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7 23:25
[버베리언 스튜디오]와 [더 듀크 오브 버건디]의 피터 스트릭랜드의 신작 [인 패브릭: 레드 드레스]를 보았습니다.
저주받은 드레스가 나오는 호러영화예요. 이야기는 둘로 쪼개져 있고 주인공은 모두 덴틀리 & 소퍼라는 정체불명의
의상실에서 나온 붉은 드레스를 산 사람들입니다. 첫 번째 주인공은 얼마 전에 이혼한 쉴라라는 은행원이고, 두 번째
주인공은 레그 스피크라는 세탁기 수리공과 약혼녀인 뱁스입니다. 그리고 드레스를 입은 뒤로 이들에게는 이상하고
나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납니다.
장르 호러의 자극을 기대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스트릭랜드가 관심을 갖는 건 관객들을 무섭게 하는 게 아니라
20세기 후반에 나온 유로 트래시 영화의 독특한 미적 감각을 자기식으로 재해석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버베리언
스튜디오]에서도 그랬고 [더 듀크 오브 버건디]에서도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감독의 전작을 보고 예측을 하는
게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섭지 않고 이상하고 느린 영화라고 느낄 거예요. 각오하시기 바랍니다.
장르 전형성과 그 전형성을 위반하는 요소가 충돌할 때 가장 재미있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해요. 하나는 덴틀리 & 소퍼 의상실이 대표하는 기괴한 환상 세계입니다. [더 듀크 오브 버건디]에서 보았던
기괴한 미의식이 지배하는 곳이고 직원들은 모두 이상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는 끝까지 설명이 안 됩니다.
다른 하나는 주인공들이 속해 있는 현실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아주 현실적인 공포와 불안으로 구성되어 있고
사실 이 영화가 가장 무서울 때도 주인공들이 그 일상의 불안과 공포와 마주쳤을 때죠. 하지만 이 세계도
아주 온전히 현실적이지는 않습니다. 덴틀리 & 소퍼의 세계와 충돌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한데, 원래부터
조금씩 이상합니다. 두 개의 이야기가 드레스 이외의 요소로 연결되면서 더 이상해지지요. 영화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린치스럽지만 기본적으로는 스트릭랜드스러운 개성을 담은 이상한 세계가 완성됩니다.
재미있는 캐스팅의 영화입니다. 보통 이런 영화의 주인공은 매드첸 아믹과 같은 섹시한 젊은 여자이기
마련이죠. 하지만 스트릭랜드는 마리안 장-바티스트, 레오 빌, 헤일리 스콰이어와 같은, 장르 호러보다는
마이크 리나 켄 로치의 영화에 어울릴 법한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붉은 드레스를 입혔어요. 하지만 그
캐스팅의 일상성 때문에 오히려 현실 세계의 주인공이 갖는 갈망과 공포가 극대화되지요. 여기에
스트릭랜드는 자기 영화의 단골인 루마니아 배우 파티마 모하메드에게 스트릭랜드스러운
기괴함을 대표하는 독특한 연기를 시키고 여기서 기묘한 화음이 만들어집니다. 그 충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무슨 의미가 있냐고요? 그걸 꼼꼼하게 따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20/04/07)
★★★☆
기타등등
[더 듀크 오브 버건디]에 나왔던 Je Suis Gizella 향수가 나옵니다. 시제 바벳 크누트센의 카메오도 찾아보세요.
감독: Peter Strickland,
배우:
Marianne Jean-Baptiste,
Hayley Squires,
Leo Bill,
Gwendoline Christie,
Julian Barratt,
Steve Oram,
Barry Adamson,
Jaygann Ayeh,
Richard Bremmer,
Terry Bird,
Fatma Mohamed,
Sidse Babett Knudsen
IMDb https://www.imdb.com/title/tt7464188/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7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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