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새 몸이 안 좋아서 여러 병원을 자주 갑니다.
원래 병원을 1년에 한 번 갈까말까한데 두 달새에 5번을 갔으니 제 인생에서는 기록적이라 할 수 있네요.
더군다나 내과, 피부과, 치과 등 다양하게;
뭐 어쨌든 오늘은 '헤르페스'라 불리는 입술포진때문에 피부과를 다녀왔는데
진료가 30초만에 끝났습니다. 어떻게 30초냐구요?
나 : 4,5일 전부터 입술에 물집이 작게 나더니 살짝 간지러워요
의사 : (살짝 끄적이더니) 네. 먹는 약/바르는 약 드릴테니 푹 쉬세요. 피곤하면 재발하기 쉽습니다.
카운터에 이거 가져다 주시면 처방전 드릴거에요
나 : ...다 된건가요?
의사 : 네
환자가 하는 말 듣고 해당 부위 슥 보고 진단 끝.
어제 '입술 물집'으로 네이버를 검색하니까 이게 전염성도 있고 성병으로도 이어질 수 있던데 그런 설명따윈 패스.
그래도 제가 약자인지라 전염성 여부랑 이것저것 물어보니 묻는 말에만 대답해주고 다시 침묵 시위하시더군요.
좀 더 어이없는 건 저 말고 환자가 아무도 없었어요. (왜 없는지 이제는 알겠지만..)
이렇게 대충 진찰받을 거면 병명도 알겠다, 약국을 가지 왜 여기 왔나 싶기도 하고..
2.
그 반대로 얼마 전에 갔던 내과는 매우 친절했습니다.
해당 증상과 연결될 수 있는 모든 증상을 물어보며 병을 속단하지 않더군요.
아주 흔한 증상인데도 말이죠. (보통은 '설사해요 -> 님 장염. 약드릴게요'로 끝나죠)
대체 왜 이런 것까지 관련이 있는거지? 싶은 질문까지 하면서 말이죠.
'오늘 밤에 이 부분이 아프면 당장 응급실에 가라. 맹장염일수도 있다'
'지금 약한 목감기 기운도 있는데 목감기 약을 주면 장염이 더 심해질 수 있다. 일단 장을 치료하는게 우선이다'
'일단 2일 간은 설탕물과 이온음료만 섭취하고 3일째부터 미음을 먹어라'
'내일까지 차도가 없으면 링겔 한 대 맞으러 와라'
특히 자신이 이런 진단을 내린 이유를 말씀해 주시는 게 좋았어요.
그리고 나서 절반 정도의 시간은 그 선생님과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유쾌하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의사 선생님과 군대 얘기라니!)
병원 대기실이 꽉 찰 정도로 사람이 많았는데도요.
덧붙여 말하자면 그 건물에 있는 약국도 친절했어요.
약을 받을 때 보통 '식후 한 번씩 세번 드세요'하고 땡인데 여기는
'코감기 걸리셨나봐요? 콧물이 많이 나오면 점막이 헐어서 피가 같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리고 이건 해열제고, 이건 항생제고, 이건 코감기약인데 졸릴 수도 있으니 점심 시간엔 빼고 드셔도 돼요' 라고
약의 효능까지 알려줍니다. 물론 복용 방법과 주의 사항도 알려주고요.
3.
집에 오며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친절에는 무관심도 포함되는 것 같아요.
말투는 친절하고 표정은 밝은데 뭔가 끝나고도 기분이 나쁜 경우랄까?
어쨌든 그 피부과에 다시는 가지 않을 거에요. 흥
어느날엔가는 제게 "마음이 아프면 몸도 쉽게 낫지 않아요. 마음부터 잘 돌봐주시길 바래요."라고 하셨어요. 회사로 돌아오며 울다웃다 하였다는.
좋은 의사를 만나는 것만으로도 병의 절반은 고친 기분이 들죠. 아픈 게 마치 죄 지은 일처럼 느끼게 하는 의사들도 있지만요.
그리고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병들이 한꺼번에 왔다가 가는- 오래 건강하실 징조입니다! (어서 회복하셔서 원하는...; 이..이루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