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개 키우지 맙시다

2012.09.25 19:15

로이배티 조회 수:4379

매주 일요일, 아주 불순한 의도로 sbs 동물농장을 봅니다.

간혹 애절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 위험에 처한 동물을 방치하며 촬영한다든지 해서 욕도 많이 얻어 먹는 프로그램입니다만.

엊그제 시작한 유기견 특집은 정말 똑 떼어다가 황금 시간대에 옮겨 놓고 의무 시청이라도 시키고 싶어지더군요. 개 함부로 키우지 말라고.




첫 장면에 등장하는 시추가 제가 마지막으로 키웠던 강아지와 너무 닮아서 시작부터 충격을 받고.

보는 내내 눈물이 감당이 안 되네요. 다음 회부턴 그냥 안 볼 거에요(...)


군대에서 군견병으로 근무를 한 덕에 개 안락사는 친숙합니다.

늙거나 다쳐서 더 이상 근무를 못 하게 하면 바로 안락사를 시키거든요.

수의사가 와서 주사를 놓는 동안 그 군견의 담당병이 개와 눈을 마주치면서 달래주는 게 규칙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마리 보내고 나면 담당병은 하루 정도 내무반 일도 빼 주고 그랬어요. 원래 개를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서 다들 너무 우울해하니까.

그런데 개를 좋아해서 수의사가 된 사람이 저런 시설에서 일하면서 며칠에 한 번씩 안락사를 시켜야한다니 얼마나 힘들까요.

개도 안타깝고 사람도 안타깝고. 그래도 저렇게 마음 다해서 봐 주며 끝을 함께해주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위안이 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니가 뭐라고;)


어쨌든,

자식들이 조른다고 해서, 혹은 자기가 좀 적적하다고 해서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책임감도 없이 개를 키우려는 사람들에게 데려가기 전에 강제로 보여주고 싶어요.

어린애 하나 키우는 거랑 별로 다를 것도 없는 일인데. 왜 그리들 생각이 없을까요.


그리고 사실, 제가 이렇게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제 부끄러운 과거지사 때문입니다.









저희 집 마지막 강아지인 시추 쎄리양 사진입니다.

어려서부터 피부병이 있었고, 돌팔이 의원에게 잘못 걸려서 몸이 더 안 좋아지고, 조카들이 태어나면서 가족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까지 받으면서 완전히 악화되었었어요.

어떻게든 낫게 해 보겠다고 매일매일 퇴근 후 병원 데려가고, 산책 시키고, 약 먹이고, 약 샴푸로 목욕 시키고, 말리고 등등 애를 써 봤지만 이미 회복될 상황이 아니었고.

1년을 꼬박 그러고 있는 제 꼴을 보다 못 한 어머니께서 '어딘가로 보내 버려야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걸 본 누나가 '동물 병원 의사에게 부탁해서 유기견들 맡아 키우는 곳으로 보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자기 집으로 데려가 피부병에 좋다는 개 사료를 직접 만들어 먹여가며 키웠다고 해요. 전 그 시점에 그냥 어머니랑 대판 싸우고 포기했었죠.

그러다 얼마 후, 뭔가를 가지러 빈 누나 집을 찾은 어머니께선 이 녀석이 꼬리를 치며 달려 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엉엉 우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그 날 바로 동물 병원으로 데리고 가서 '어떻게든 해 달라. 나도 정말 못 견디겠다.' 고 하셨다고 하고. 병원 원장은 이런 난치병을 연구하는 곳이 있으니 거기로 보내 보겠다며 녀석을 맡았다네요.


그러고 또 1년 후 쯤.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었다고 합니다. 그간 이런저런 조치를 다 해 보았으나 방법이 없다. 데려가셔도 좋으나 평생 독한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며 더 악화되는 것만 간신히 막으며 살아야 하고. 그걸 원치 않는다면 여기서 안락사를 시켜 주겠다. 


그래서 어머니께선 안락사를 선택하셨고. 이미 예전에 끝난 일로 생각하고 잊고 사는 자식들에겐 아무 말씀 않으시고 혼자 우셨다고.

이 이야기는 이 모든 일이 다 끝나고 몇 년 후에 어머니께 직접 들었습니다. 누난 아직도 모르구요.


...라고 적고 나니 예전에 이미 게시판에 적었던 적이 있는 얘기네요. -_-;;

동물 농장 때문에 기분이 격해져서 오버를...; 하지만 또 적은 게 아까워서 그냥 두겠어요. orz



암튼 그러합니다.

개 함부로 키우지 말자구요.

키울 거면 정말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한 번 맡으면 다 늙어서 잘 걷지도 못 하고 똥, 오줌도 못 가리는 강아지 수발들며 끝까지 지켜줄 각오를 미리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전 안 키울 거에요.

다 늙어서 퇴직한 후에라면 모를까. 그 전까진 자신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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