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순간 제게 가장 강하게 드는 생각은 그거예요.

한 장의 투표도 커다란 권리이지만, 투표만으로 저절로 되는 건 아니라는 것.

나는 한 표를 줄 거라는 이유만으로 진보의 성장은 알아서 해주기를 기다렸다는 것.

 

윤여준 전 장관의 말처럼, 저도 빚이 있어요. 민주화에도 산업화에도.

저는 다행히도 유신시대나 군부독재 치하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았어요.

제가 거저 쥔 한 장의 투표권 안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가 묻어 있는지 알아요.

이 빚을 갚으려면, 그냥 투표를 잘 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진보가 더 성장할 수 있도록 더 열심히 정치 참여를 해야 하는 거였어요.

 

앞으로의 5년이 두렵고, 생각만해도 숨이 막히지만

우리 아주 길게 봐야하지 않을까요.

유신 치하 18년 동안을 민주화 투쟁을 하며 버틴 분들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고도 또 전두환을 맞이하고 노태우를 맞이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분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이명박 다음에 다시 박근혜를 맞이한다는 것만으로 벌써 포기하면 안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흔들릴수록 그동안 싸워온 분들 지금도 싸우고 있는 분들을 지켜주기가 더 어려워지잖아요.

 

박근혜를 막기 위해 투표했던 분들이 그 마음 그 열정 그대로

계속해서 정치에 관심을 갖고, 자신의 뜻을 반영해주는 정치인을 후원하고 정당에 가입하고

지역단위의 생활정치가 좀 더 활성화된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5년 후를, 10년 후를 기약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며칠 전에 처음으로 제가 지지하는 정치인에게 후원금 십만원을 보내봤어요.

십만원이면 연말정산 때 그대로 돌려준다는데도 그걸 올해 처음 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러웠어요.

앞으로는 더 많이 관심을 가지고 제가 할 수 있는 활동들을 찾고 그러려구요.

 

한국의 진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피를 흘렸는데도,

지금도 참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고생하고 있는데도

그래도 아직 이만큼밖에 안 된대요.

 

근데 이만큼이라도 되는데에 제가 한 일이 없습니다.

앞으로 5년 오히려 더 힘을 내고 열심히 살아보려고 해요.

그래야 제가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을 것이고,

제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 미래세대에게 그때 뭐했냐고 책망받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상황들 속에서도 진보를 지지한 국민수가 결코 적지 않잖아요.

투표율 올라간 게 곧 야당에게 유리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정치라는 것이 훨씬 생활 속으로 들어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요.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문제였던 시절보다는 그나마 나아진 것 아닐까요?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지금부터가 진정한 시작 아닐까요?

 

 

얼마 전에 종강을 맞이해서 이제 눈팅 기간 끝내고 이런 저런 바낭을 나누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개표 결과에 많은 듀게분들이 너무 상심하시는 듯 해서 결국 이런 진지글을 써버렸네요ㅠ

다들 오늘 수고 많으셨어요. 이럴 땐 그냥 더 이상 생각 않고 어떻게든 자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럴수록 건강챙겨야 합니다ㅠㅠ

지난 몇 년 간 제 정신건강은 듀게가 지켜주었어요. 듀게 여러분, 고맙습니다.

앞으로 5년도 듀게와 함께 버티겠어요. (듀게.. 괜찮겠죠? 막 검열이 생긴다거나 그럴까봐.. 하이고.)

마지막으로 진중권 트윗을 제 맘을 대신하여 올립니다.

직접 사랑고백을 하기에는 쑥스러우니까요.. ^^;;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290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1960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2365
62738 대선을 치룬 뒤 다짐 [1] 헤일리카 2012.12.19 902
62737 지금 밤하늘을 보세요... 예언사냥꾼 2012.12.19 755
62736 과를 물을 때인가? 잔인한오후 2012.12.19 661
62735 여러분 수고하셨어요.. [2] nomen 2012.12.19 627
62734 문재인, “뜻을 받들지 못해 죄송하다” 패배 인정 [12] magnolia 2012.12.19 2831
62733 그저 답답하고 속상합니다. [1] 슈크림 2012.12.19 635
» 한국사회가 진보하길 바라면서 정작 저는 한 일이 없다는 반성이 들어요 [3] 13인의아해 2012.12.19 1018
62731 [바낭] 나의 20대. [9] hanadai 2012.12.19 1362
62730 안철수씨는 미국으로 가시는군요 [2] 낭랑 2012.12.19 1772
62729 공약은 얼마나 지켜질까요 [3] 양산 2012.12.19 716
62728 선거 끝난건가요? [1] 메피스토 2012.12.19 784
62727 한 달 뒤에 유럽 가는데 베레 2012.12.19 638
62726 올해의 마지막 정치 잡담 글을 적어 봅니다. [4] 로이배티 2012.12.20 932
62725 우리가 지금 도대체 문재인에게 무슨 짓을 시킨 건가요 [12] 꼼데 2012.12.20 3788
62724 서럽고 분해서 펑펑 울면서 왔어요 [6] 해마 2012.12.20 1765
62723 10년 전(2002년 12월 20일), 김훈씨의 신문 기사. [2] 041910 2012.12.20 1544
62722 한국 사람들이 만족하는 민주주의는 군사독재만 아니면 되는거 아닐까요? [9] 디나 2012.12.20 1609
62721 왜 경기도와 인천에서 졌을까요? [10] 르귄 2012.12.20 2698
62720 우리는 목숨을 걸고 쓴다지만 [1] 매일 그대와 2012.12.20 1208
62719 동북아 최악의 조합: 시진핑-푸틴-아베-박근혜-김정은 [16] apogee 2012.12.20 2856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