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외로 조용하네요.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25493.html

 

불교환경운동의 상징이자 4대강 반대에 앞장서온 수경 스님이

주지직과 승적까지 반납하고 잠적했다고 합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으로 강한 충격을 받은 것도,

장례를 축소하려던 조계종 본단과 마찰이 심했던 것도,  그러려니 합니다.

 

그가 남긴 글 중에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라는 고백이 정말 무겁게 느껴지네요.

성직자라면 저런 고백은 참으로 고통스러웠을 텐데.

많이 위선적인 사람들은 꿋꿋이 남아 있는데,

조금 덜 위선적인 사람들은 스스로 고통 속에 몸을 던지고 자책하고 괴로워하는군요.

당신이라면 조금은 위선적이어도 사람들은 이해해줄텐데요. 슬픕니다.

 

 

 

다시 길을 떠나며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2010년 6월 14일

수경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1445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0466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0725
125983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023) catgotmy 2024.04.14 140
125982 프레임드 #765 [6] Lunagazer 2024.04.14 79
125981 넷플릭스에 오펜하이머 들어왔네요 상수 2024.04.14 210
125980 미국에서의 고지라 [3] 돌도끼 2024.04.14 298
125979 기생수 더 그레이 (스포) [3] skelington 2024.04.14 342
125978 [일상바낭] 백수 1주차입니동ㅎㅎㅎ [9] 쏘맥 2024.04.14 288
125977 '라스트 콘서트' [10] 돌도끼 2024.04.14 269
125976 [티빙바낭] 감독들과 배우 이름만 봐도 재미 없을 수가 없는 조합!! 'LTNS' 잡담입니다!!! [8] 로이배티 2024.04.13 447
125975 리플리에서 일 마티노 지 보고 마침 이강인 기사 daviddain 2024.04.13 150
125974 프레임드 #764 [6] Lunagazer 2024.04.13 58
125973 2024 코첼라 시작 [4] 스누피커피 2024.04.13 303
125972 칼라판 고지라 - 아마도 고지라 최고의 흑역사? [6] 돌도끼 2024.04.13 239
125971 넷플릭스 [리플리] [11] thoma 2024.04.13 400
125970 Eleanor Coppola 1936 - 2024 R.I,P, [1] 조성용 2024.04.13 160
125969 #기생수더그레이 6화까지 다보고..유스포 [5] 라인하르트012 2024.04.13 443
125968 [웨이브바낭] 알뜰 살뜰 인디 아마추어 하이스트물, '터보 콜라' 잡담입니다 로이배티 2024.04.13 155
125967 [KBS1 독립영화관] 교토에서 온 편지 [2] underground 2024.04.12 257
125966 프레임드 #763 [4] Lunagazer 2024.04.12 58
125965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 공식 예고편(이사카 코타로 원작, 안은진 유아인 등 출연) [2] 상수 2024.04.12 313
125964 칼 드레이어의 위대한 걸작 <게르트루드>를 초강추해드려요. ^^ (4월 13일 오후 4시 30분 서울아트시네마 마지막 상영) [2] crumley 2024.04.12 162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