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잘린 고양이....

2013.08.06 14:13

kct100 조회 수:4604





새벽에는 정황이 없어서 질문글을 올렸는데 상황이 정리된 지금 다시 글을 써보아요.


마침 오늘은 새벽에 일어나서 작업을 하던 중이었어요.

새벽 5시정도에 방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어요.그리고 우리집 고양이가 우다닥거리며 방정맞게 제게 뛰쳐왔죠.



의례 있는 일이에요.

매사 매우 조심스러운 몸동작을 유지하며,장난감이 될만한 것들을 제외하면 우아하게 모든것을 장애물처럼 비켜지나가는 고양이지만,

허점이 많아서 번번히 그 큰 엉덩이와 긴 꼬리로 자기도 모르게 책상의 책이나 커다란 악세서리들을 바닥에 떨어뜨려 절 귀찮게 하곤 했거든요.

전 오늘의 그 소리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지요.


몇차례 제게 안겼어요.그것도 일상적인 범주였는데, 어느순간, 고양이가 지나간 제 허벅지 위로 묽게 묻어나던 피를 보고 말았어요.

정신이 순간 멍.해지면서 겁이 덜컥나고, 몸이 쏴해지더라고요. 고양이에 대한 걱정도 있지만 제가 피 자체에 관한 공포가 좀 있거든요.


고양이를 집어서 살펴보는데, 꼬리 끝에서 10cm가량 위쪽에 커다란 상처가 생겨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요.

칼집을 낸 고기마냥 살집이 벌어져 있었고,안으로 영화소품같이 묽고 조악한 빨간색 피가 뿜어나오고 있었으며,더 깊숙한 곳으로 작게 축소한 척추같은 흰색뼈가 보였어요.

고양이가 움직일때마다 꼬리의 끝부분은 덜렁덜렁 대면서 위태롭게 매달려 흔들렸는데,그건 거의 잘려진 상태와 다름아니었습니다.

그곳 가까이에 손을대면 고양이는 너무 놀라서 발톱을 바짝 세우며 제 어깨위로 올라가려 하는 통에 제 가슴에 상처들을 남겼고, 제가 조심히 안아주면 품속에서 이전엔 

듣지 못했던 숨가픈 숨소리를 내며 긴장했어요.


저에게나 고양이에게나 처음 겪는 상처였거든요. 처음 맞이하는 상처인데 꽤나 깊은 부상이었죠.


갑자기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고양이 머리위로 쏟아내며 저는 경황없이 이동장도 없이 고양이를 들쳐업고 밖으로 나갔어요. 

당연히 생애 처음 도시 거리와 직접적으로 맞닥뜨린 우리집 고양이는 완전히 경직되어 바닥에 들러붙어 울기 시작했죠.저는 다시 갤 업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그렇게 몇가지 우스꽝스러운 헤프닝들을 쏟아내며 결국 집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홍대 24시간 병원에 고양이를 맡기고 왔습니다.


병원에서는 일단 간단한 소독을 하고 테이핑을 했는데 꼬리쪽을 붙들자 피가 빗방울처럼 우두두 병원 바닥으로 떨어졌어요.

겁을 집어먹은 고양이는 제 머리위로 올라가서 제 어깨로 계속 피를 쏟아냈는데, 막 잠에서 깬듯 보이는 당직 의사는 그렇게 고양이를 제 머리에 두고서 치료를 했지요.


일단 소독을 했으니 조금 두고, 몇시간 뒤에 마취에 대한 내성검사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추이를 봐야 한다고 당직의사가 얘기했어요.

왜 당장 시술을 하지 않았던 걸까요? 아마 고양이를 담당할 의사가 아직 출근하지 않았던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시간은 아침 7시정도..


다른 병원을 찾아 헤메는건 저에게도 고양이에게도 너무 힘든 일이 될 것 같아 그냥 거기에 맡기고 집으로 돌아올수 밖에 없었어요.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그곳 이용평들이 나쁘진 않았거든요.믿기 어려울 수 있지만.


점심때 갑자기 밖에서 구멍뚫린듯 폭포수를 쏟아내는 그 시점에,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요.

엑스레이를 찍고, 수술을 하기 위해 부위를 자세히 보니 생각보다 부위 훼손이 심해서 절단을 하는게 이로울것 같다고요.

'네? 누구에게 이로운거죠? 그냥 두고 봉합하면 어떻게 되는데요? 뼈를 다시 맞춰서 조립못해요?'

그러나 소용없을 거래요..


그렇게 너무나 한순간에,경황도 없이 우리 고양이는 꼬리가 잘린 고양이가 되어 버렸어요.

아..뭔가 우습기도 하고 어이없는 허탈함.


한동안 꼬리를 빨지 못하도록 캡을 쓰고 있어야 하고,매일 제가 집에서 붕대 드레싱을 새로 해주어야 한다고 하는데 걱정이 태산같네요.

그 지랄맞은 아이가 캡을 어떻게 견딜것이며...전 과연 갤 붙들고 붕대 드레싱을 해줄수 있을지...


그래요. 꼬리 좀 잘린다고 특별히 달라질 것 없을지도 모르겠어요.그런데 뭔가 황당함과 함께 짠한마음이 가시질 않네요.



>

새벽의 정황.

우리집 고양이는 집안 온 벽과 바닥에 이렇게 피를 뿌려대며 너덜해진 꼬리를 흔들고 다녔던것 같아요.

늦게 발견해서 미안...쿵 하는 소리에 가보지 못해서 미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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