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요일 밤이네요. 일요일 밤에 스케줄이 없으면 나의 남은 시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돼요. 그리고...내가 나아질 수 있는 구석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죠.



 2.전에 쓴 일기에서 친구에게 '우리가 앞으로 더 잘될 수 있을까.'라고 중얼거렸던 일이 있죠. 그러나 이 말은 조금 틀렸어요. 신세가 나아지더라도 본인이 잘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소유한 것이 잘되어서 나아지는 거니까요. 


 일생의 어느 시기가 지나가면 그 사람의 신세는 이제 자기 자신의 발전에 달려있지 않거든요. 그 스스로가 아니라 그가 소유한 것...주식이라던가 땅 같은 것의 가치가 높아짐으로서 신세가 나아지는 것이지, 본인 자신이 나아지기를 기대하는 건 시간이 갈수록 포기해야 해요.



 3.하지만 요즘은 한가지 궁금한 점이 더 생겼어요. 신세가 나아져서 결국 뭘할 건지요. 멈춰서서 생각해 보면 신세가 나아지는 것을 반복하는 게 인간의 목적은 아니거든요. 여분의 리소스가 많아지는 건 목적이 아닌 무언가를 위한 수단이어야 인생이 풍족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수단이라...결국 뭐겠어요? 수단이라고 해 봤자 딱히 선택지가 있지도 않아요. 결국 다른 인간들과 수확물을 나누는 방향으로 가는 거죠. 하지만 그건 역시 싫어요. 머리 검은 짐승들에게 호구잡히며 사는 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니까요.


 그러나 다른 사람들...누군가에겐 소중한 아들딸인 사람들을 쥐잡듯이 하며 사는 것 또한 내가 바라는 게 아니예요. 인간들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4.휴.



 5.그야 관계가 느슨한 인간들을 상대하는 건 쉽고 즐거워요. 왜냐면 서로에게 아무런 책임도 역할도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롤에 얽매여서 연기력을 발휘할 필요도 없죠. 그냥 보다가...서로 호기심이나 쓸모가 없어지면 대충 안 보는 사이가 되어버리는 사이죠.


 그러나 관계가 단단해진 인간들. 즐거움의 영역이 아니라 일상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람들을 대하는 건 어려워요. 그들에게 잘 해 주면 호구잡히고 잘 안해 주면 미안하니까요.


 생각해 보면 그렇거든요. 잘 안해줄 사람인데도 그를 굳이 계속 본다? 그것도 참 이상하고 변태적인 일이예요.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드는 사람이라면 차라리 그를 위해서라도 아예 안 보는 사이가 되는 게 낫겠죠.



 6.그야 위에 쓴 '잘해 준다'라는 말은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말이예요. 잘해 준다라니...그건 상대에게 잘해줄지, 잘해줄지 않을지를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결정한다는 뜻이니까요. '잘해 주고 싶지 않으면 그렇게 해도 되는 선택권이라도 있다는 건가...?'라는 의문이 들죠.


 우연히 획득하게 된 약간의 유리함...그걸 이용해서 사람을 너무 후려치는 것도 알량한 인간이 되는 거겠죠.


 

 7.하긴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두려움을 지니고 있는 관계가 가장 건전한 관계일 수도 있겠죠. 그런 사이라면 '상대에게 잘해주지 않는다'라는 선택권이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으니까요. 


 그야 건전한 관계인 것과 즐거운 관계인 건 별개지만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낯선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겠죠. 처음 보는 사람들은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 그냥 식사하고...차마시고...그러기엔 낯선 사람이 더 좋은거예요.





 -------------------------------------------------





 갑자기 이런 생각이 더 강하게 드는 이유는 글쎄요. 어제 어떤 기러기아빠랑 축구를 봐서일 수도 있겠죠. 나는 만약 결혼을 한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요? 그야 결혼을 하기 전에는 절대로 기러기아빠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며 하겠죠. 하지만 현실은 본인의 의지대로만 직조되지는 않아요. 대등한 사람들, 또는 대등하도록 허락한 사람들을 곁에 두면 말이죠.


 어느날 아내가 와서 '그냥 아빠가 아니라 기러기아빠가 되는 게 네가 더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이야. 우리 자식의 미래를 위해 말이야.'라고 말하며 자식들을 유학보내길 종용한다면? 물론 나는 혼자 남아 살면서 돈만 보내고 아내는 따라가는 걸로요. 당연히 그런 건 겪기 싫은 일이겠죠.


 그런데...내게 와서 그런 강요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내 인생에 들인 상태라면 그때는 이미 선택권이 내것이 아니겠죠. 그 상황에서 '무슨 소리야. 내가 외롭지 않기 위해 너희들은 계속 한국에 있어 줘야겠어. 내가 외롭지않으려고 너희들을 부양하는 거란 걸 잊지 말라고.'라고 대답했다간 즉시 나쁜 아빠로 마녀사냥당할 거니까요. 울며 겨자먹기로 기러기아빠가 되어 주는 수밖에 없겠죠. 결국 자식을 낳았다면...그때는 자식을 위해 살게 되는 거니까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90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95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358
109118 Equal Play, Equal Pay ㅋㅋㅋㅋㅋㅋ [14] KEiNER 2019.07.11 1311
109117 이런날은 족발이나 뜯으며 소주 한잔하는게 딱이군요. [1] 귀장 2019.07.11 518
109116 수출규제 도발에 일본 맥주 인기 뚝뚝…아사히 2→4위 [11] 귀장 2019.07.10 1305
109115 손정의, AI, AI,AI 그리고 가장 이상적인 노동시간 [3] soboo 2019.07.10 906
109114 요새 토착쪽바리들 빼애액거리는거 구경하는게 그렇게 꿀잼이네요. [6] 귀장 2019.07.10 1329
109113 클릭주의) 데이터로는 클릭하지 마세요 39메가나 되는 GIF 파일 [5] 가끔영화 2019.07.10 685
109112 아기 엄마들은 무엇이 갖고 싶은가요? [3] 동글이배 2019.07.10 918
109111 지나가는 밤 - 내게 무해한 사람 중 [1] Sonny 2019.07.10 712
109110 오늘의 일본 잡지 ROCK SHOW(3) [2]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07.10 396
109109 Rip Torn 1931-2019 R.I.P. 조성용 2019.07.10 287
109108 [근조] '쟈니스' 쟈니 기타가와 영화처럼 2019.07.10 572
109107 요즘 날씨 [6] 칼리토 2019.07.10 589
109106 꿈이 보낸 메시지 [8] 어디로갈까 2019.07.10 748
109105 거 XX 좀 하면 어때.... (G-Dragon) [9] soboo 2019.07.10 1358
109104 [EBS2 K-MOOC] 설득의 과학 I, II [3] underground 2019.07.10 489
109103 우상을 보고 주절주절 바낭(약 스포) [4] 왜냐하면 2019.07.09 1409
109102 오늘의 일본 잡지 ROCK SHOW(2) (스압) [1]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07.09 432
109101 이런저런 일기...(처지) [2] 안유미 2019.07.09 638
109100 [넷플릭스바낭] '스포일러 가득' 버전 기묘한 이야기3 잡담 [8] 로이배티 2019.07.09 916
109099 601, 602 - 내게 무해한 사람 중 [1] Sonny 2019.07.09 82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