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27 04:52
http://news.nate.com/view/20100727n01078
기사 아래 보면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일일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고 적은 오늘의 일기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뭐하던 사람인가 정말 궁금해서 약력을 검색해봤더니 민중당 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김문수 보좌관 이회창 총재 보좌, 김문수 도지사 인수위원, 국회의원에 원내부대표를 지낸 사람이네요. 과거에 민중운동을 하던 사람이 이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 안타까워요. 중간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체험 내용 중에 쪽방촌 사람들 도우는 일이 있는데 제가 만난 사람은 1급 시각장애자였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으나 1평짜리 골방에 박혀 매일
술로 지새웠습니다. 그 분을 부축하고 동사무소에 도움을 신청하러 가는데 인사불성에 속이 불편한 지 계속 꺼억댔습니다. 약방에 가서 제 돈
1,000원을 내고 속 푸는 약을 사드렸습니다. 집에 돌아가서는 걸레를 물에 빨아 방 청소를 해드렸는데 이불을 들자 바퀴벌레 수십 마리가
혼비백산 달아나더군요. 바퀴벌레 알도 쓸어내고 청소를 마친 다음에 젖은 수건으로 온몸을 닦아 드렸습니다. 기분 좋은 지 살짝 웃더군요."
여기서 직접적으로 쪽방을 사는 사람들을 비난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사람 전체적인 요지에 따르면 이런거지요. 자기처럼 건강하고 정보를 찾아다닐 의지가 있으면 6300원으로도 황제처럼 살 수가 있지만, 방에 앉아서 술만마시고 자기를 관리 안하면 항상 부족할 수 밖에 없다는거지요.
이런 사람들이 국회 의석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한 복지문제를 생존권의 문제로 받아들여 법안이 만들어지는걸 기대하기는 무리겠지요. 그나마 이 사람은 한나라당에서도 그나마 깨인 쪽에 속한다고 보는게 맞겠지요.
2010.07.27 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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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27 23:45
그 실험 자체는 원래의 의도에서 벗어나 점점 산으로 가다가 끝났고... 의의를 찾자면 '820원으로 뭔가 만들 수는 있지만 딱 그 뿐이다' 정도겠더군요. (댓글은 좌/우 '기믹'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고.) 거기서는 실험자의 직업이 식당 주인기 때문에 도매가로 재료를 구입하는 등의 이점이 있었는데도 - 결국 평균 식대는 1100원 가량이 되었고, 그나마도 거의 조림/무침류 같은 반찬에 1식 2찬 정도였습니다. 1식 3찬을 가끔 했기 때문에 820원을 상회했더군요. 결론적으로 식대 820원이나 그를 포함한 최저생계비는 "최저 생존비" 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도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의 비용을 통한 삶의 질 유지는 정부가 일자리도 없고 뭐도 없는 극빈층에게 긴급하고 심각한 용도의 생계 수당(그나마 주거비용 제외)을 지급할 때나 고려할 만한 수준이지, 뭔가 노동을 해서 급여를 받는 사람에게 지불할 만한 수준은 결코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하다못해 그 어렵고 가난하던 50년대에도 찐쌀 같은 군것질거리나 콩서리 같은 게 있었고, 60년대 가면 라면땅이 얼마나 많이 나갔습니까. 어른들은 알루마이트 누런 주전자에 막걸리 받아 마시고.
그래서 차명진 의원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입니다. 술을 안 마시면 인사불성이 안될 수 있죠. 하지만 두 가지 반례에 의해 이 원론적인 생각은 보충성이 필요하게 됩니다. - 우선 인간은 기계가 아닙니다. 태평천국운동도, 미국의 금주법도 모두 실패한 게 이유가 있죠.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오락을 통해 휴식을 얻습니다. 과연 인간이 어떠한 여유도 없이 계속 일에만 매진하며 수도승같은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성철스님 장좌불와는 인간이 하려면 할 수 있는 경지긴 하지만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닌 것처럼.
그리고 정말 심각한 문제는... 왜 그 모시고 간 사람이 스스로 일어서질 못했을까요. 희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절망이라는 게 반드시 큰 슬픔과 극적인 심리상태만을 묘사하는 건 아닙니다. 말 그대로 희망이 끊긴 상태죠. 사람이 바닥에 바닥을 치고 내려가다 보면 정말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전문용어로 모티베이션이 없다, 라고 학자들은 종종 말합니다. 아무리 악빨치면서 살아도 삶은 힘들기만 하고 희망도 보이지 않으면 하루 일과 자체가 고된 노동의 시간 겨우 넘기면 술이나 마시고 빨리 취한 뒤 잊어버리는 것의 나날인 거죠.
절망을 끊고 희망을 줘야 사람이 일어날 것 아닙니까. 정치인은 그러한 비전을 제시하는 책무가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거기서 왜 못 일어날까, 라고 생각하는 건 언어도단이죠... 차라리 세상은 경쟁이니 이 정도는 니가 알아서 해라 우리가 도와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라고 말하는 건 논리 앞뒤가 맞기라도 하지, 저런 식으로 '아무 문제 없잖아?' 라는 식으로 기술하는 건 참 미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