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2 05:16
0.
몇 달 전, 돌팔이 인문학자 강신주 를 올렸는데 또다시 돌아왔습니다. 돌팔이 평론가 특집으로.
이중인격도 아니고, "너무 좋아요 " 와 "너무 싫어요" 를 오가며 글을 작성합니다.
이번에는 역시 돌팔이가 너무 너무 싫어요 특집.
허지웅 씨.
마녀사냥에 나와 세상 연애담에 당당한 자기의견과 쿨한 평론가 포지션을 취하는 그의 평론을 진지하게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아니 진지하게 평론을 읽어본 적도 없으면서, 함부로 돌팔이라고 해도 되는거야?" 맞습니다. 정확한 반박이죠.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허지웅 씨를 돌팔이라고 평하는 저의 논점과 같습니다.
"아니, 대체 함부로 - 해도 되는거야? "
1.
이 글은 기자 혹은 평론가 로써의 허지웅 씨보다 방송인 으로써의 허지웅 씨에 대한 평일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가 방송인이면서 평론가의 포지션을 취하고 있고 그게 도무지 갈피가 안 잡힌다는 점이죠.
"대체 나란 놈 왜 인기 있는지 모르겠다."와 같은 쿨함을 보여주다가도
공중파 예능에서 열성을 다해 "모나리자"를 애창 합니다.
PD가 시켜서 한 것이겠지만 (설마 허지웅씨가 모나리자 한곡 때리겠습니다. 했겠습니까? )
한편으로 이 사람은 '그렇게 시켜서 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평하고 공격합니다.
그런데 동거의 자유, 뭐뭐의 자유, 자칭 진보정신의 "자유"를 표방하는 말을 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해라 마라" 가 많습니다.
"참견마!" 하면서 바로 다음 문장은 "열심히 참견하고" 있죠.
위 단락이 헷갈리지 않으세요? 저도 써놓고 헷갈립니다.
그런데 바로 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뭔 x소리를 하는것인지 모르겠는 지점이 바로 허지웅 씨에 대한 제 생각입니다.
정리하자면, 그는 평론가로써의 엄격함, 자기자신에 대한 객관화가 부재합니다. 그러니까 항상 자신은 예외인거에요.
그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건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자기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진다는 것이죠.
이런 '엄격함'이 부재한 사람이 타인에게는 한없이 '엄격하게' 또 '시니컬하게' 평을 하고, 호오와, 옳고 그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모순과 오류가 발생합니다. 세상에 대해 시니컬한 평과 연애에 대한 훈계를 코믹하게 말해도
그것이 불편한 이유가 여기있어요. 언제나 "나는 예외" 라는 역사적인 마술이 발동하고 있다는 점.
바로 그 점이 허지웅 씨를 좋게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2.
하지만 이 "나는 예외" 전법은 허지웅 씨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역사적'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어요.
여기서 언급하기도 죄송할 많은 이론가들도 수없이 세상과 사람을 비판하다가도 (사회과학적 비판이론)
엄격하게 '자기반성'이 요구될 때는 '나는 예외' 전법을 통해 빠져나갔어요.
사실 이 지점은 저의 주요 비판점은 아닙니다. "여기 죄가 없는 자 돌을 쳐라 "라는 예수의 말처럼
이런 방식의 비판은 순환논리가 되기 쉬워요. 서로 장난을 치는데, "반사! " 와 같은 유치한 말을 계속 하는 것과 비슷하죠.
거울과 거울을 마주하면 무한한 자기복제가 되는 것처럼,
"겨묻은 개가 겨묻은 개를 놀리며 겨묻은 개를 얘기하는 것과 비슷해집니다"
-
제가 정말 허지웅 씨를 돌팔이라고 하는 이유는,
제가 항상 반대하는 사람의 전형 "타인과 세상에 대한 메뉴얼" 을 가진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인간이기 때문이죠.
이 지점은 강신주 씨를 돌팔이라고 했던 이유와 같습니다. 다시 한번 제가 이곳에서 지겹도록 말한 질문을 생각해봅시다.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타인에 대해 평하고 그 평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먹고 삶이란 직업적 활동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타인을 평하면서 '자신의 인식'이 맞다는 확인, 그 정신적인 승리로 먹고 삽니다.
만약 누군가가 타인을 평하면서 그것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열어둔다면,
더 나아가 "100% 틀린 의견"이라고 인정할 수도 있다면, 허지웅씨나 평론가들처럼
자신의 이론으로 세상과 인간에 대해 그런 단호한 태도 혹은 쿨한 태도를 견지할 수는 없을겁니다.
이론가에게 자신에 대한 '엄격함'이 왜 중요하냐면, 자기 이론이 "틀렸다는 것"을 반증할 수 있는 첫번째 사람은
항상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얼마나 그 "호오"와 "정오", 옳고 그름에서 자유로운가.
나는 그 "말"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있는가? 나는 정말 똥이 묻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똥은
얼마나 치명적인가? 엄격한 이론가와 예술가들은 이 치명적인 자기반성에서 자유롭지 못해요.
허지웅 씨는 세상과 연애에 대해 자기 나름의 메뉴얼을 갖고 있지만, 그 해설서는 자기자신에게만
해당될 뿐, 모두의 메뉴얼이 될 수 없다는 아주 기본적인 사실 자체를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지웠습니다.
(여기서 이것을 "기본적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모든 글쓰기에서 "퇴고가 기본"인 것과 같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1단락에서 나오는 자기 모순이 가능합니다. 평론가스럽게 "논리적"이지만,
그 논리의 화살은 자신을 향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주장을 반박하는 첫번째 증거가 되는데,
그 거울같은 증거를 어딘가에 쳐박아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유로울 수 있고, 쿨 할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사람들은 "자기자신"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
타인의 감정과 마음에 대해서는 잔인할정도로 "쿨" 하면서
자신의 감정과 마음에 대해서는 지나칠정도로 "핫"한 사람.
그들의 쿨함은 철저히 자신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쿨할 수 있는 것이고
충분히 그 사안과 상황이 개입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냉소적인 웃음을 흘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냉소는 하나도 매력적이지 못해요.
진짜 매력있는 냉소는 자기자신에 대해 차가운 태도를 견지할 때, 느껴지는 것이니까.
3.
"나는 충고할 수 없다. '고백'할 뿐이다."
-김훈
바로 이 점이 제가 말하고 싶은 핵심입니다. 허지웅 씨는 "영화평론가"입니다.
영화기자로 일을 시작했고, 영화에 관련된 저서를 적었으며, 영화에 대한 평을 적습니다.
그런데 영화는 무엇일까요? 2시간 동안 "남의 일"을 보면서 울고 웃다가 극장을 나서는 영화는 무엇이죠?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우주 공간에서 길을 잃고, 살인자에게 쫗기며,
생사의 위험에 처한 불운의 주인공은 우리의 가족도 친구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 사람들과 영영 남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영화는 그 영영 남일 사람. 지금까지도 남이었고, 앞으로도 남일 사람의 '가짜' 문제에
진지하게 관객을 끌어당깁니다. 그 문제와 상황에 개입시키고, 현실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만들며, 그 사람의 가슴에 우리를 끌어당겨요.
좋은 영화는 그런 힘이 있어요. 그것은 강요에 의해서도, 충고에 의한 것도 아닙니다. 우스꽝스러운 영화 홍보 카피처럼
"이 영화를 안보면 후회한다"에 겁을 먹고 영화를 보고 감동하는 사람이 있나요? 아닙니다. 순순히 우리는 그 영화 안에 들어가
진지하게 '타자의 문제'를 받아들이고 고민해요. 그리고 반성하고, 자기자신을 '돌아봅니다.'
다시 말하지만, 허지웅 씨는 영화평론가입니다. 평론가들에게
영화와 영화속 주인공, 감독과 배우는 자신이 "평"하는 대상에 불과할지 몰라요.
이것은 맞고 틀리고, 이것은 좋고 싫고.
그러나 그 "평"이 영화 속 타자의 고백보다 우월할 수 없는 이유는 영화는 함부로 충고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맞다고 하지도 않고, 틀리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자신의 X같은 상황을 고백할 뿐이죠.
그 고백에 참여할 것인가 말것인가는 관객의 몫이지, 평론가나 감독의 요구가 아닙니다.
타인에 대해서 "쿨"하게 평가하고 "충고"하는 사람의 '평론'을 기대하지 않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그들이 쿨 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상황과 맥락에서 자유롭기 때문이에요.
물론 "엉망진창"인 영화에서는 쿨 할 수 있어요. 그런 영화들은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당기지 못하기 때문에,
영화 "밖"에 관객을 냅두거나 밀어내기 때문에, 냉소적일 수 있죠. 그러나 좋은 영화는 언제나 우리를 그 안으로
끌어당기고, 그 상황과 맥락에 전염되며 그들의 고통과 병을 함께 치릅니다. '고통'은 언제나 핫해요.
쿨한 인간이 혐오스런 이유, 의사인 척하며 고고한 이유, 냉소적인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이유.
다른 사람의 고통에 감염되지 않았으니까.
타인의 마음에 감염되지 않는 사람의 평론을 읽고 싶지 않고, 그래서 허지웅 씨의 평론을 진지하게 읽을 생각도 없습니다.
4.
" 딱 아는 것만큼 안다고 얘기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 홍상수,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현정이 이 대사를 김태우에게 내뱉고 나서, 카메라는 바다를 향합니다. 역시나 이유도 없고 알수도 없죠.
그냥 카메라 안에 바다가 있습니다. 저는 유독 그 장면의 바다를 좋아합니다. 언제나 홍상수의 영화 속 주인공들은
"지식인들"이고, 다른 사람을 다루는 영화감독이지만, 끊임없이 찌질한 연애와 사랑 때문에 뜨겁고 울고 나자빠집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단순하게 "찌질한 인간" 이라고 평할 수도 있지만. 글쎄요. 저는 그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차가워질 수 없는 인간들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런 속성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고, 또 모를 수 밖에 없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선희도,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도, 옥희도, 끊임없이 말해주잖아요.
잘 알 수가 없다고. 그 사람은 당신의 딸도 아니고, 너의 선희도 아니라고. 자기 자신에 대해 헷갈려하는 것도 인간이라고.
통제할 수 없는 것. 정의할 수 없는 것 . 영원히 수수께끼인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보여줍니다.
그래서 허지웅 씨와 같은 사람들의 평가와 자기 모순을 치유 받고 싶을 때는 홍상수의 영화를 다시 봅니다.
그 평론가가 평하는 인간들. A라고 하고, B라고 하는 인간은 어디 있을까요?
하지만 최소한 그 사람은 허지웅씨의 선희도, 허지웅씨의 딸도 아닐겁니다.
우리가 "딱 아는 만큼만 얘기할 수 있다면, " 자기 자신에 대해서밖에 고백할 수 없다는 것.
허지웅 씨에게 진지하게 필요한 것은 그런 자기 고백입니다.
"허지웅 씨, 딱 아는 만큼 안다고 얘기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
2014.03.22 06:53
2014.03.22 07:48
0. 아도르노 말씀이신가요? 해당 글의 내용은 아드로노가 비판 이론가를 비판하면서 사용한 논리와 유사합니다. 훨씬 어렵지만.
1. 저는 글의 첫 단락에 '방송인 or 평론가' 허지웅이라고 전제합니다. '허지웅의 삶의 모든 순간' '허지웅의 유일한 정체성' 에 대해 쓴 적이 없습니다.
2. <1,2> 단락의 반사 논리 라고 함정을 파놓았습니다. "엄격한 이유로 평가하는 사람(겨묻은 개)을 엄격한 이유로 평가하는 사람(겨묻은 개)은 한계가 있다." 반사. Post님은 엄격하게 제 글(존재 방식)을 평가하고 계십니다.
3. 말씀대로라면, 글이 싫으면 그냥 싫다고 얘기하시면 됩니다. 싫어하실 이유를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그냥 제 글을 싫어하시고 다른 사람의 글(존재 방식)에 대해서 너무 간섭하지 마세요."
2014.03.22 08:32
0. 아도르노 아니고 에티엔 발리바르입니다.
1. 전제와 달리 글의 내용은 평론가 허지웅입니다.
2. 글과 존재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제가 존재의 방식이라고 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정체성이라고 하는 인간학적 동일성의 부여 형식을 이야기합니다. 글이 존재방식인 인간들이 간혹 있지만 저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글=존재방식이라고 이야기 한 적도 없고 따로 이론적/학술적/경험적으로 살펴봐도 글=존재방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hopper님의 글을 평가했다면 맞는 얘기지만 글을 평가했다고 해서 존재방식을 평가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3. 저는 Hopper님이 싫지 않(았)습니다. 사실 Hopper님이나 제가 허지웅을 아는만큼이라도 혹은 접해본 만큼이라도 Hopper님을 제가 알거나 접해본 적이 없습니다.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요. 이제 댓글로 저와 주고 간 것이 있고 난 뒤에 싫어졌네요. 그런데 글이 싫다고 얘기한 게 아니라 글에서 보이는 허지웅을 평가한 방식의 문제점을 이야기한 댓글이었습니다. 제가 Hopper님이 허지웅을 평가한 방식의 문제점을 댓글로 적었는데 그게 문제가 있으면 Hopper님이 하실 수 있는만큼 반론을 펼치시면 되는데 뭐가 제가 Hopper님이 싫어서 썼다고 그러시나요.
4. 마지막 글 너무 유치한걸요. 이 정도로 유치한 댓글을 달 정도는 아닐 거 같았는데요. 제가 만약에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그냥 제 댓글을 싫어하시고 다른 사람의 글(존재방식)에 대해서 너무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끝내면 얼마나 유치할까요? 무지개 반사.
5. 아 이제 Hopper님이 싫어서 솔직히 유의미하고 건설적인 댓글을 주고 받기는 그른 것 같습니다. 피라미드 무한 반사(피라미드 반사와 무한 반사를 조합하는 반사 계열의 최고봉 중 하나라고 합니다)
2014.03.22 08:44
0. 네. 1. 네. '평론가' 허지웅을 비판했습니다. 2. ( ) <- 생략해도 무방합니다. 참고로 저에게 글은 저의 존재 방식입니다.
3. 4. 애초에 댓글 자체가 글에서 언급한 순환 논리라고 직접 보여드린 겁니다. "이런 글 쓰지말고 그냥 싫어하시면 안되요?" 라고 충고하고 계신데, 그 충고를 '자신'에게 해보세요. "허지웅 오류"입니다.
5. 유의미하고 건설적인 첫 댓글의 요지가 "그냥 이유없이 싫어하세요." 인가요? 잘 알겠습니다.
2014.03.22 08:47
3.4 저는 Hopper님이 그냥 싫어서 Hopper님의 댓글에 그 싫음을 보여주려고 댓글을 쓴 게 아니라고 방금 댓글을 달았는데 뭘 또 이상한 소리를 하세요. Hopper님이 쓰신 글의 문제점에 대해서 쓰고 나서 댓글을 주고 받아서 싫어졌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건 'Hopper 오류'라고 부르나요?
5. 요지가 그냥 이유없이 싫어하라는 것으로 읽으실만큼 읽기 능력이 없으실 것 같지 않네요. 이건 그냥 이제 우리가 서로 싫어서 이해를 하기 싫은 단계에 와 있다는 것으로 알겠습니다. 무지개무한피라미드무조건반사.
2014.03.22 09:26
- "글이 싫으면 그냥 싫다고 얘기하시면 됩니다."란 저의 말에서, '글'을 '저'(hopper)로 치환하고 계십니다. 허지웅 씨에 대한 '글'인데, 글이 아닌 "허지웅"에 매달리시는 것처럼 말이죠.
- 글을 이해하지 않고 다루는 '소재'와 '주어' 만 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오류입니다. '반사' ' 허지웅 오류' '존재 방식' 같은 표현에 매달리고 계신데, 마찬가지입니다. 말이 담긴 의미는 이해하지 않고, 눈에 띄는 소재만 읽고 계십니다.
- 홀로 말장난 하고 계신데, 역시 지금도 "hopper"라는 대상만 보기 때문입니다. 저의 의견이 아닌 '저'랑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서로 싫어한다"란 결론도 나옵니다.
- 바로 이 점이 상대방의 말이 '이상한 소리'로 들리는 이유입니다. 많은 댓글 논쟁이 감정 싸움으로 번지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논지와 상관없이 상대방의 "능력"을 운운하고, "유치하다" 와 같은 상대방의 태도에 대한 감상만 늘어놓게 되죠. 그것 밖에 안 보이니까. 첫 댓글에서 말한 "엄격하다"는 글에 대한 감상이지, 의견이 아닙니다. "안되나요? 자존심 상하나요?" 와 같은 연속 질문도 마찬가지죠. "싫어한다"는 감정은 태도이지 주장이 아닙니다.
- 저는 'post'님을 싫어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습니다. post님의 "댓글"에 대답한 것 뿐입니다. 자신을 조소했다고 여기지 마시길. 이상입니다.
2014.03.22 07:11
혹시 블로그나 그런 곳, 그러니까 꾸준히 글 올리는 공간이 있으신가요?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쓰신 다른 글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여쭤봅니다.
2014.03.22 07:45
글이 어려워서 논점이 잘 이해는 안됩니다만
티비나와서
'아이구 제가 뭐 이래라 저래라 할 자격이 있나요. 알아서 들 잘 하시겠죠'
할 순 없잖아요.
먹고 살아야죠.
2014.03.23 09:27
"먹고 살아야죠." +1
2014.03.22 09:08
본문을 공감하면서 읽었는데 첫 댓글 분의 지적도 뜨끔하긴 하네요.
허지웅 씨는 비판하는 발언을 많이 하시는데 총알의 탄착지점이 넓어서 역으로 비판받는 입장에 자주 서기도 하시죠.
그러면 행태를 그 허지웅 씨가 또 비판하고, 그걸 또 사람들이 비판하고 해서 안 좋은 감정의 악순환이 되어서 개인적으론 말 한마디 올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해서 긍정적인 무언가를 얻어내려면 무척 지난한 과정이 되겠구나, 하고요.
그래서 사실 이번 댓글 다는데도 많이 고민을 했네요.
무례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만 저는 위대한 개츠비의 첫구절을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다.
아무쪼록 글쓴 분과 첫 댓글 분이 좋은 주말 오전이 될 수 있으시길 빕니다.
2014.03.22 09:35
2014.03.22 09:42
2014.03.22 09:42
저의 다른 글을 읽으신 적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사실 이 글은 제가 항상 했던 논지의 반복입니다. 소재만 '허지웅'을 다루고 있을 뿐이죠. 사실 글을 쓰는데 애를 썼다기 보다는 그냥 허지웅 씨를 방송이나 글로 접하면서 항상 들었던 "생각"을 쓴 글이라, 많이 정성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그게 잘못이네요. 반응을 보니 의외로 '허지웅'씨에 대한, 이런 류의 비판과 악의가 많이 올라왔나 봅니다. "허지웅"씨가 이렇게 비판할 사람은 아니다 맞다 보다는, 방송에서 '지식인' '글쓰는 사람' 포지션을 취하며 '평론'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의견으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2014.03.22 10:01
역시 유명해지고 볼 일인가 싶네요. 이렇게 공들여 싫어해주는 사람도 잇고요. ㅎㅎ
갠적으로 허지웅정도되는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나와서 더 복작복작 재미있어지면 좋을듯. 이런? 욕먹는 사람조차 많지 않은게 또 현실이라서요.
허지웅 말마따나 뜰사람이 없고하니 뜬거 같기도 한데...뭐 그래야 님같은 분들이 더 열심히 글을 쓸 거리가 생기지 않겠습니까.
2014.03.22 11:04
싫어하든, 좋아하든, 사람을 말하는 데 있어서 저는 항상 공을 들입니다.ㅠ
2014.03.22 10:18
자칫 영화평론가 전체에 대한 부정으로 읽히기 쉬운 글 같은데요. 제가 글쓰는 영화평론가를 한 분 더 알고 있는것 같은데.
2014.03.22 10:28
2014.03.22 11:04
2014.03.22 11:25
물론 평론이 아무리 어려워도 창작의 어려움에 비한다면 거의 아무것도 안하는것이나 다를바 없겠죠. 평론의 방식은 평론가 개인의 취향이니 읽는 사람 입장에서도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생각합니다. 창작물을 경외하는 태도가 엿보인다면 평론가의 인격이 두드러지긴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체로는 (좀 건방지기는 해도) 극장가서 봐도 된다, 시간이 좀 아깝다 이렇게 딱 한마디씩만 평론해도 되지 않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 시간은 소중하니까요.
2014.03.24 14:38
2014.03.22 11:04
좀 읽어보려다가
설득이 안돼서 쭉 내리고 포스트님 댓글에 공감하고 갑니다. 근데 "그냥 싫어"도 쉽게 나올 소린 아니죠.
허지웅 스스로도 자기에게 그런 감시와 통제는 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인기가 생겨서 누리는게 뭐 나쁜가요. 라스에서도 표정이 영 삐딱하더만요.중심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던데요. 많이 노출되면 트집잡힐 일이야 많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2014.03.22 12:03
예전에 하루키가 썼던 말중에 "인기가 생긴다는건 자신에 대한 호의와 적의가 전부 감당할 수 없을정도로 늘어나는 것이다." 대충 이런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는데, 허지웅 보면볼수록 저 말이 딱 들어맞는거 같습니다. '그냥 좋아'가 생기면 '그냥 싫어'도 생기는 법(...) 종종 엄청나게 굴곡진 세월을 견딘 유명인들이 여기에 초연해지게 되던데, 그런 모습을 보면 뭔가 막 경외심 같은 것도 들고 그렇더군요.
2014.03.22 12:20
2,3,4 단락은 모두 "그냥"이 아닌 왜 싫어하는 지에 대해 적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제대로 하게 된 것은 대중들에게 "오만하다"란 평을 하고, 라스에서 다른 출연진을 대하고 말하는 방식에서 확실히 느껴진 그의 위치선정 때문입니다. 이 글이 과연 '트집'을 잡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군요.
2014.03.22 12:25
그냥 싫으면 싫다고 하라는 포스트님의 말씀에 대한 생각이었어요. 호퍼님은 왜 싫은지 열심히 쓰긴 하셨죠.
라스에서 받은 인상이 좀 건방지긴 했어요.저도. 근데 그게 일관성이지, 사람들이 더 많이 보는 라스에 나왔다고 싱글벙글 표정관리 하고 있으면 그게 더 안 좋아보이겠더라구요. 마녀사냥에선 그런 자세나 어투가 어울렸는데 라스에 모셔놓으니? 좀 튀긴 하더군요. 그치만 하는 말로 평가받아야지 자세나 표정으로 뭐라하면 쿨하지 못하잖아요(쿨몽둥이가 어디선가;;) 모나리자는 좋은 수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자기를 깨지 못한 자의 어색한 발성 ㅋㅋㅋ 되게 싸 보이는 공연이었음 ㅋ
2014.03.22 12:06
2014.03.22 12:18
썰전이나 라스에서 그는 계속 "평"을 합니다. 그런 평의 언어도 , 연예인이나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다른 단어와 방식을 사용하죠. '평론가'방식으로요. 그래서 저는 글 서두에 이 글은 "방송인 허지웅 혹은 평론가 or 방송인"이라고 적은겁니다. 그의 평론을 읽은 적이 없다고 한 것은 아에 읽어보지도 않았다가 아니라 이 글의 근거가 될 만큼 진지하게 읽어보진 못했다 입니다. 저는 "평론가" 자체를 비판 한 것 아니라, 자칭 평론의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의 방송에 있어서 포지션과 자세, 태도에 관한 글을 적었습니다. 모두 이와 관련된 내용이구요. 방송인에 대한 '냉소'적인 평가방식 와 방송인으로써의 열성적인 '애창' 을 대조하는 표현일 뿐입니다. 이런 걸 진짜 일일히 설명해야 할만큼 못 쓴 글인가요;;;;;
2014.03.23 04:01
2014.03.22 12:22
가끔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마다, 특히 '비판'이나 '싫어함'을 전제로 할 때는 훨씬 더 세밀하게 적어야 하겠습니다. 그냥 '표현'으로 적은 것 조차 납득 가능하게 적어야 하니... 예전에 "이유없이 싫어한다"는 것에 대해 쓴 적이 있는데, 뭔가 강신주 씨에 대해 쓴 글과 다르게 '허지웅'씨는 정말 어떤 의미에서 이렇게 핫한 사람인지 몰랐네요.; 이 글을 더 정성들여 쓰지 못한 것은 좀 큰 문제 같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이유,혹은 비판하는 이유에 대한 반박은 없고 비판하는 것 자체 에 대한 댓글이 많네요.
2014.03.22 12:39
검색어 허지웅으로 듀게 검색해보세요. 방송출연 없는 블로그 스타(...)였을때도 정치인,연예인 아닌 사람중에선 가장 많이 검색되는 인물일걸요 아마. 예전에도 여러가지의미로 핫한 인물이었습니다(...)
2014.03.22 13:17
2014.03.22 13:18
글 잘 읽어어요. 시간이 없어서 빠르게 읽었는데 나중에 다시 한 번 읽어야 할 것 같네요^^
마녀사냥이라는 프로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은 없고 그냥 누가 볼 때 옆에서 잠깐 쳐다보는 정도로는 몇 번 봤습니다만,, 애초에 연애상담이라는 게 너무 웃기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또 TV에 나와서 대대적으로 남에게 조언한다는 것 자체가 쇼비니지스 중의 쇼비지니스가 아닌가 싶어요. 그 점에서 호퍼님과 어느정도 비슷한 생각이 듭니다. 쇼비지니스에 종사한다는 것과 평론을 한다는 것. 모순없이 양립가능한 것인지.. 하나는 가장하는 일이고 하나는 가장을 벗겨내는 일인 것 같은데 말이죠. 아무튼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호퍼님의 글이 좋습니다.
2014.03.22 13:39
2014.03.22 13:37
저는 허지웅씨가 토익이 그렇게 어려워? 하던 순간부터 연예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뭐 이게 나쁘다는 건 아니구요.
허지웅씨가 여러가지 신경을 쓰면서 평론이나 글을 쓰다 보면 그쪽과 충돌할 경우가 있을 수도 있는데
그쪽과 충돌한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면 포지션을 본인이 확실히 해야 할 수도 있어요.
2014.03.22 14:01
Hopper님의 강신주 돌팔이론 글은 좋았는데(전 강신주를 힐링으로 처음 접한 사람인데 그후 강의들 & 책 한권 접하곤 힐링이 강신주의 최악의 모습이었구나 깨닫고, 힐링으로만 이사람을 판단했으면 큰 오판할뻔 했구나 하며, 나의 듀게에선 강신주를 어찌 평할까 하고 검색했다가 님의 강신주 돌팔이론 글을 만났어요 ㅋㅋ 거기 본문,댓글들 모두 알찼네요) 허지웅 돌팔이론은 이렇게 꽤 장문의 독립적 글로 남길 가치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니까 2008년경? 우석훈이 허지웅 거듭 칭찬하는걸 볼때의 뜨악함과 같은 종류의 뜨악함이요. 긍정적 방향이든 부정적 방향이든 허지웅을 중요(?)하게 다루는 분위기가 전 항상 신기했어요! 듀게,엠팍 등에서도 꾸준히 언급되고요. 전 허지웅 괜찮게 보는 사람이지만 그냥 이런 면이 의아. 스타성 or 사람들이 (그를) 신경쓰게 하는 불굴의 스킬이 있는 건가 ㅋㅋ 이글루스 스타에서, (TV진출 전에 이미) 신해철,진중권과 안면 트게 된 경지;까지 온 것도 좀 신기하고요.
암튼 원글님은 허지웅이 나름 끊임없이 언급되는 것도 모르셨던 것 같고 그냥 가볍게 쓴 글일텐데, 전 그냥 허지웅의 불가해한 유존재성(저에게도 무존재는 아닌거죠)에 놀란답니다. 댓글 전체적으로 뭔가 허지웅을 무시하는 것처럼 돼버렸는데 ㅋㅋ 전 허지웅 싫지 않아요. 한동안 나름 소중한 입이었기도 했는지라.
2014.03.22 16:14
다시 한 번 읽고 또 댓글 답니다. 생각할 여유가 생기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더 많이 보이네요. 읽으면서, 호퍼님이 평소에 하시던 말씀 일관성있게 쭉 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했는데 댓글 읽다가 '항상 했던 논지의 반복'이라고 쓰신 부분을 보고 미소지었습니다^^ 자기반성이 핵심어 맞죠? 근데 다시 한 번 더 읽어야 할 것 같아요. 논리 따라가기가 힘드네요ㅎㅎ
자기반성하지 않는 인간은 진지한 인간이 아니다. 진지한 인간만이 창작(평론도 누군가에 의하면 창조적 오독이니까 창작의 범위겠지요)에서 의미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따라서 자기반성없는 인간의 창작품은 의미있는 결과가 아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데, 호퍼님 논리도 비슷한 것 같네요.
사실 허지웅 평론을 각잡고 진지하게 읽은 적은 없어요. 가끔 검색에 얻어걸려서 읽은 적은 있는데, 통찰력에 감탄한다거나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문장 잘 쓴다는 생각은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누구한테 가르칠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중에 한겨레에서 글쓰기 가르친다는 걸 보고 좀..) 근데 초창기 블로그 글은 재미있게 읽었어요. 제가 읽은 그 글들의 다수는 '고백'하는 글이었거든요. 적어도 고백이 곁들여 있었죠. 우석훈이 허지웅 글을 읽고 이 시대의 조세희라고 흥분해서 칭찬할 때, 사람들이 우석훈 미쳤나고 할 때도 저는 이해했습니다. 그 나이대에 그렇게 치고 올라오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응원하고 싶었고, 이 세대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기뻐했었죠. 그랬다구요..
딴 소리지만..
니가 어떠해야 하는지, 어떻게 되고 싶은지를 보여주려고 하지 마라. 너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정확한 말은 아니지만 비슷한 말을 카사베츠가 한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검색은 안되네요;; 자신을 그대로 내어 보여주는 것, 고백하는 것.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2014.03.22 17:47
2014.03.24 08:54
까마득하게 오래 전 어떤 책에선가 이재오와 김문수를 생계형변절자로 분류한 걸 읽고 그제서야 그들에게 가졌던 분노가 사그러들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김영환 씨나 시대정신 출판사의 홍** (이름도 잊었네요) 씨도 생계형변절자라고 누군가 얘기하는 걸 듣고 아항, 그럴 수 있겠구나 싶었던 생각도 나네요. 아, 허지웅 씨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고요. 먹고사니즘으로 접근하면 이런 삶도 저런 삶도 있을 수 있지, 싶더라는 거죠. 무엇보다 허지웅 씨는 이 순간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한 유럽의 철학자가 있는데 지금 제 곁에 책이 없어서 정확한 용어(개념)를 말을 할 수 없지만 특정 집단 혹은 특정 인간에게 어떤 유일한 정체성 하나만을 그 존재의 유일한 정체성으로 덮어 씌우는 것을 부르는 용어가 있어요. 듀게에서 허지웅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듀게를 나름 오래 눈팅(가끔 댓글이나 글도 쓰지만 거의 눈팅에 가까운)하면서 느낀 바이지만 왜 그렇게 허지웅한테 정말 엄청나게 엄격한 기준을 부여하는건지 이해도 할 수 없고 허지웅이 자신의 삶의 모든 순간에 자신의 직업적 정체성으로 온전히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건지도 이해가 안 됩니다. 마녀사냥을 1회부터 보고 있는 사람인데 허지웅이 영화평론가로서 마녀사냥에 나오는건가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그냥 저처럼 허지웅이 싫어서 싫다고 얘기하면 안 되나요? 저는 그냥 싫거든요. 싫어서 싫다고 얘기하는게 자존심이 상하나요? 그냥 싫을 수 있지 않나요? 살면서 그냥 싫은 사람이 없었나요? 웃긴 짤방 중에서 재밌는게 하나 있었는데 "누군가 이유없이 널 싫어하면 그 X같은 이유 하나를 만들어줘라!" 뭐 이런 짤방이었는데 허지웅이 싫은 사람들의 글을 보면 그 이유 하나씩을 만들어가고 있는 거 같아요. 물론 그 이유를 만들어가는게 잘못되었다는 얘기는 아닌데 꼭 엉뚱하거나 엄격하거나 뭐 그런 이유들이더라구요. 솔직히 말씀드리면요 누군가를 이렇게 엄격한 이유로 싫어할 시간을 갖기보다는 그냥, 그냥 싫어하시고 다른 사람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 너무 간섭하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