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23 11:26
아래 아이들 교육에 관련된 글이 있어서 그동안 생각했던 아이 교육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참고로 저희 집 아이들은 일곱살, 네살의 사내아이들이고 둘 다 집근처의 숲유치원에 보내고 있어요. 독일에서 숲유치원 들여오신 분이 하시는 곳인데 일반적인 어린이집에 비해 야외활동이 많고 아이들이 싸우거나 문제를 일으켜도 다른 곳처럼 심하게 간섭을 하거나 판단해 주지 않는 것 같아요. 어쨌거나..
1. 세상에는 부모의 수만큼 교육 철학이 있는것 같아요. 하기사 애들 교육을 고민하는 부모라면.. 그나마 먹고살만한 부모라는 증거기도 하겠지요.
2. 한국의 교육환경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역동적이고 공격적인 것 같습니다. 경쟁에서 밀리면 그나마 취직줄도 막히고 취업을 못하면 해먹고 살 일이 없는 청년 실업의 지옥으로 직행이지요.
3. 그래서 혹시나 우리애 자존감이 떨어질까 경쟁에서 밀려 낙오자가 될까 전전긍긍하는 공포의 연대가 생겼고
4. 아무리 불경기네 뭐네 해도 애들 교육에 관련된 산업을 불황을 모르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5. 그리고 4의 교육산업 관계자들은 애가 태권도를 안하고 피아노를 안치면 영어를 모르고 선행학습을 안하면 인생이 망하고 그게 다 부모 책임인것 처럼 공포를 확대 재생산 하지요.
6. 그런데 생각해보면 부모들의 사교육 어디에도 스스로의 개입이나 책임감 같은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좋은 학원이나 선생님을 찾기위한 탐색과 그 사교육을 감당하기 위한 노동만이 있지요. 마트에서 알바를 뛴다거나.. 투잡을 뛴다거나..
7. 애들을 전문가에게 맡겨두는 이면에는 부모 자식간의 소통의 부재가 있기도 합니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뼈빠지게 고생해서 너를 교육시키고 있으니.. 너는 이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일방적인 요구와 거기에 대한 아이들의 스트레스는 초등학생이 성적 부진으로 자살을 한다거나.. 등수가 몇개 미끄러졌다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고등학생을 만들기도 하구요.
8. 애를 키우는 이유가 그 아이의 자존, 자립, 행복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이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한 혹독한 수련 과정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9. 8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거나 각 가정에게 부과하는 건 너무 가혹할뿐더러 비 양심적인 일입니다. 이건 사회 공동체와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고 도와줘야 하는 일이죠. 이런 제도와 고민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어온 사회를 우리는 선진국, 혹은 이민가고 싶은 복지국가라고 부릅니다. 대부분 북유럽이죠.
10. 그래서 저는 가급적이면.. 사교육보다는.. 우리 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미있는 일은 배웠던 공부는 힘들었던 일들은 무엇이었는지 물어보고 들어주는게 제일 좋은 교육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철학을 함축하고 있는 단어가 바로 저녁이 있는 삶이구요.
현재의 사회를 돌아보면 아빠를 엄마를 아이에게서 빼앗고 삭막한 사교육의 영역으로 떠미는 주체가 바로 한국사회라는 괴물입니다. 저녁이 있는 삶을 꾸려가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와 슈퍼파워 과외 선생님이 있더라도 이 사회의 미래는 감정없는 사이코패스들이 지배하는 메마른 사회가 되겠지요.
아이들과 대화하며 들어주며 키우겠다는 결심만 조용히 되뇌일 뿐입니다.
2015.04.23 11:32
2015.04.23 17:59
아빠 엄마의 갈등은 자로 잰듯이 똑같군요. 저희집도 비슷하기는 한데.. 애를 공부시켜 출세시키자는 주의는 아니고.. 진작부터 직업 교육쪽으로 올인하자..는 쪽인게 좀 다르다고 할까요.
2015.04.23 18:10
2015.04.24 09:09
근데 직업이 의사라면....
2015.04.24 11:19
직업이 대기업 사장이라면.. 직업이 판검사라면.. ㅎㅎㅎ
2015.04.23 11:34
일단 이 고민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아이가 있어야겠네요
그 선행으로 결혼을 해야겠는데 . . .
결혼은 또 누구와 하느냐 하면 하하 . . .
이건 절대적으로 국가 놈들의 탓입니다!!
2015.04.23 18:00
아. 이글 읽는데 왜 눈에서 땀이 나죠?? 여름이 빨리 오긴 왔나 보네요..
2015.04.23 11:48
8. 애를 키우는 이유가 그 아이의 자존, 자립, 행복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부모가 감당할 수 없는 이 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한 혹독한 수련 과정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학원이 아주 많은 동네에서 자랐어요. 그래서인지 예전부터 제가 부모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아이들 교육에 대해서 가끔 생각해봤어요.
머리로는 방목해서 놀리면서 행복하게 키우고 싶은데 막상 아이를 낳았을 때 빡세게 안 시킬 자신이 있느냐 하면 아니었거든요.
이 간극에 좀 괴로워하기도 했고요. (왜 아직도 일어나지 않은 일을;;;;; 현쓸걱쟁이입니다.)
이 글에서 어느정도 그 이유를 찾은 것 같네요.
2015.04.23 18:02
마냥 놀린다고 행복한 건 아니겠죠. 모든 이야기들을 봐도.. 고난-도전-극복-성취의 패턴에서 보람과 행복을 느끼는 거니까요. 교육도 단순하지 않지만 인생은 더 복잡합니다. 수련은 필요하지만.. 거기에 올인시켜 버리면 애가 망가질까봐 걱정이라는 뜻이죠.
2015.04.23 13:53
저는 미혼이고 결혼도 포기했지만. 어떤 글에서 아동복지센터를 만든 의사의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우리 아이가 행복한 인생을 살려면, 또래 다른 아이들도 행복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세상 속에서 우리 아이도 남의 아이도 행복할 수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이런 비슷한 얘길 했는데, 교육, 복지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임은 분명하지만 그래도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개인에게 있지 않나 싶었어요.
2015.04.23 18:05
아동복지센터를 만드는 선행은 분명 칭찬받을 일이지만..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이런 식으로 개인에게 모든 문제를 전가하고 국가와 책임있는 자들이 부담해야 할 마땅한 의무를 방기하는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기도 싫은 세월호 사건을 봐도 책임지는 사람 없이 1년을 넘게 왔죠. 지금도 투명하게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자는 이야기조차도 극렬 분자들의 무리한 요구처럼 전가시키는 형편이잖아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은 영원히 얻을 수 없겠지만.. 대부분이 만족스럽게 합의하고 동의하는 최소한의 행복은 적어도 국가와 사회가 책임질 몫입니다. 애초에.. 아동복지센터는 국가에서 만들어야 하는게 맞는거구요. 아이들에 대한 투자는 그 부모나 아이 당사자를 위해 하는게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하는거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2015.04.23 18:32
네 다 맞는 말씀입니다.
부모입장에서 쓴 글, 댓글을 보고 있으니 대부분 사회분위기, 구조적 문제 등으로 그냥 결말짓게 되는 것 같아서요.
결국, "세상이 이러니 어쩔 수 없어..." 이런 얘기들은 개인을 더 나약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도 복지를 자꾸 민간부문, 자발성에 치우치는 걸 아주 못 마땅하게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등과 권리와 보편을 외칠 상황도 안되고, 현실 앞에서 자꾸만 좌절하는 개개인의 모습이(저 포함) 안타까워
개인의 가능성이 더 커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습니다^^
일찌감치 경쟁을 겪게 되는 아이에게 이겨서 살아남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인 교육인 것 같아서요.
2015.04.23 16:15
그 선진국들도 막 고심해서 제대로 복지 법을 만든 건지 아니면 그냥 꼴리는 대로 하다 보니 운 좋게 제대로 된 건지가 궁금해지네요.
7+8번을 합쳐 보면, 7번의 부모들의 요구는 8번을 끝까지 자기 자식을 위한 거라고 자가최면을 거는 행위가 아닐까도 생각되네요.
2015.04.23 17:35
2015.04.23 17:45
2015.04.23 17:58
북유럽 복지선진국도 하루아침이 아니라 시행착오가 많지 않았을까요?
운이랑 시기가 좋았다해도 기본 철학이 후진국이면서 신자유주의 국가와는 애초부터 다른 듯....
2015.04.23 18:20
스웨덴 복지와 역사등을 잘 정리한 엔하위키 글을 링크합니다. https://mirror.enha.kr/wiki/%EC%8A%A4%EC%9B%A8%EB%8D%B4/%EB%B3%B5%EC%A7%80 보시면 아시겠지만 스웨덴이라고 지상 천국은 아니고 교육 면에서도 여러가지로 비판이 없지 않습니다. 다만 잘 조직된 노동자를 대변하는 사민당이 집권한 이후로 "국가는 국민의 집", "모든 아이는 모두의 아이"라는 인상적인 슬로건을 내세우며 지금의 복지 사회를 만드는데 똘똘뭉쳐 지금의 스웨덴을 만든 거죠.
우리나라의 문제는 교육에서 출발하지만 사실 교육 자체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교육을 뜯어고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회사 다니다 퇴직한 아버지가 치킨집을 차렸다가 망합니다. 그러면 그 집 아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을까요? 집안에 있는 모든 자산을 투자해서 유학까지 보낸 아들이 돌아와 대기업에 취직한다 쳐도.. 애 키우고 교육시키느라 노후 자금 준비를 못한 부모를 부양하자면.. 자신의 미래를 밝게 볼 수 있을까요?
국가와 사회 이야기를 한건 어떻게 살아가던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이 필요하고 그 근간이 되는 것이 보편적인 복지이며 거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책임진 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는 슬로건이 아직도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한 집안에서 몸이 아프고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가족들이 일하지 않는자 먹지도 말라고 한다면 그 집안이 제대로 된 집안은 아니죠. 우리는 그런 집을 콩가루라 부릅니다. 국가는 국민의 집이라는 스웨덴의 철학에 비춰보면 지금의 한국은 말 그대로 나노단위로 쪼개진 콩가루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교육이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5.04.23 18:52
ㅎㅎ 나노단위로 쪼개진 콩가루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적 합의를 할까요... 막막하네요.
말씀하신 것처럼 스웨덴도 완벽하진 않지만 오랜 시간동안 토론하고 합의해서 그나마 인간의 삶과 밀접한 정책을 만들어왔지요.
타게 에를란데르 총리가 23년간 장기 집권하면서 정책을 꾸준히 지속시켰던 배경도 있을테구요.
한국은...ㅠㅠ 애초에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 (점점 초기산업혁명처럼 되고 있는)부터 수정되지 않으면 힘들지 않을까싶어요.
2015.04.23 21:16
2015.04.23 22:16
공감합니다. 저는 "저녁이 없는 한국인의 삶"이 자녀들에게 과외선생을 붙이는 게 아니라 진정 관심을 갖고 소통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라고 확신합니다. 어쩌다가 저는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여기 선생님들이 끝없이 강조하는 게 아이들에게 관심 가져라, 숙제를 같이 해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알고 있어라.. 이런 메일을 항상 보냅니다. 이동네 부모들이 대부분 다섯시면 다 퇴근하는 분위기니까 가능하지요 일단.
2015.04.24 11:21
사실 시간이 나도 아이들과 소통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죠. 저희 집만 해도 제가 빈둥거리는 시간에 개인적인 다른 일을 하지 아이들이랑 대화를 하거나 뭔가를 같이 하기는 참 힘들거든요. 소통이라는 게 말이 쉽지.. 어렸을때부터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우리 또래의 아버지들에게는 가장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2015.04.24 09:34
저녁이 있는 삶이 아주 인상적으로 와 닿는데. 야근이 강제되는 일반 기업 직장인들에게는 힘든 일이 아닐까 싶네요. 출퇴근이 고정된 공무원이나 전문직 가정이 아니라면 힘든 조건이네요. 아이들이 혹독한 수련을 겪는다는 얘기 인상적입니다. 하지만 수련 후 맞서야 하는 상대는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어요. 공포에 의해 조장된 막연한 허상 같은. 세상이 대부분의 사람에게 악한 의도를 가지고 언제든 자빠뜨릴려 한다는 공포. 그런 공포는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앞만 보며 달려가게 만들죠. 돈을 내게 하고 억울한 일을 당해도 참게 하고. 무한경쟁 레이스에 참여하지 않으면 내 아이가 자빠진다는 공포. 그 공포는 어느 정도는 사실이겠지만, 그 공포속에서 자식을 바라볼 때 나는 이 세상에 지는 것이다. 그 공포 밖에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아야 한다. 세상에는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영역도 있지만 어느 정도 협력을 추구하는 영역도 있고. 보상은 작아도 안정적인 삶도 있구요. 경쟁이라는 게임에 빨려들어가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성적경쟁 같은 걸 피할 순 없겠지만, 의도적으로 '이 경쟁은 매우 이상한 상황이고,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전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교육해야겠다. 그런 생각이 드네요....제 자식은 많이 어리지만(3살 ,1살 이에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네요...
2015.04.24 11:25
좋은 통찰이세요. 저도 동감하는 부분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면 현실적으로 가장 쉬운 부분이 이민이 아닌가 싶어요. 시스템이 그렇게 자리잡은 나라에서 주변 환경에 맞춰가며 아이들을 키우는게 제일 편하겠죠. 한국 사회는 어찌보면 직장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겪을 수밖에 없게 만든 구조가 아닌가 싶어요.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단어를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아빠들이 아닌가 싶구요. 집에 가서 애들이랑 뭘 하라구?? 뭘?? 대체 뭘?? 그시간에 나랑 비슷한 동료들과 술마시고 얘기하고 인맥쌓고 그러는게 훨씬 이득이잖아..라고 이야기 하면서 사실은 가정과 분리되길 바라는 심정이 강한거죠. 그러다가 나이들어 자식들이 외면하면.. 내가 희생을 해서 너희들이 이렇게 자랐는데.. 왜?? 이러면서 또 빡치고..
공감합니다.
저도 초3 아들 하나 키우고 있는데, 항상 교육 문제로 아내와 부딪힙니다. 아내는 '요즘엔 그렇게 안시키면 안된다'를 입에 달고 살고, 저는 '30년 전에 나도 똑같은 소리 들었지만 결국 공부는 자기가 하는 거다'로 맞서죠.
아이가 원해서 공부를 하면 도와주겠지만, 부모가 자신의 자위 목적으로 시키는 공부는 절대 반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