구혼 - 여자의 승낙인지에 대해서는 알 것 같으면서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또다른 주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89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422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4662
52 [불판] 오늘 옥탑방 왕세자.. 그 마지막화..! [156] 이인 2012.05.24 3331
51 [짧은바낭] 방금 뜬 인피니트 성규군 솔로 뮤직비디오 티저 [16] 로이배티 2012.11.14 3344
50 솔로대첩, 관심이 생기네요.. [19] 왜냐하면 2012.12.24 3485
49 팬질하다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 새터스웨이트 2012.04.16 3515
48 이제 교회 신도도 오디션을 보고 뽑는군요 [10] 레드필 2012.12.31 3537
47 정말 너무 달다고 느낀거 뭐 있으신가요 [29] 가끔영화 2011.08.11 3543
46 [바낭] 허한 기분에서 드는 미칠듯한 지름욕구 [6] 가라 2010.08.16 3588
45 [연애바낭]참..거지같네요.. [10] 퀴트린 2011.04.20 3612
44 [듀냥/잡담] 민망하니 가장 무반응일 듯한 시간에 올리는 포풍어리광모드의 고양이. [12] Paul. 2012.10.08 3615
43 현빈 금방 군인 [7] 가끔영화 2011.03.08 3623
42 일하기 싫은 자 [11] 레드필 2010.08.03 3638
41 시어머님 환갑 기념으로 피에르 가니에르를 예약했어요+ 잡담 [2] 엘시아 2013.04.01 3642
40 매우 싼티 나는 글 [16] chobo 2010.12.09 3661
39 어제 산 만화책 간단 리뷰. [8] Paul. 2010.09.24 3697
38 부엌일 하는 시간 좀 줄일 수 없을까요(반 질문 반 잡담과 푸념) [23] 해삼너구리 2014.03.25 3726
» 프로포즈 논란 중간 정산 [55] commelina 2014.04.15 3756
36 영어 발음 킹 [10] 화려한해리포터™ 2012.07.05 3850
35 오늘 음악중심, 세븐, doc. 그리고 보아 티져 [9] ageha 2010.08.01 3857
34 버거킹 와퍼 주니어 600원에 드세요. [12] 자본주의의돼지 2011.03.31 3857
33 이성과 교제하는 법 [14] 화려한해리포터™ 2012.06.16 390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