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에 찬 50대, '늙음이 낡음인가' 자괴감
대통령 선거 개표결과는 지역보다는 세대별로 갈라섰다.
조직되지 않고 동원되지 않은 젊은이들의 힘이 젊은 정치권력의 시대를 열었다.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18일 밤, 인터넷 공간에서 벌어진 젊은 세대들의 민첩하고도 전략적인 대응에 기성세대들은 경악했다. 이회창 후보를 찍었다는 엘지그룹 오정환 전무(59)는 “한마디로 무서웠다. 쇠뭉치로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20일 아침, 오 전무가 주재한 회사 간부회의 분위기는 무겁고 침울했다. “나이먹은 간부들은 모두 멍한 표정이었다. 간부들은 리더십의 문제를 심각히 고민했다. 한평생 먹고사는 일과 회사수익 올리는 걱정만 하다가 미래의 가치를 내다보지 못한 죄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소설가 이문열(56)씨는 19일 밤 개표방송을 보다가 술을 마시고 대취했다. “선동성에 노출된 젊은이가 다수가 되었다. 빨간 옷을 입고 다수의 힘으로 광장을 점거하는 젊은이들을 신뢰할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20일 아침까지 그는 술이 덜 깨어있었다.
전직 차관인 김시복(59)씨는 “젊은 세대가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해서 정치세력화한다면 기성세대와 마찰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대기업 중역 김아무개(57)씨는 “젊은이들의 힘이 특정정치세력화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저 순수한 변혁의 힘이기를 바란다. 통일 원동력이 된 경제력을 건설해온 세대의 고통을 부정하지 말아달라. 무섭고 두렵다”고 말했다.
월간지 <바자> 기자 김경숙(32)씨는 개혁국민정당 당원이다. 19일 밤 광화문에서 수많은 젊은이들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카페마다 젊은이들이 몰려들어 맥주잔을 쳐들며 환호를 질렀다.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젊은이들도 함께 함성을 질렀다. “우리는 정치적 이익을 바라지 않고서도 우리 후보를 위해 열렬히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것이 청춘이다. 우리는 조직이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조직처럼 움직인다. 핸드폰과 인터넷이 우리의 무기다”라고 김씨는 말했다.
소설가 조정래(61)씨도 개표방송을 보며 술을 마셨다. “이것은 혁명이다. 50대와 60대들은 근대화라는 업적을 민주화, 합리화로까지는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 결과는 김영삼과 김대중의 실패로 나타났다. 젊은 세대들은 정치에 대한 환멸을 희망으로 전환시켰다”라고 말했다. 조씨의 목소리는 활기에 넘쳐있었다.
얼마전 <문화일보>에 입사한 도올 김용옥(55) 기자는 전국의 유세현장과 투·개표 현장, 정당상황실을 며칠째 쫓아다녔다. “미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세대가 시대의 전면으로 등장했다. 기성세대들은 이 젊은이들의 힘을 그저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이 힘이 현실로 나타나자 기성세대는 충격을 받고 있다. 이회창은 일방적이었다. 그러나 노무현은 젊은이들과 쌍방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이것이 노무현의 승인이다”라고 김 기자는 말했다.
지난 19일 밤, 광화문에서 고려대생들이 20~30명씩 모여 건배를 하고 있었다. 고려대 학생기자 윤수현(23·경제학과 3)씨는 “이회창이 이겼다면 어른들은 이런 자리를 만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배인 임춘택(32·고대신문 간사)씨는 “월드컵, 소파개정 투쟁 열기 속에서 젊은이들은 개인의 판단으로 참가했다. 친구들끼리 가족들끼리 광장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희망을 느꼈다”고 말했다.
그 ‘희망’에 대해 50대는 여전히 의구심을 제기한다. 젊은 대통령의 ‘희망’ 앞에서 50대의 보통사람들은 주눅들고 불안해하고 있다. 늙음은 다만 낡음인 것인가, 고생하며 살아온 세월은 단지 수구냉전의 고착화에 기여한 것이었던가 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 앞에 처한 50대들의 자괴감이었다. 서울대 황상익 교수(50·전국교수노조 위원장)는 “기성세대는 이제 행동이나 판단에 있어서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역할분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낮, 서울 도심 식당에서 젊은이들의 식탁은 ‘노무현’으로 시끌벅적했고, 50대들은 조용히 밥을 먹고 있었다.
김훈 기자 hoonk@hani.co.kr
(편집 2002.12.20(금)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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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냥 조용히, 밥을 먹고 있겠습니다. ..
자괴감도 들지만, 할 수 없죠.
10년전의 50대 분들의 심정이 지금의 저와 같았을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10년전의 소설가 이문열씨 처럼, 대취하고 싶지는 않네요. ..
아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이 아이와 나의 정치성향이 달라져서 이 아이가 나를 등진다면 나는 슬플까. 예. 슬프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아이를 덜 사랑하지도 않고,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정신 승리하지도 않고, 친정부모님을 좋게 생각해 보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늙음이 낡음인가?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상처를 입었고 이게 낫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굳이 덧나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영영 지지 않을 흉일 수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