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28 17:22
저는 아무런 취미가 없어요. 전에는 책 좋아하고 영화를 보러 다니고 그런게 다 취미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요새는 일년에 몇 번 영화관 갈까 말까이고 책은 보지만 그 수가 현저히 줄었어요. 매드맥스 이야기가 많이 나오던데, 그냥 사람들이 말하는 것들에 관심이 많이 줄었어요. 책도 그래요. 예전에는 이건 꼭 봐야 해! 이런게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남들이 봤지만 나는 안 본 책에 대해서 아무런 조바심이 없어지고 지적인 흥미가 생기지도 않고 그냥 손 가는대로 보는 정도. 세상 많은 것들이 그저 마케팅의 문제, 팔려는 의지가 보이니 시들해져요. 정말 봐야 하는 책은 적고 정말 봐야 하는 영화는 적다는 걸 알게 되니까.. 문제는 그래서 사는게 재미가 더 없어졌어요.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이고 싶어했던 때가 있어요. 슬프게도 그게 잘 안되더라고요. 누구는 손바느질을 하고, 사진을 찍고, 음식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던데... 손재주도 없고 취미활동을 할 돈이 없었고 그리고 지금은 시간과 열정이 없어요. 주말에 집에 있으면 잠만 자고 세탁기 돌리고, 그리고 벌써 토요일이 갔다고 한숨 쉬고, 일요일 오후가 되면 벌써 침울해져요. 딱 한 번, 너무 외롭고 너무 괴로울 때, 그리고 쫓기는 시간이 지나가고 난 다음 뭘 해야 할지조차 몰랐을 때...스스로를 위해 글을 쓴 적이 있어요. 생일 기념 소설을 썼죠.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쓰고 저녁에는 쓴 글을 읽고 잠들 땐 녹음한 걸 들으면서. 집중하는게 재미있었고 좋았어요. 소설을 마친 날은 하늘이 멋졌고 몇 년만에 처음으로 어떤 해결의지가 생겨나서 시간이 멈춘 손목시계의 약도 갈고 단추가 떨어져서 입지 못했던 옷에 단추도 달았고. 뭔가를 완성하고 갈무리하는 기분이 참 오랜만이어서 그것만으로도 순수하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게 필요했었거든요. 그렇지만 소설이 제 마음에 쏙 들었냐 하면 그건 아니에요. 그냥 제가 좋아할 구석이 있었고 스스로를 위해 열심히 뭔가 하는 게 좋았죠. 아무런 돈도 들지 않고 누구 마음에 들 생각도 없고 순수하게 나를 위해 한 것이니까요. 그걸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읽지도 않았어요. 분명히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벌써 마음에 걸렸거든요.
회사를 다니면서 하는 생각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고 계속한다고 해도 우울하고 회사가 어려웠던 동안 고용 불안정이 실질적 위협으로 느껴졌던 걸 떠올리니 당장 밥벌이 할 곳이 없어도 겁난다, 였어요. 제가 원하는게 뭔지 모르겠어요. 너무 늦게 일을 시작하니 이 일이 어떤 발돋움이 되어줄 것도 같지 않고 그냥 하루 하루, 그런 거라는 걸 알겠어요. 일을 하면 할 수록 이걸 몇 년씩 할 자신이 없다 싶은데 그렇다고 다른 걸 시도하기엔 너무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걸 위해 시간을 허비했어요. 그게 얼마나 나를 갉아먹었는지 알기 때문에 순수하게 뭔가 하고 싶다! 이런 마음은 좀처럼 다시 찾아오지 않을 거란 것도 이젠 알아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일을 오랫동안 해야 해요. 지난 날 너무 안해서 그랬지, 의지와 의사가 없었던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오랫동안 할 일이라니 그것도 어렵고요. 당장 회사가 멀어서 체력이 달려요.
지지부진한 날들이네요. 일을 하기 전에는 부모님 걱정 시키지 않고 밥벌이를 하고, 쉬는 날이면 책을 맘 편하게 읽을 수 있으면 족하지, 정도였는데 일이 너무 많은 제 시간과 에너지를 가져가고 있고 그렇다고 마음의 평온을 주지는 못하고 있어요. 통장 잔고가 드라마틱하게 늘고 있냐면 그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슬퍼요.
2015.06.28 17:57
2015.06.28 18:09
네 같이 우울합니다 그래도 어쨌든 할 일이 많은걸 도리어 위안으로 삼으시고
2015.06.28 18:12
매드맥스는 전체적으로 심각하기도 하고 꼭 그런건 아니지만 치고받는 액션영화라 취향에 따라 좀 지루할지도 모르겠어요.
끝에 무척 슬펐습니다 배우들이 너무 멋있어요.
2015.06.28 19:56
2015.06.28 20:15
러빙래빗/ 적응을 해야 할 일이겠죠. 포기를 하거나. 매주 더 우울해질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사자에상 방송이 인기가 있나 봐요. 그런 용어가 만들어진 걸 보면요. 너무 우울해하지 말라고 위로해주셔서, 고마워요.
가영님/ 가영님은 가끔씩만 영화 보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자주 봐요, 제 기준에 의하면. 매드맥스가 그렇게 좋은가보군요. 끝이 슬펐다니 조금 솔깃하네요. 그렇지만 안 볼거에요. 아마도요.
팔락쉬님/ 사실은 댓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너무 많이 변하지 않으려고 그간 애를 써왔는데, 저도 언젠가는 완전히 버렸다고 표현할 날이 올까 싶기도 하고. 일은 그만둘 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 분명하지요. 그깟 꿈이 무슨 소용이냐는 말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도 슬프고 그렇다고 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압도적인 현실도 너무나 끔찍하고. 그러네요. 아무튼 팔락쉬님 댓글 읽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참, 팔락쉬님이 쓴 글이 좋아서 제가 몇 번 댓글을 달았던 걸 발견했어요.
2015.06.28 23:07
험..제가 쓴 글인줄..ㅎㅎ 전 베이킹/실팔찌만들기 등 잡다하게 합니다만 그림그리던 시절이 부러워요. 그 때의 나에 비하면 참 사람된건되도 불구하고...ㅎㅎ
2015.06.29 01:24
개콘을 보면 웃기신가요? 컬투쇼를 들으면 어떠신지? 물론 보고나면 다시 허무한 상태로 돌아가긴 하지만요.
저도 영화는 거의 안봐요. 30대 이전에는 같이 볼 사람이 없어서 못봤지만 이후에는 인간사 다 거기서 거기인것 같아 굳이 영화를 보러가려고 붙였던 엉덩이를 떼지는 않습니다.
책은 얼마전 '창문을 넘어 도망친 백세 노인'을 읽었는데 이렇게 늙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역시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말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영화와 책을 안보고 창조하려는 의지가 없어졌다고 자신이 안좋은 쪽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2015.06.29 12:29
일요일 오후는 우울한 사람이 많은가봐요. 일본어론 오죽하면 사자에상 증후군이란 말이 있겠어요. 사자에상 방송시간이 저녁 6시반이거든요. 그래도 너무 우울해하지 마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