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7.14 00:00
사실 추억이라기엔 너무 짧은, 그냥 한 장면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이지만,
아래 봄눈님이 <사랑은 비를 타고> 영상 올려주시면서 실제로 빗속에서 춤추는 사람 있으면 어떻게 볼까 하는 말씀에
갑자기 제 기억 속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사실 별 거 아니지만, 저한테는 무척 애틋한 느낌으로 남아 있는.
때는 어언 중학교 시절. 1학년 때였는지 그 이상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여튼 저는 여자친구들과는 우악스럽게 잘 놀면서도ㅋㅋ
남자사람들과는 거의 어울릴 줄 모르던 그런 쏘녀였어요. 학교는 공학이긴 했지만, 분반이어서 더욱 기회가 없었죠.
수련회를 가면, 각반의 좀 논다하는 친구들은 다 나와서 춤을 추잖아요. 저는 그냥 자리에 남아 박수를 치는 아이들 중 한 명이었고ㅎㅎ
그 해에는 룰라의 3!4!가 워낙 인기였어서 여자반에서는 전부 3!4!만 하는 바람에
수련회 진행 측에서 노래 앞부분 한 절 정도만 틀고 끊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며 공연을 빠르게 진행시켰죠.
그러다보니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당최 들을 수가 없고, 계속 같은 무대만 보면서 지루해지고 있었는데
아아, 계획적이었던 것인지, 마지막으로 나온 팀이 대박이었어요.
당시 학교에서 제일 잘 나가던 일진;; 남자 아이들 둘이서 듀스 메들리를 준비해왔거든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그 열광의 도가니를요. 듀스 무대는 곡을 중간에 자르지도 않았고, 제 기억으로는 거의 네다섯 곡은 한 것 같아요.
그냥 그 녀석들 콘서트에 가까웠달까. 앞에 3!4! 무대는 그렇게 막 자르더니, 얘네들한테는 조명도 완전 빵빵하게 쏴주고.
저는 당시에 듀스보다는 솔리드를 좋아하던 쏘녀였는데, 음. 완전 반했어요. 듀스의 노래에도, 그 일진 녀석들에게도.
뭐 그렇다고 그 일진 녀석들을 개인적으로 막 좋아하게 되고 그런 건 아니구요, 춤 추는 남자의 멋에 대해 처음으로 깨쳐주었달까 그런ㅎㅎ
그렇게 폭풍 같은 장기자랑 시간이 지나가고, 하도 비명을 질러대서 목이 쉰 여학생들이 속출하고 그렇게 수련회가 지나갔어요.
그리고 드디어.. 수련회가 끝나고 학교로 돌아온 날 비가 왔어요.
친구들과 헤어져 혼자 집으로 향해 가는데, 저 말고도 주변에 같은 학교 학생들이 여럿 있었거든요?
근데 제 바로 앞에, 한 4-5미터 앞에 그 듀스 춤 춘 녀석들이, 우산 없이, 걸어가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순간, 이 녀석 둘이 갑자기 저들끼리 박자를 맞추더니 듀스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빗속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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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멋있었는지 몰라요;;;;; 그리 길게 추지도 않았는데, 여튼 그 순간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제 기억에 박혔습니다.
비가 꽤 많이 왔거든요. 그렇게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데, 중학생이라지만 키가 훤칠하게 큰 남자아이 둘이서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교복을 입고 - 교복도 어떻게 입었는지 상상이 되시죠? 당시엔 바지통을 크게 입는게 유행이었어요..
넉넉한 바지통에 흰 와이셔츠는 밖으로 내어 입고.... 비는 주룩주룩 오는데.... 듀스를! 듀스를!
그게 끝입니다. 그 이상으로 아무 것도 없어요^^;;; 개인적으로 제가 그 둘 중 하나를 짝사랑하게 되었다던가 저언혀 없습니다.
그냥 그 장면이, 이상시리 마음을 설레게 했던 것으로 기억에 남아 있어요.
자꾸 더해지던 공부에 대한 압박감과 쏘녀다운 사춘기 감성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에
소심한 나와는 달리 참 자유로워 보였던(동시에 위태로워 보였던) 날라리 소년들을 보며 느낀
어떤 동경과 부러움과 설렘이 뒤섞인 그런 감정과 함께요.
그러고보니 저는 그 시절 남자로 태어난 것을 부러워하던 여자아이기도 했네요.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운동한 다음 세숫가에서 윗통 벗어던지고 등목하고 그러는 거 되게 부러웠거든요.
그 동창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할까요. 스무살 언저리에는 그 중 한 명이 언더그라운드 힙합크루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학교짱들이었으니 인생이 아주 순탄하지만은 않았을 것도 같지만, 그렇게 반짝반짝했던 순간들을 지녔던 만큼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만약 듀게에 제 기억을 공유하는 동창이 있다면! 되게 신기할 것 같네요ㅎㅎ
으음 글의 마무리는 역시 듀스 영상으로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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