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이어트 플레이스가 끝나고 영화관이 밝아지자마자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말했어요. '이거 보자고 해서 미안해'라고요.



 1.같이 본 사람도 영화가 재미없었다고 평했는데 사실 나는 재미없지는 않았어요. 왜냐면 나는 영화가 시작하고 1분만에 재미에 대한 기대를 내려놨거든요. 



 2.생각해 보세요. 이 영화 주인공은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을 날 받아놓은 사람이라고요. 자신보다도 상태가 안좋은 노인들을 상대로 여포짓을 해대며 여생을 보내고 있는 비호감 흑인 여성이죠.


 그리고 놀랍게도 예고편에서 이런 정보는 없었어요! 없었다고! 이 영화 주인공이 호스피스 병동 환자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나는 이 영화를 처음부터 안봤을 거예요.



 3.생각해 보세요. 이런 영화는 당연히 생존이 목적이란 말이예요. 그리고 주인공은 살아갈 날이 한참 남았거나, 적어도 스스로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그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이입하기가 힘드니까요.


 하지만 어쨌든 돈을 내고 영화관에 들어온 참이었어요. 아무리 1분 지났다고 해서 매표소로 달려가 '이봐, 나는 이 영화의 남은 부분들이 재미없다는 사실을 이미 눈치챘어. 그러니까 환불해주지 않을래?'라고 소리칠 수는 없으니까요. 10년 전의 나였다면 충분히 그랬겠지만 지금 나는 10년 후의 나니까요. 사회적 체면이 있기 때문에 그런식으로 표값을 환불받을 수는 없죠. 그래서 마음을 추스리고 영화를 그냥 보기로 했어요.



 4.휴.



 5.그야 감독의 능력 여하에 따라, 주인공을 재미있게 그려낼 수도 있었어요.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세계관에서 중요한 능력치는 주력이나 체력이나 근력이 아니니까요. 과감성도 아니죠. 이 세계관에서 오래 살아남는 놈은 조심성이 많은 캐릭터거든요. 다른 생존물처럼 강하거나 전문 지식이 많다고 유리한 게 아니니.


 한데 콰이어트 플레이스란 영화 자체가 기존의 생존물에서 변화구를 던지는 영화인데, 주인공 캐릭터조차 이런 식으로 변화구를 던지면 안 되죠. 변화구에 변화구를 섞어버리면 그건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로 가버리니까요. 


 이미 세계관 자체가 상당한 변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작 주인공들이 찰떡인 거거든요. 살려는 의지가 충만한 선남선녀에 어린 아이들이 등장하니까 관객들이 조마조마하면서 볼 수 있던 거죠.



 6.한데 이 영화 주인공은 호스피스병동에서 여포짓하는 힙스터 여자란 말이죠. 내가 제작사 임원이었으면 이런 설정을 들고 온 놈을 던져버렸을 거예요. 젊고 건장한 백인 여자보다 더 생존물에 어울리는 주인공을 만들 자신이 없으면 그냥 젊고 건장한 백인 여자를 캐스팅하라고 말이죠. 


 왜냐면 어렵거든요. 세계가 멸망하는데 피자를 먹으러 가는 주인공을 가지고 생존물을 찍는 건요. 저 주인공 가지고 아예 반대 방향으로 끝까지 갈 거였으면 차라리 멜랑콜리아 느낌으로 라스 폰 트리에가 감독을 하던가 하지, 이도 저도 아닌 요상한 영화가 되어버렸어요. 헐리우드 영화도 아니고 예술 영화도 아니고.



 7.사실 이제와서 생각해 보면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준 것 같아요. 1편의 긴장감은 정말 좋았는데 결국 1편에서 보여준 긴장감은 기존 공식을 깼기 때문이거든요. 2편부터는 이미 먹어본 음식끼리 비교하는 건데 이렇게 되면 당연히 기존 음식이 더 나아요. 새로운 공식이 재미있어 보이는 건 전통적인 요소를 깨버린 순간 딱 한번이니까요. 느릿느릿 움직이며 괴물을 자극하지 않는 데서 오는 긴장감이 전부거든요.


 그리고 이 시리즈의 문제는 주인공들이 내는 소리가 괴물을 자극하느냐 아니냐가 매우 선택적이라는 점이예요. 1편에서는 소리를 내면 안 된다는 룰 때문에 긴장하면서 봤지만, 결국 영화는 영화더라고요. 주인공들이 아주 작은 소리를 내도 괴물이 찾아올 수 있고 상당히 큰 소리를 내도 괴물이 안 찾아올 수 있거든요. 결국 콰이어트 플레이스에서 괴물이 찾아오고 말고는, 주인공들이 소리를 냈냐 안 냈냐가 아니라 그냥 다 플롯이 결정하는 문제란 말이죠. 


 이쯤에서 괴물이 등장해줘야 하는 타이밍이면 아주 작은 소리에도 찾아오고, 아직 괴물이랑 만날 때가 아니라면 탭댄스를 춰도 괴물은 안 찾아와요. 그게 콰이어트 플레이스 시리즈의 한계예요.



 8.어쨌든 그래요. 이야기란 건 직구와 변화구의 조합이거든요. 직구로만 이야기를 만들면 재미가 없어지고, 변화구로만 이야기를 만들면 의미가 없어지죠. 한데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번째 날에서는 재미도 의미도 못 느꼈어요.



 9.적어도 이 영화에서 괴물들의 설정이라도 풀리던가 3편에서 반격으로 이어지는 뭐라도 줬으면 좋았을텐데...중간에 괴물들끼리 공사장에서 뭔가를 하는 떡밥을 빼면 아무것도 없어요. 굳이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데 자본을 써야 하나? 1, 2, 프리퀄에서 일반인들은 보여줄 만큼 보여줬으니 다음에 나올 3편에서는 괴물들을 베테랑처럼 상대하는 캐릭터들이 좀 나와줬음 하네요.  



 10.써놓고 보니 콰이어트 플레이스가 가장 알맞는 장르는 게임인 것 같네요. 게임은 플롯에 따라 규칙이 차등적으로 적용되지 않으니까 언제든지 괴물을 만날 수도, 피할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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