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 카레니나를 이제 막 100페이지 읽어놓고 호들갑을 떨어봅니다.
1.드디어 바보 이반을 넘어서서 톨스토이에 제대로 입문하는 듯 하여 너무 기쁩니다.
남은 10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행복하고, 남은 톨스토이의 작품들에 행복합니다.
2.전쟁과 평화는 너무 재미가 없었는데 아래와 같은 가설을 가져보며 다시 도전해 보렵니다.
1)범우사의 번역이 별로였다.
2)충분히 집중하고 애정을 가지고 읽지 못하고 고전에 대한 의무감이 앞섰다.
3)소화할만한 능력이 없었다.
3.말씀드린대로 이제 100페이지인데 저는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과 감정이입이 되어 버리네요.
제가 그만큼 부유하였다면 제 성격을 최대한 선하게 발현하면 그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4.이런 작품은 영상화, 영화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드라마로 만들면 그야말로 전혀 별개의 작품이 되지 않을까요? (물론 모든 소설을 원작으로한 영상작업은 별개의 작품이기도 하지만요)
소설속 주인공들의 속내를 표현할 방법도 없어보이고, 그 수많은 곁다리의 잡담들을 담으려면 엄두도 나지 않으니까요.
5.츠바이크가 본 카사노바, 스탕달, 톨스토이 - 라는 책이 있습니다.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071244
카사노바는 읽어보지 않았고, 스탕달의 적과흑을 사랑하며 톨스토이는 오늘까지 감당을 못해왔었네요.
츠바이크가 세 사람을 묶은 이유는 '속마음'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츠바이크는 그 내공을 톨스토이>스탕달>카사노바로 분류했지요.
우리는 실제 삶에서 연인을 만나도 순간순간 많은 생각을 합니다.
집에 가스불은 껐는지 문득 떠올려보다가 (이건 일종의 클리셰네요 ㅋ), 이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이런 멍청한 여자와는 헤어져야 겠다 다짐하기도 하지요.
이런 마음의 움직임을 카사노바는 자신이 무얼 발견했는지도 모르고 떠벌리고,
스탕달은 발견한걸 끊임없이 파고들었으며, 톨스토이는 거장의 숨결로 요리했다고 봅니다.
*알라딘 서평에서 본(그리고 아마도 츠바이크 책속의 표현이지 싶은) 자기 보고(카사노바), 자기 관찰(스탕달), 자기 재판(톨스토이)라는 표현도 있네요.
6.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의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현란하거나 적나라하며 일면 그로테스크한 극을 보여준다면
톨스토이는 묵직한 거장의 끝모를 깊이를 보여준다는 느낌이네요.
극도의 악인을 연기하는 것 보다, 평범한듯 있는듯 없는듯 하는 연기가 훨씬 대단하다고 평소 생각해왔는데 톨스토이는 후자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 키이라 버전은 딴 이야기도 넣으려고 노력했던데, 그래서 살짝 난잡해진 감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