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저희 부부는 좀 특이하게 결혼과 동시에 스킨쉽이 중년 부부급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제 어머니께선 소식 기다리시다 이젠 "노인도 한 달에 한 번은 한다!"라는 말을 하셨죠.

보약도 보내주셨지만, 전 보약은 식이요법이라 생각하기에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거라 생각해요.

결혼식 직전과 결혼식 직후에 신뢰에 금이 가는 문제가 있었지만,
그게 영향을 준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결혼식을 딱 기준으로 식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같이 살며 부딪히는 문제들로 투닥거리는 일이 종종 있는데,
가벼운 신체접촉도 뜸하다 보니 이젠 연인이 동거하는 느낌보단 남매가 투닥거리며 사는 느낌이에요.

2. 이 와중에 시부모님께선 잘해주시려는 마음이 과하신 것인지,
원래 남의 집 자식에겐 그러시는지 알 수 없지만,
같이 식사를 할 때마다 의도치 않게 식고문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도 2인분은 거뜬히 먹는 여자인데, 같이 식당에 가면 본인들도 다 못 먹어서 손 놓으신 걸
제 그릇에 다 부어 넣으세요. 그러곤 다 먹을 때까지 일어나지도 않으시죠.
그럼 꾸역꾸역 쑤셔 넣어 먹어야 합니다.

거절도 해봤는데, "그럼 이 아까운 걸 누가 다 먹느냐?"라시며 제 그릇에 싹싹 긁어 담으시죠. 본인들이 해먹고 안 드시는 것도 가져가라 하시고 안 가져간다 해도 봉지에 담으시기도 하고요. 그리 먹이시면서 동서 이야길 꺼내며 "살쪄서 밉다."라는 말도 제게 하십니다.

시부모님의 이 말은 제겐 '절대 살찌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으로 들리죠.

남편은 계속 옆에서 자긴 안 먹는다며 저 먹는 거 보고 웃는데,
제가 도움 요청의 눈빛을 보내도 웃고만 있어서 한번은 시부모님과 헤어진 후
결혼 직후부터 심해진 제 위장장애를 이야기하며 따졌더니 웃기데요.

그래서 남매처럼 몇 시간을 투닥거렸더니 그제야 알았다며 그 후로는 조금 도와줍니다.

3. 시댁이 아들만 둘이고 동서가 자기들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저에게 딸 같은 며느리를 요구하시는데, 진짜 딸들이 어떤지 모르시고 환상이 높으세요. 어디 TV에서나 나올법한 다정하고 애교 많은 딸을 꿈꾸시는데, 제 부모님께도 못한 걸 시부모님께 부응 못 하는 건 당연하다 보니 슬슬 서운함을 내비치십니다.

그래도 제 부모님께 일 년에 많아야 세 번 찾아뵙던 딸이
시부모님껜 많게는 일주일에 세네 번 드물게는 삼 주에 한번 찾아뵙고 있어요.

사실 딸 같은 며느리 말은 좋아 보이지만, 그 며느리 입장인 제가 생각하기엔
그 딸은 마치 늦게 입양된 딸이나 친척 집에 맡겨진 여자애 같은 기분입니다.

결혼 전에 왕래가 잦았다면 달라졌을까 싶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 행동 하나하나
제가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을 하면 얼굴이 상기되시니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어요.
저번에 듀게에서도 썼던 남편 주사문제까진 아니고 술 마신다고 이야기 했다가
시어머니께 밥상 아래서 걷어차여 보기도 했었죠.

4. 남편은 투닥거리면서 조금씩 제 편의를 봐주고 있어요.
제가 아침 일찍 남편 도시락을 싸주는데, 가끔 빼먹어도 혼자 싸가기도 하고요.

생활권이나 작업실도 친구도 없는 아는 사람이라고는 시댁식구들뿐인 동네에 뚝 떨어져 처음엔 작은 마을에 적응하느라 힘들어 정신없었는데, 슬슬 생활에 필요한 부분들은 파악하고 나니 사람이 그리워요.

고양이 두 마리 같이 있지만, 대화를 자주 못하고 혼자 있는 시간도 많고 시댁식구들과는 만나도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대화한 것 같지도 않고 (모든 게 종교로 귀결) 동네도 시댁 홈그라운드고 시부모님 원하시는 대로 교회업무에 참여하고싶지도않고 교회사람들과 사적으론 만나기 싫어요.

그러다 보니 가끔 저도 모르게 울먹거리기도 하고 무기력하게 온종일 게임만 하기도 해요. 도저히 이러다간 마음의 병이라도 생기겠다 싶어 남편과 상의하고 들고왔던 컴퓨터 다시 작업실에 가져다 놓고 2주에 한 번씩 짧게는 2박 3일 길게는 3박 4일 작업실에 갑니다.

가서 지인들 만나 같이 작업하고 대화하다 보면 즐거워요.
하지만 가끔 두려운 게 집에 가야 한다는 생각하면 우울해집니다.
이런 기분이 자꾸 드는 것도 두렵고 내가 어쩌려고 이러나 싶기도 해요.

5. 위장장애문제로 양약을 먹다가 식이요법을 해야겠다 싶어 위장에 좋다는 채소나 즙 먹어보다가 한의원에 찾아갔는데, 좀 특이하게 이것저것 물으시며 상담을 45분가량 했어요. 아마도 결혼 후 아직 아이가 없다는 말에 여러 사례를 이야기하시며 이것저것 물으셨는데, 결혼은 원인불명. "하지만 부부 관계가 소홀하면 결혼을 유지하기 어렵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그래서 그런가?'라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사실 그 문제에 대해선 유부 지인들도 이상하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래도 딱히 개선할 마음은 없어 보여요.

9월 1일이면 딱 1주년인데, 좋은 추억할 만한 신혼여행을 안 가봐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신뢰가 금 갔던 문제 때문에 더 내 마음이 뒤숭숭하고 울적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373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8195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8398
124137 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22] Sonny 2023.08.30 690
124136 세컨드핸드 타임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2] catgotmy 2023.08.30 154
124135 데이빗 핀처, 마이클 패스벤더 신작 넷플릭스 영화 - 더 킬러 메인예고편 [4] 상수 2023.08.30 465
124134 [왓챠바낭] 순리대로 이번엔 '시체들의 새벽' 잡담이구요 [16] 로이배티 2023.08.29 333
124133 노래 취향이 변했습니다 catgotmy 2023.08.29 136
124132 aespa 에스파 영어 여름신곡 Better Things 뮤직비디오, 찐극우가 집착중인 김윤아의 라이브, 나이들어 듣는 노래 외 상수 2023.08.29 225
124131 My prerogative/마이클 잭슨 전기 영화 daviddain 2023.08.29 218
124130 [VOD바낭] 바비 재밌네요ㅎㅎ [7] 폴라포 2023.08.29 515
124129 프레임드 #536 [2] Lunagazer 2023.08.29 99
124128 하이브리드 수퍼히어로물 무빙, 재미있습니다. [4] theforce 2023.08.29 525
124127 휘트니 휴스턴 노래 [2] catgotmy 2023.08.28 234
124126 에피소드 #52 [4] Lunagazer 2023.08.28 107
124125 프레임드 #535 [2] Lunagazer 2023.08.28 99
124124 그래서 얼굴에 미스트를 써도 괜찮은건가요? [1] 한동안익명 2023.08.28 373
124123 [왓챠바낭] 어설프지만 귀염뽀짝한 좀비 로맨스, '살아있는 데브의 밤' 잡담입니다 [2] 로이배티 2023.08.28 262
124122 한국인이 제일 모르는 케이팝의 인기... [6] Sonny 2023.08.28 998
124121 주역강의 서대원 catgotmy 2023.08.28 129
124120 [나눔 완료] 메가박스 일반관 평일(목요일까지) 예매해드려요. 한분에 한장씩 모두 세장 있어요. [13] jeremy 2023.08.28 218
124119 (바낭)비상선언, 랑종(스포일러 주의) [3] 왜냐하면 2023.08.28 308
124118 디즈니플러스 아소카 [10] skelington 2023.08.28 52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