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이해하는 것

2023.08.30 10:06

Sonny 조회 수:690

예전에 친구와 서태지 이야기를 하다가 다툰 적이 있습니다. (친구와의 갈등 이야기만 계속 하는 것 같군요 ㅋㅋ 저는 인간관계를 소중히 합니다) 저는 나름 서태지를 좋아하는데, 그 친구는 서태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서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그 친구가 서태지가 북공고 짱이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너무 황당해서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서태지를 조금이라도 알면 그 사람이 얼마나 그런 육체적인 다툼을 싫어하고 지배하는 거에 관심이 없는지 알 거다 라고 하면서 서태지가 데뷔초에 자기 일기 형식으로 칼럼을 썼던 것까지 말했는데 안믿더군요. 서태지 몸뚱아리만 봐도 이 사람이 짱이 될 수 없는 조건이라는 건 너무나 명확하지 않습니까? 그 친구의 논리가 저를 더 얼빠지게 했는데, 너는 서태지 친구나 지인이 아니고 우리 모두 그에 대해 정확한 사실은 모르니 자기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슈뢰딩거의 서태지 같은 논리였습니다. 이 탈진실 post-truth 스러운 소리에 정을 떼버렸죠. 앞으로도 이 친구는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이런 고집을 부리겠구나...


그 때 대화를 하면서 느꼈던 건 어떤 것을 이해하는데는 애정이나 호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조금 편향된 단어라면, 호의가 섞인 호기심이라고 해야할까요. 뭔가를 알고 싶어하는 그 욕구 자체가 이미 무언가에 대한 강한 지적탐구심을 일으킵니다. 흔히들 차갑고 객관적인 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상에 대해 냉정하고 감정이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의 성실한 관측이 제일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만... 애정없이는 도달하기 힘든 어떤 깊이가 있습니다. 그 안까지 깊숙히 파고들어갔을 때만 보이는 진실 같은 게 있죠. 그 진실은 때로 직관적으로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런 점에서 어떤 작품을 비평적으로 다가간다는 건 그 작품이 됐든 그 장르가 됐든 어떤 애착을 가지고 접근을 하는 것이 첫번째인 것 같습니다. 안좋아하는데 뭔가를 어떻게 깊이 파고 들어가고 디테일들에 매달릴 수 있겠습니까. 모든 탐구는 한편으로는 '덕질'의 최종단계이기도 하지 않을까요. 왜 이 부분이 이렇게 이뤄져있을까, 왜 이 부분은 이렇게 강렬한 감흥을 일으키는 것일까... 이렇게 그 탐구심들을 쓰고 보니 한편으로는 그 호기심과 지적 열망이 자신의 결여된 무엇이기도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다니고 좋아할 수 있게 된 무엇이 일으키는 그 감정적 화학작용의 원리를 기어이 분석하려는 걸 생각해보면 좋아하지 않는 채로 이해하는 것은 얼마나 진실을 많이 흘려보내는 일인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956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8921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9227
124182 1Q84 10月~12月 예약 판매를 시작했군요 [1] catcher 2010.07.09 2440
124181 4강전과 3-4위전, 결승전까지의 텀이 너무 길게 느껴지는군요. [7] nishi 2010.07.09 2416
124180 노노데모의 한 회원은 PD수첩(민간인 불법사찰편)에 출연한 김종익씨가 그렇게도 싫었나 봅니다. [11] chobo 2010.07.09 3017
124179 민주당은 선거에 승리할 의욕이 없는듯... [7] 자력갱생 2010.07.09 3011
124178 전신거울을 깼습니다... [8] 주근깨 2010.07.09 4393
124177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동영상 [5] tigertrap 2010.07.09 3197
124176 청소하기 싫어요 + 큐리 섹시 키티 낸시 [15] 하나마나 2010.07.09 4439
124175 KBS 더 이상 못 참겠다! 바꿔보자! [1] 2Love 2010.07.09 2837
124174 재미있는 웹툰 [2] 렌즈맨 2010.07.09 3312
124173 미국에 가지고갈 인터넷 전화 [4] Lain 2010.07.09 2866
124172 그 벨로주는 그 벨로주였네. [6] 스팀밀크 2010.07.09 2556
124171 EBS 은근슬쩍 데이브 학력수정, 시청자 항의폭주 [17] 모설희 2010.07.09 5079
124170 조선판 X파일 드라마 바다참치 2010.07.09 2384
124169 그러고 보니 이번 월컵에서 서구쪽 선수들 이름을 말할 때.. [8] nishi 2010.07.09 2619
124168 순대국밥의 본좌 [9] chobo 2010.07.09 4481
124167 YES24 칼럼 '일요일 6시 예능의 몇 가지 관전 포인트' 업데이트 했습니다. [2] 루이와 오귀스트 2010.07.09 2291
124166 골키퍼를 농락하는 법 [4] 01410 2010.07.09 2902
124165 여름이니까 무서운 광고 (노약자, 임산부 시청 주의) [3] wadi 2010.07.09 2870
124164 19금) 1972년도 우디 알렌의 작품 [4] 스위트블랙 2010.07.09 3744
124163 개복치 [10] 장외인간 2010.07.09 322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