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28 15:03
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드디어 졸지 않고 영화관에서 다 관람했습니다.
옛날에 아주 대차게 꿀잠을 잔 적이 있어 이 번에 보면서 그 때는 언제부터 자고 언제 깼나 했더니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처음 울려 퍼진 뒤 1분도 안되어 꿈나라로 떠나서 정확히 주인공 중 한 명인 보먼이 초광속 이동하는 중간에 깼습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이 아무리 느려도 영화관에서는 그렇게 큰 소리로 울리는데 숙면으로 순간 이동할 수 있다니...
이번에도 음악 시작 후 1분 쯤 지나 눈이 감기고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정말 버텼습니다. 정신력으로!ㅠㅠ
작년에는 <해탄적일천>, <드라이브 마이 카>를 봤는데, 영화가 좋은 건 알겠지만 큰 재미는 없어서 좀 지루했는데,
이 두 편도 두 눈 똑똑히 뜨고 봤습니다.
그 게 뭐 별 거냐 하시겠지만 두 편 다 제 앞 좌석의 사람은 영화 시작 후 얼마 안되어 끌날 때까지 미동도 없어서
제 자부심은 더 커졌습니다. ( 너무 안 움직여서 좀 무서웠을 정도- 옆에 일행이 생사 확인 좀 해보시지 )
<해탄적일천>은 상당히 놀라운 영화더군요. 1983년에 남자 감독이 어떻게 이런 영화를 찍었는지-
아니면 2023년까지 오도록 특히 성평등 면에서 사회 전반의 발전이 지독하게 더디거나 아예 퇴행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약스포)
아버지 말 안 듣고 집 나가서 연애 결혼 하더니 결국 파경에 이르게 되는 딸이 어머니에게 사과를 하던가?하는
막바지 부분에서 어머니가 "ㅉㅉㅉ 내 그럴 줄 알았다~~~~~" 이러고 꼭 핀잔을 줄 줄 알았는데
어머니는 반가사유상 마냥 빙긋이 웃기만 합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만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자기 선택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아니 인생 살이에 맞고 틀리는 게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는 걸 오래 전에 깊이 깨달은 사람의 표정이었습니다.
예술 영화 재개봉이 자주 있으니까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도 언젠가 하겠죠?
그 때도 도전해보겠습니다. 예전에는 진짜 영화 시작 1분 만에 졸도( 졸았다 아닙니다 )하여
끝나기 1분 전, 집이 불에 활활 탈 때 깼습니다. 아니 어떻게 기특하게 엔딩크레딧 올라가기 전에 깼을까?
신비한 생체 시계~
2023.05.28 15:12
2023.05.28 15:41
'하나 그리고 둘'은 네이버에 있네요. 이 것도 봐야 겠습니다. '벌새'가 에드워드 양 감독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게
납득이 갑니다.
그래도 '해탄적일천'은 젊은 여성이 어른으로 의젓하게 자라고 사회적으로 성공까지 해서 좀 안심이나 되지,
'벌새'에서는 그 어린애가 인생의 너무 쓰디 쓴 맛만 대량 섭취하면서 철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많이 괴로웠습니다.
2023.05.28 23:58
대학생 때 영화 동아리 사람 십여명이 모여서 보다가 모두 잠든 전설의 영화가 있었는데... ㅋㅋㅋ 후보작(?)들은 떠오르는데 그 중 정확하게 어느 영화였는지 헷갈려요. '히로시마 내 사랑'이었든가 '동동의 여름방학'이었든가 아님 뭐가 됐든 누벨바그 영화였든가... 무슨 영화이든 간에 지금 보면 그 때만큼 졸립진 않을 것 같지만 뭐 두고 봐야(?)겠죠. 갑자기 그 동아리 사람들에게 연락하고 싶어졌습니다. 뭐였는지 마구 궁금해졌어요. ㅋㅋ
2023.05.29 15:52
'히로시마 내 사랑'도 네이버에 있군요. 영화 소개하는 짧은 영상 하나 보면서도 최면 걸리는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알랭 레네 감독. '지난 해 마리엥바드에서'도 숙면용 영화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영화 아닌가요?
앞에 '하나 그리고 둘'도 봐야겠다고 쓰긴 했는데 173분...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도 네이버에서
3일에 걸쳐서 봐서 갑자기 자신감이 떨어집니다.
저도 제작년인가 국내개봉했을 때 해탄적일천은 말씀하신 그런 부분 때문에 인상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이게 단독 장편영화 연출 데뷔작인가 그랬죠. 명감독의 시작은 연출 자체도 그렇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도 범상치 않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 분의 '하나 그리고 둘' 같은 작품들에 영감을 받아 수십년 후 한국의 김보라 감독이 '벌새'라는 영화를 만들게 됐다는 것도 참 감사한 부분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