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8.17 12:02
꽤 긴 글이 될 것 같은데요, 글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먼저 한 문장으로 적고 시작합니다. “서로를 향한 평가적 태도를 버리고 중성적으로 상대를 바라보는 훈련이, 한국인들에게 절실하다.”
한국인 오지랖 심한 거에 대해서는 뭐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명절때마다 취업했니, 결혼했니, 안 했습니다 하면 왜 안 하니, 언제 하니, 겨우 취업하면 어느 회사니, 뭐 하는데니, 연봉은 괜찮니, 결혼하면 애는 안 낳니, 일은 계속 할 거니, 애 낳으면 공부는 잘 하니… 이건 폭력입니다. 명절 전후로 이 오지랖 악습에 대한 기사가 쏟아지고 관련해 정신과 진료를 받고자 하는 이들이 일시적으로 폭증하는것만 봐도, 이것이 서로에 대한 ‘관심’이 아닌 괴상한 악습이자 엄청난 심리적 폭력임을 알 수 있죠. 뭐 먼저 떠오른 사례가 명절이어서 명절을 언급했습니다만, 굳이 설이나 추석까지 갈 필요도 없어요. 일상 속에서도 오지랖은 쏟아집니다. 머리숱이 있네 없네 피부에 주근깨가 있네 없네 쟤는 옷을 어떻게 입네 쟤가 이혼을 했네 마네…
도대체 왜 이런 문화가 생겼는지 분석하려면 사회과학적 접근이 필요하겠습니다만 그건 제가 자신있게 적을 수 있는 분야가 아니므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유가 뭐건, 이 사실 하나만큼은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한국 사람들은 어떤 대상을 ‘그냥 내버려 두는’방법 자체를 잘 몰라요.
네, 맞습니다. 방법을 모릅니다. 살찐 여자가 비키니를 입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회사에 게이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되죠?라는 질문은 실제로 제가 흔히 받는 질문입니다. 역시 아무것도 안 해도 됩니다. 나이 많은 직장 여자 상사가 화장을 너무 진하게 하고 다니는데 어떻게 생각해야할 지 모르겠다고요? 아무 생각 안 해도 돼요. 그런데 이걸 모르고, 그러니까 ‘그래도 된다는 거’를 모르고 거의 반사적으로 이것은 어떻고 저것은 어떻다고 쉴 새없이 점수를 매기고 다니는 분들이 계세요. 아니, 계시는 게 아니라 한국 사람 거의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한국인 대부분이 오지랖쟁이들이다’와 더불어, ‘오지랖을 부리는’이들 대부분이 ‘오지랖’이라고 하는 폭력을 적극적으로 ‘수행’한다기보다 ‘오지랖을 안 부려도 된다’는 사실과 ‘그게 폭력’이라는 두 가지 사실을 ‘몰라서’그러는 거다, 라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그리고 제 이 주장은 이것이 ‘교육’을 통해 개선될 수 있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확장되고요.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뱃살을 드러내고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은 여자를 보면 어떤 ‘감정’이 드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냐고요. 그럼 저는 이렇게 반문하죠. ‘평범한 몸매의 여성이 비키니를 입어도 과연 그냥 둘까?’ 정답은 단호히 ‘아니’입니다. 어떻게든, 뭐든 찾아내 ‘비평’을 할 것이 분명해요. 그리고 남이 뭘 입었건 굳이 들여다보며 자신의 소감을 이야기하는 게 어떻게 자연스런 사고과정이 됩니까? 물론 한 눈에 확 눈쌀이 찌푸려지거나 한 눈에 ‘와, 아름답다’라는 생각이 곧장 드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거의 건건이 그렇다면, 그건 그 사람의 사고방식의 작동 체계 중 일부가 건강하지 못한 겁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것과 그것을 입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완벽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고요.
더 심각한 건, 오지랖을 부리더라도 정당한 평가의 기준을 들이대면 그나마 나은데 평가 기준 자체도 이상하더란 겁니다. 최근 인상깊게 읽었던 어느 피부과 의사의 저술을 보니, 백인들은 주근깨와 기미가 있는 인구의 비율도 많고 그 드러나는 정도도 한국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으나 그것때문에 시술을 받는 인구는 한국보다 현저히 낮다더군요. 다른 경로를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미용 목적으로 피부과를 찾는 이들 중 상당수가 아무런 시술이나 복약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라고요. 스스로를 비만이라 여기는 정상 체중의 한국 사람들이 상당수라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요. 그리고 의학적 기준으로 ‘정상’뭐 이런 걸 떠나 ‘그냥 보기에 좋은가’여부로만 따져도, 충분히 매력적이고 충분히 예쁘고 피부에도 별 문제 없는 사람들이 ‘오지랖 폭력’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거울을 보는 광경은 너무나 흔해요. 이건 ‘미의 다양성의 존중’같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이 ‘성형 대국’이 된 것이, 과연 한국 사람들의 외모가 박색이라 생겨난 결과일까요? 아무리 성형을 해도 어떻게든 당신의 자존을 갉아먹는 사회에서 그 어느 누가 ‘예쁠’수 있을까요. 그 누가 ‘잘 생길 수’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서로를 향해 가혹한 시선을 주고받는 동안 ‘진짜로 필요한 관심’들은 우선순위의 뒤로 밀리게 됩니다. 얼마전 자신의 학생을 감금해 무급으로 일을 시키고 심지어 1억원이 넘는 돈을 변호사까지 세워 공증한 뒤 돈을 벌어오도록 종용하고 유독가스로 호흡하도록 만들고 자신의 인분까지 먹인, 강남대학교 장호현 교수와 정에스더 등 그 일당의 일로 나라 전체가 떠들썩했죠. 그 학생을 구한 건, 해당 피해자의 피부 상태와 부상 정도, 사용하는 단어 등에 관심을 가지고 학대 사실을 확신, 도주를 적극적으로 도운 그의 학과 동기의 공이 컸다고 전해집니다. 만일 그런 의인이 ‘다리에 셀룰라이트 있는 여자가 짧은 치마 입은 거’에 대해 관심 많은 사람들의 절반이라도 있었다면, 그 학대 가해가 2년이나 지속되고 인분을 강제로 먹는 일이 서른번까지 지속되진 않았을겁니다. 아동학대 사건들도 마찬가지에요. 학대 아동들은 절대로, ‘우리 엄마가 날 바늘로 찔렀어요’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요. 이웃에 의해 발굴돼야 합니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이 ‘옆집 아이의 멍자국이나 의류 등의 위생상태’에요. ‘저 집 엄마 아빠는 왜 남자애한테 빨간 옷을 입혀 다니나’가 아니고요.
그 어느 나라보다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를 신경쓰면서, 그 ‘서로를 보는 눈’이 ‘소치 올림픽에 출전한 김연아 보는 심사위원들 눈’인 것이 이 나라 사람들입니다. 지나치게 가혹한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는 것은 ‘현실 직시’가 아닌 그냥 ‘나 자신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에 불과하며, 이 ‘오지랖’이 ‘폭력’이란 사실과, 남이 뭘 입건 뭘 먹건 몇 평 집에서 자건 ‘평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속히 모두가 깨달았으면 합니다.
2015.08.17 12:37
2015.08.17 18:23
저도 ‘왜’가 참 궁금했는데 어느 사회학자가 쓴 〈모멸감〉이란 제목의 책을 보니 대략 이유가 감은 잡히더군요.
2015.08.17 18:23
남한테 상처주면서 재밌어질 바에야…
2015.08.17 13:06
외모나 외양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부분이 충분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을 넘어서는 관심, 어떤 의미에서는 더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남의 직장이나 결혼에 대한 평가가 더 문제라고 봅니다. 그게 주변사람에 대한 애정인지 오지랍인지 구분하기는 더 어렵고요. 예를 들어 저처럼 남의 집 애가 빨강옷을 입었는지 파란옷을 입었는지 전혀 안보이는 사람은 애가 멍이 들어 다녀도 눈치 못 챌수도 있지요.
2015.08.17 13:18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좀 더 상세히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뭘 입고다니는지에 대한 관심은 끄고 아이 멍에는 관심이 필요하다고 적었는데, 뭘 입고다니는지 등에 아예 관심이 없어 멍도 안 보이신다니…
2015.08.17 13:32
어...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주위 사람들을 살펴야 뭐가 잘못된 것도 눈치챌 수 있는데, 이렇게 주변상황을 잘 살피는 분들이 오지랍도 넓기 마련이어서 그 차이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저처럼 주변상황을 잘 인지못하는 건 또 다른 경우라서 적절한 예가 아니었네요.
2015.08.17 15:01
아, 이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5.08.17 13:29
2015.08.17 18:22
제발 그런 ‘평가’가 폭력임을 좀 알았으면 해요.
2015.08.17 14:05
2015.08.17 15:02
근데 저는 저 오지랖들이 정말 궁금해서도 관심이 있어서도 걱정되어서도 뭣도 아니란걸 알기 때문에 딱히 불유쾌해지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만나면 밥먹었냐고 습관적으로 묻는것과 같은 레벨의 것이라 구체적으로 답할 생각도 없고 그들도 구체적인 답을 원하지도 않을테고요 아마. 밥 못먹었다하면 델꼬가서 밥사줄 사람이라면 간혹 진지한 대화를 나눌수는 있겠죠. 남을 그냥 내버려두지 못하는 상대는 내가 내버려두면 되니까 그냥 그러려니합니다.
2015.08.17 16:04
2015.08.17 18:20
와우 감사합니다
2015.08.17 16:58
오지랖이 어디까지나 오지랖인 순간까지는 별 반응이 안오는데, 이게 '우리 사이에~'나 '나니깐 말해주는거야~'처럼 '소위' 한국인의 情으로 둔갑하는 순간 제게 어떤 윤리적 강제성을 들이미는 것 같아서 화가 치밀더군요.
2015.08.17 18:21
한국인의 정이라는 게 있기나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2015.08.17 18:13
읽는 제가 다 속이 시원하네요. 이 글이 널리널리 퍼지길...
2015.08.17 18:21
꾸벅. 감사합니다.
2015.08.17 18:23
비키니라는거는 수영할 때 입는 기능성 옷이잖아요. 수영도 못하면서 몸매자랑이나 하려고 입는 옷이 아닌데, 뭘 어쩌고 저쩌고 떠들어대는지 모르겠어요. 아기도 임신한 엄마도 할머니도 수영할 때 입는 옷인데 말이에요. 제 생각에는 티비에서 떠들어대는 천박하고 무식한 인간들이 크게 한 몫을 한다고 봅니다. 여러가지가 은근히 옳고 그름으로 나뉘어지고 우르르 따라가야 할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삶이란게 가부가 없다고 믿는데, 이렇게 살아야 되고, 저렇게 생겨먹어야 되고.. 참 피곤합니다. 그래서 다들 안 행복한거예요. 모두들 실패한 자기인생을 부정하거나 남에게 훈계하며 대리만족하는 그런 모냥새예요. 가슴에 손을 얹고, 그거 아니잖아.
2015.08.17 19:59
아마 대부분은 아이에게 멍이 들고 여러 정황으로 판단해서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면 왜 그렇게 오지랖을 부리냐고 말리고
뚱뚱한 여자가 왜 비키니를 입느냐는 얘기에는 맞장구를 치며 나도 그 얘기 하고 싶었다고 즐겁게 수다를 떨겁니다.
저는 분노 조절 장애를 조절하기위해 요즘 약을 먹고 있습니다.
2015.08.18 09:27
아. 미처 저도 생각 못한 부분인데 정말 그렇겠네요.
2015.08.17 20:03
2015.08.18 09:26
감사합니다. 헷
2015.08.17 23:37
2015.08.18 09:26
사실 조심해야겠다는 성숙한 자아점검만 있어도 이런 일은 없죠. 고맙습니다.
2015.08.18 00:19
최근 읽었던 글 중 가장 속이 후련한 글이네요. 출처를 밝힌다는 전제하에 제 sns에 퍼가도 될까요...널리들 좀 알았으면 좋겠네요.
2015.08.18 09:25
그럼요. 고맙습니다.
2015.08.18 13:32
최근에 듀게에서 읽은 글 중에 정말 가장 훌륭한 글인 것 같아요. 글이 항상 좋아요. 감사합니다 :)
2015.08.18 14:39
감사함돳
2015.08.18 14:09
2015.08.18 14:40
필요하신 분들이 있죸
2015.08.19 06:41
2015.08.19 11:27
너무 속시원하게 좋은 글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외국에 나와 지내면서 정말 좋은 점 중에 하나가 말씀하신 일상적인 폭력으로부터의 자유.. 라는 점인데 이게 여성이다보니 더 크게 느껴지거든요. 한국이었으면 감히 용기가 부족해서 못했을 심하게 편안한 패션으로 나다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평가하지 않는 자유로움이요.. 길거리에 100키로는 족히 넘을 언니들이 너무도 당당하게 레깅스에 탑 입고 다녀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고 오히려 아름답다고 여기는 분위기요. 가끔 한국 TV에서 비만으로 학교에서 왕따 당하다가 자퇴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힌 10대 청소녀.. 외모 강박으로 10초에 한번씩 거울을 보는 중학생.. 너무 연기 잘 하고 훌륭한 개그맨/우먼인데 오로지 자신의 비만으로 웃음거리가 되는 개그만 해야 하는 분들 등등을 볼 때면.. 너무 안타깝다.. 다 이 나라로 데려오고 싶다.. 고 생각합니다..
2015.08.19 20:35
정=오지랖
질문도 농담도 아닌 하나마나한 말들.
왜 하는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