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28 17:32
[존 윅 4]를 보고 난 뒤 기시감을 느꼈다. 이 작품과 별 연관이 없는 [탑건: 매버릭]을 보고 날 때의 흥분과 비슷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다. 두 작품의 장르나 성격은 전혀 다르지만 작품의 전체적인 기조는 어딘지 닮아있다. 스토리나 개연성은 크게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만 짜맞추고 헐리웃 스타 한명을 중심으로 볼거리의 파괴력을 극한으로 이끌어낸다는 점이다. 특히 이 두 작품이 크게 성공한 원작의 후속작이라는 점, 시각적 자극이 원작을 초월한다는 점, 두 작품 모두 주인공의 설명할 수 없는 매력으로 원톱 영화를 이끌어나간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두 작품의 주인공 모두가 육체적 전성기를 훨씬 넘은 60대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들의 성공은 더욱 더 되새길만 하다.
좋은 영화는 늘 관객을 감동시키는데 도전할 뿐이지만 나는 이것을 극장영화와 OTT 의 대결로 읽고 싶어진다. 그것은OTT 영화를 영원히 따돌리는 극장용 영화의 "예술성"이라는 신화를 내가 아직도 믿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문화 산업의 흐름은 극장시대에서 OTT 시대로 넘어가고 있으며 수많은 영화들이 극장개봉을 한 뒤 흥행 실패를 면치 못하고 있다. OTT 산업의 제왕인 넷플릭스가 '극장에 갈 필요가 없이 집에서'라는 편의를 제공하는 동시에 코로나라는 산업재해가 극장을 덮쳤다. 대중이 즐거움을 찾기 위해 굳이 발품을 팔고 비싼 돈을 내야할 의무는 없다. 음악, 책, 운동, 모든 취미는 갈 수록 노트북과 핸드폰으로 "개인화"되어가고 있다.
넷플릭스가 극장 영화를 따돌리는 전략은 단순히 '홈 스윗 홈'의 편의제공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넷플릭스는 티비와 극장의 심의규정을 넘어서는 자극적 컨텐츠를 제공하며 문화적 이슈를 차지했다. 맵, 단, 짠의 자극이 강한 음식을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처럼 다수의 사람들은 시청각적 컨텐츠의 퀄리티를 일일이 따져가며 보지 않는다. 좀비, 괴물, 연쇄살인마, 미성년자들의 일탈과 폭력 등 넷플릭스가 일관되게 다루는 것은 비인간적(으로 취급해도 되는) 존재들 혹은 비인간적 취급 그 자체였다. 어떤 존재를 비인간적으로 다루어서는 안된다는 사회적 금기를 계속 건드린다는 점에서 넷플릭스의 컨텐츠들은 계속해서 먹힌다. 설령 그 퀄리티가 비판에 휩쌓이더라도. [오징어게임]에서 다 큰 어른들이 달고나를 할짝거리는 걸 대단히 재미있는 것처럼 보는 그 장면은 넷플릭스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넷플릭스의 이런 고자극, 중저퀄리티의 컨텐츠 홍수는 과연 바람직한 것일까. 극장 영화 역시도 이런 고자극 중저퀄리티의 혐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자기 방"이라는 편의성을 무기로 넷플릭스는 영상컨텐츠의 평균하향화를 엄청난 속도로 추진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윤리적인 입장이라기보다 미학적인 입장에서의 비판이다. 피, 시체, 좀비, 그리고 어디서나 튀어나오는 인간쓰레기들과 그런 쓰레기를 응징하는 멋진 청소부들의 공식은 내게 90년대 유행했던 조폭영화 양산현상과도 닮아있다. 넷플릭스는 엽기적 소재 없이는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극복할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극적 쾌감이 컨텐츠의 전부인 것처럼 기준을 내세운다. 누굴 칼로 쑤시지 않으면, 얼굴이 피떡이 되도록 두들기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것같은 착각을 넷플릭스는 지구적으로 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존 윅 4] 역시도 그런 비인간적 컨텐츠의 일부가 아니냐고 비판할 지도 모른다. 윤리적으로 본다면 그렇다. 그러나 미학적으로, 이 작품이 시리즈 전반에 걸쳐 이뤄낸 '장르적' 진화는 단순한 성취가 아니다. 건푸 혹은 건짓수라고 불리는 새로운 액션 코리어그래피부터 시종일관 적들을 쏟아붓고 그걸 치워내면서도 유지하는 리듬, 만화적인 세계관을 뻔뻔하게 설득시키는 판타지의 매력까지 이 작품이 최근 영화들 중 이뤄낸 성취는 절대 작지 않다. 톰 크루즈가 [탑건: 매버릭]을 통해 톰 크루즈 장르를 성공시켰듯 [존 윅 4] 역시도 만화적 영화에만 나오면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내는 키아누 리브스 장르의 변곡점일지도 모른다.
[탑건: 매버릭]도 [존 윅 4]도 윤리적으로는 수상한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그런 고민을 잠시 내려놓게 할만큼 끝도 없는 액션 공세로 관객들을 압도시키는 힘이 있다. 몸을 안가리는 지독한 쌩짜 액션으로 장르적 미학을 갱신시켰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관객들을 계속해서 극장으로 불러모으고 있다. 과연 이런 성취가 넷플릭스나 다른 오티티에서 가능할까. 그것은 단순히 자본의 투입량과는 다른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 두 작품은 극장용 영화가 자본과 기술을 제대로 응축시켰을 때, 모니터와 이어폰으로 감상하는 영상 컨텐츠들과 차원이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시네마적 판타지의 증거들이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야말로 궁극의 영상매체라는 나의 고집불통 우기기일지도 모르겠지만.
2023.04.28 20:45
2023.04.28 21:15
2023.04.28 21:36
요금 포함해서 극장에 가는 수고를 '집중력을 산다'라고 김혜리 기자에게였나 얘기들은 기억이 납니다. 극장에서 보는 영화는 집에서 보는 영화와 다르고 대체될 수 없는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씀대로 오페라, 연극 느낌으로 미래에는 극장 수가 많이 줄면서 고급화되지 않을까 싶네요. 극장이 주변에 흔할 때 부지런히 다녀야 되는데 말입니다.
2023.04.28 21:40
2023.04.28 21:56
하지만 데이트 & 가족 외출하러 나갔을 때 시내 번화가에서 먹고 마시기 제외하면 딱히 할 게 없는 현실이 쉽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므로 극장 영화 관람 문화의 몰락은 생각보다 천천히 올 거라고 믿습니다. ㅋㅋㅋ 스콜세지 할배 드립을 빌리자면 '시네마'의 몰락은 금방 올 수 있을지라도 말이죠.
2023.04.28 22:02
2023.04.29 00:04
제작이 안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그게 이미 투자해서 제작된 영화들 수십편이 개봉을 미루고 창고에서 버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근데 뭐 이런 사정은 저보다 더 잘 아실 테니. ㅋㅋ
근데 대략 작금의 상황을 보면 극장 영화의 위기라기 보단 한국 극장 영화의 위기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탑건: 매버릭'이나 '스즈메의 문단속', '아바타: 물의 길' 같은 영화들이 멀쩡히 흥행을 했기도 하고. 근래에 개봉한 한국 '대중 영화'들이 대체로 평가도 별로였던 데다가, 말씀대로 OTT 투자 받고 만들어진 영화들이 OTT 독점 개봉 대기 중인 것도 꽤 있구요. 가만 보면 극장 다 죽어간다는 이미지에 크게 공헌을 하고 있는 게 한국 영화들 & 마블과 디씨 영화들인데... 뭐 암튼 구구절절 얘기하자면 댓글이 한참 길어질 것 같고. 전 지금 상황은 좀 더 관망을 해봐야 알 수 있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입니다.
2023.04.28 22:04
넷플릭스의 부상에 이은 다른 기업들의 OTT 경쟁으로 이미 예상된 일이었지만 말씀대로 전세계를 뒤흔든 코로나 시대를 거치면서 더 극단적으로 치달은 것 같아요. 코로나 직전이었던 2019년에도 이미 넷플이 엄청난 상종가였지만 극장가에도 마블의 엔드게임을 비롯해 흥행 10억불을 넘기는 작품들이 여럿 나오면서 여전히 극장에서만 진가를 느낄 수 있는 영화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었는데 이젠 많이 흐려졌죠.
흥행부담 때문에 아예 배급을 스트리밍 전용으로만 하거나 예전에 비해 2차매체로 직행하는 텀이 엄청 짧아졌고 그 와중에 흥행기록을 세우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 탑건 매버릭, 아바타 2 같은 영화들이 나오지만 또 망하는 블록버스터들 비율이 예전에 비해 많아지는 등 혼란스러운 시기인 것 같아요. 국내는 최근에 실망스러운 작품들이 많은 것도 있었지만 코로나 때 급격히 티켓값 인상하고 나몰라라하는 극장주와 같은계열 기업들의 배짱도 크게 역할을 했죠.
극장에서만 즐길 수 있는 이런 작품들이 진가를 제대로 발휘한다는 것도 있지만 반대로 그런 영화가 아니면 굳이 비싼 티켓값 주고 극장을 가지 않으려는 심리도 강해졌죠. 조금 기다렸다가 스트리밍으로 보면 되니까요. 소규모 다양성 영화들도 장사가 되야 고르게 발전이 될텐데 걱정입니다. 제가 올해 좋게 본 다음 소희, 소울메이트 같은 영화들이 딱 이런 꼴인 것 같아요.
2023.04.28 22:20
키아누가 벌써 60이라고? 그럴 리가?? 하고 찾아보니 한국식 나이로 딱 60이군요. 하암... ㅠㅜ
요즘 젊은 & 어린 세대들이 영상물을 소비하는 방식을 보면서 '아니 저 코딱지만한 폰 화면으로 스펙터클한 영화를 본다고??' 라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만. 가만 생각해보면 '영화는 극장에서'라고 생각하는 분들 입장에선 저처럼 주로 티비 화면으로 보는 사람들이 딱 그렇게 보이겠구나 싶어서 폰 영화 감상도 걍 인정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ㅋㅋ
그래도 어쨌거나 큰 화면, 빠방한 사운드로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 되감기도 빨리감기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즐기는 극장 체험의 매력이란 것도 여전히 존재하니까요. 그 체험에 집중해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앞으로도 쭈욱 존재할 것이고 마찬가지로 그 체험을 위해 극장을 가는 사람들도 꾸준히 존재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