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4 03:04
1. 10월 9일에 제가 글을 하나 올렸는데 댓글이 많이 달렸습니다. 남자들보고 살림하라고 악다구니 쓴 것도 아니고, 가전제품 쓰고 사람 사서 쓰면 더 경제적이라는 온건한 글에, '위험한 발상'이라며 긴 댓글이 달린 걸 목격했죠. 한국 사람들은 진짜 여자들이 살림을 쉽게 쉽게 처리하는 모습을 그냥 보질 못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전에 제가 한옥짓는 목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분 하시는 말이 요즘 양식 집은 여자들에게 너무 편하다면서, 한옥은 불편하기 때문에 운동을 많이 하게 되고 따라서 여자들에게 좋다고 하더군요. 환기가 되지 않는 부엌에서 장작으로 요리를 하면 폐암 확률이 높아지고, 한겨울에 우물물 길어서 살림하면 손이 부르틉니다. 우리가 과학을 배우고 혁신을 추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이 환경을 바꿔서 더 편하게 살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혁신과 생산성 향상의 흐름에서 여자들은 소외가 되어야하는지 모르겠군요. 제가 예전에 조선일보 이규태 칼럼을 책으로 읽은 적이 있는데, 거기 보면 이규태 기자는 일제시대 한국 여자들이 콩나물을 빨리, 쉽게 다듬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 것은 일이 없을 때의 무료함을 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일이 줄면 얼마나 좋은데 왜 그런 생각을 할까요. 기술과 경제학 원리는 위험한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제대로 다룰 수 있는 남자들만 사용해야 옳은 것일까요? 하긴 어느 오소독스한 종교집단에서는 핸드폰도 못쓰게 하는데, 그것도 남자들에게는 허용되더군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최근까지 여자들이 운전하는 것 조차 허용되지 않았구요.
2. 이진주씨가 만든 걸스로봇이란 단체가 있는데, 여성들이 이공계에 진출하는 걸 돕는다 하더군요. 뭘로 돈을 버는지 비즈니스 모델 (혹은 정확히 정체가 뭔지)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여성들이 이공계 전공한 다음 해외취업하는 건 괜찮은 루트인 것 같아요.
http://girlsrobot.co.kr/
3. 저번에 제가 올린 글에 달린 모스리님의 댓글을 읽었습니다. 아이를 낳아서 밥을 챙겨주는 경험을 해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들죠. 무럭무럭 잘 자라길 바라는 생각도 있고, 아낌없이 주는 사랑을 느끼기도 하겠죠.
어렸을적 어머님이 우리들에게 항상 따뜻한 밥을 주셨죠
자신이 드시는 밥이 묵은밥이였을지라도
그건 내 새끼가 무럭무럭 잘 자라길 바라는 바램으로 인한 행동이지
가족내 지위가 낮아서가 아닙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아오신 어머님들
그러한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랑에 대한 경험을 해보지도 않은 님이
인생을 길게 보지 못하며 눈앞에 내 떡조각만 보는 좁은 식견의 님이
주제 넘게 함부로 평가할 "가치"가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로 엄마들에게 연필과 지면이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할까요? 자기가 지은 새 밥을 자기 입에 먼저 넣지 못하고 자식에게 남편에게 주었을 때, 그 머릿속에는 모성애만이 가득했을까요? 만화가 순두부 님은 엄마로서 자식이었던 자신을 되돌아보며 이 질문에 대한 힌트를 줍니다.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er/57123
밥에 티끌만한 고춧가루라도 묻으면 밥 안먹는 아이. 찬 밥에 물말아주면 밥 안먹는 아이. 굳은 밥 있으면 던지는 아이. 햇반이면 끈적하다고 안먹는 아이.
자식에게 밥을 지어서 먹여본 부모라면 새 밥이었을 때와 헌 밥이었을 때 아이가 밥먹는 속도, 정도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머릿속에는 "야. 이번만 대강 먹어"란 말이 맴돌아도, 일단 배를 불려놔야 내가 다음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참고 해달라는 대로 지지고 볶고 끓여서 내놓기도 하죠. 인생을 살아보면 알게 되죠. 자식들은 깊이 생각하기 귀찮아서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그 이면에는 피로, 짜증, 분노, 인내, 계산, 그리고 어른된 입장도 있다는 걸요. 제 생각에 인생에 대한 식견이란 건, 어머니 머릿속에도 모성애 말고도 다른 게 있다는 걸 이해할 때, 어머니라는 타인의 입장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할 때 생길 수 있을 겁니다.
2018.10.24 07:01
2018.10.24 09:09
2018.10.24 23:29
2018.10.24 09:47
2018.10.24 10:12
2. 후원 받거나 기관 지원금 받나봐요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989822&memberNo=30808112
저는 컨셉이나 대표가 하는 말이나 막 공감이 가는 건 아니고 그닥 신박한 아이템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뭐 좋은 강연자리 만들어주면 좋을 것 같긴 하고.. 포기한 꿈을 남들은 지속하도록 응원해준다는 게 신기하긴 하네요ㅎ
2018.10.24 11:29
1. '한국 사람들' 로 갑자기 점프해버리면 that's nono 죠.
2. 여성들 공학계로 진출해야 된다고 했다가 '그럼 여성들이 문제라는 거냐?''라고 쌍욕(?)먹고 머리 빻은 한남충 되었던 것이 떠오르네요.
3. 모성애가 여성들을 옭아맨다고 신격화를 해체하는 것은 좋은데 모성애로 받는 고통도 머리속으로 시뮬레이션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2018.10.24 21:29
2018.10.25 04:58
2. 그 누구더라 실리콘 밸리에서 몇 몇 남성 리더들이 젊은 여성들더러 이공계 전공하라고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이유인 즉슨, 이제 곧 기술을 소유한 사람들, 혁신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소득을 가져가는 세상이 올텐데, 그렇게 되면 남녀간의 부의 격차가 심하게 벌어진다는 거였어요. 따라서 성별간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stem을 전공해야한다는 거죠.
3. 시뮬레이션할 필요가 있을까요? 보통 이런 걸 '역지사지'라든가 'emotional intelligence'라고도 하죠.
2018.10.24 13:59
이규태 책을 전에 봤는데 볼만한 책 입니다, 콩나물 이야기도 짠해서 그럴 듯 합니다.
여자 고생하는 게 운동도 되고 좋다고 아직도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많이 있죠.
엄마의 애정은 사람의 인식과 무의식이 합친 모습 입니다 굿이 최선의 선으로 여겨도 무리는 없지만요.
2018.10.24 17:03
그런 의미에서 전 한국사람들 뇌속에 각인되어 있는 '집밥'에 대한 '신화'를 해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밥먹는것은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전혀 경제적이지도 그리 따뜻하지도 않아요.
얼마전 상해에 있는 '본가'를 백만년만에 가서 밥을 먹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둘이서 한국돈으로 3만원 채 못되는 식비를 지불하며 고기구이 2인분과 된장찌개 그리고 미니사이즈 냉면 한그릇을 먹는데
본가 스타일은 네명이 앉는 테이블에 밑반찬과 쌈야채를 가득 올립니다. 이 한상을 집에서 3만원에 차릴 수 있을까요?
식자재 비용도 아슬아슬해 보이고 게다가 인건비는 어쩔려구요?
모성애라느니 어머니 손맛이 깃든 집밥의 정체는 경제학적으로 드라이하게 말하자면 가족단위에서 한 사람(주로 여성)의 일방적 희생, 전혀 그 댓가가 지불되지 않는 착취를 통해서 구축된 '신화'라는거죠.
4차산업혁명 어쩌구 저쩌구 소리를 들을 때마다 초기 사회주의공산주의 이론가들의 주장한 '대안'이 어쩌면 혜안이었다는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모든 종류의 가사노동은 물론이고 출산-육아-교육까지 공동체가 합의하여 구축한 시스템으로 해결하는것이 '개인'의 '자유'가 더욱 커질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이 아닐까해요.
2018.10.24 18:11
2018.10.25 04:53
일단 저는 goddusk님이 여성 착취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을 그렇게 단정지어서 이야기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goddusk님이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틀렸다고 하는 것도 아니예요. 다만 발등에 불 떨어져서 당장 꺼야하는 사람(예: 가사노동과 직장노동을 병행해야하는 주부)과, 먼산에 불구경 하는 사람 (예: 어머니 가사노동에 얹혀 사는 사람) 은 처지가 다르다는 거예요. 자본주의가 문제고, 기술에는 양면성이 있다. 밖에서 일하는 한국의 기혼여성들에게 한가한 이야기예요. 제가 친정 어머니면 내 딸 그냥 가전제품 사줘요. 내 딸이 가전제품 산다고 한국사회의 남녀평등 문제가 해결되는 거 아니고, 살림할 시간에 딸이 나가서 돈을 더 벌면 한국사회의 소득 불평등 문제 더 커진다, 인도 한국 아프리카 중국에 가전제품 못사는 여자들이 더 많다고 가전제품 쓰지 말게 할까요. 지금 젊은 여성 세대까지 이 형이상학에 시간 낭비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goddusk님은 "아웃소싱할 여력이 없는 사람들은 과연 저 학자부부만큼 건강한 가정을 확신할 수 있겠느냐"고 하셨는데, 예전 글에서 나왔던 theory of comparative advantage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면 이래요. 사실은 자원이 부족한 사람일 수록 아웃소싱을 해야합니다. 자원이 부족할 수록 경제적으로 써야하기 때문이예요. 당장 잘 시간도 부족한 사람들은 쌀씻고 밥하느라고 시간 낭비하는 것보다 그냥 햇반 데워먹고 잠을 더 자는 게 나아요. 오늘 보니까 루리웹에서 망한 pc방 살린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이 사람더러 전통적인 가사노동을 하라고 요구하고 매일 쌀씻고 상 차리라고 한다면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어요? 그냥 식당에서 사먹는 게 나아요.
중요한 문제는 아니지만, 저는 가사노동 발주자이자 수주자입니다. 제가 명령내리고 제가 해결하죠.
2018.10.25 14:19
2018.10.24 23:06
2018.10.24 23:28
2018.10.25 01:32
아.... 지나간 글에서 (제 기준으로) 뒷북 댓글 전투가 벌어졌었군요. 윤주님&고덕님과의 전투는 보기 드문 좋은 토론이었는데 살짝 서로 핀트가 어긋난 지점이 보이더군요. 거시적 관점에서는 윤주님 의견에 동의하는 편인데 미시적 관점에서는 겨자님의 주장이 확 와닿을 수 밖에 없더군요. 독거노인 생활 15년간 가전제품과 도우미를 직접 이용하며 갖게되는 편익을 잘 알고 경험해본 마당에 이것이 사회문제의 궁극적인 문제해결일 수 있느냐 아니냐 따지는건 좀 피곤한 일이에요. 일단 내 몸이 편하고 게을러질 수 있는 시간을 버는거 부터 하고 난 다음에 혁명을! 지지난 겨울 광장을 밝힌 촛불혁명에 많은 여성들, 특히 누구의 아내이고 엄마들로 보이는 중장년층 여성들이 많이 보이더군요. 저에겐 87년의 광장과 가장 다르게 보이는 풍경이었습니다. 그게 자본주의의 한계이건 말건 여성들이 30년전처럼 가사와 육아에 개인의 육체와 시간을 갈아 넣어야 했던 생활방식을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저렇게 많이들 광장에 나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미래를 바꾸는건 결국 의지와 이론만으로는 안되요. 그것을 현실에서 담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물적 토대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적 논리에 의해 발명되고 생산되고 소비되었다해도 가사노동을 도우는 상품들은 여성들이 자기 삶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물적토대가 되어줄 수 있어요. 그게 결과나 종결이 아닌 시작이 될 수 있다는거죠.
그런데 이번글은 유의미한 댓글 전투에 대해서가 아니라 모XX라는 듀게의 오래묵은 여혐 어그로의 멍청한 댓글을 겨냥한 것이었군요.
흠.... 요즘들어 그런 생각이 듭니다. (특히 트위터 페미니스트 진영의 경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면서) 저 멍청하고 쓰레기같은 여혐 어그로들에게 대꾸하고 그 빻은 짓들을 퍼날르고 공격하는것이 오히려 그들이 내뱉은 '말'에 힘을 보태는건 아닐까? 하는 그런 고민이 들어요.
2018.10.25 14:26
거 쫄지 말고 대범하게 제 아이디 정확하게 쓰십시다 인터넷 모욕죄 머 이런걸로 귀찮게 안할테니 ㅎㅎ
그리고 님이 자랑스러워하는 위대한 중국 찬양글도 좀 쓰시구요~
2018.10.25 04:36
이렇게 된 거 로봇청소기 사시라고 영업 글 올리고 갑니다. (사실 저는 룸바보다는 니토Neato를 추천합니다만)
원래 아이로봇의 룸바의 알고리듬은 MIT의 여성과학자 헬렌 그레이너 Helen Greiner가 만들었다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이 분은 스타워즈의 R2-D2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죠. 룸바하고 R2-D2가 비슷하죠? "룸바로봇이 청소를 대신해주면 한 사람에게 연간 평균 110시간의 여유가 생기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테크 플러스는 전하네요.
https://blog.naver.com/tech-plus/221383468278
2018.10.28 14:17
애 배를 불려야 다음일을 할 수 있어서 맛있는 걸 먼저 준다, 는 내용 깊이 공감됩니다... 깨달음이 오네요, 그런 것이었구나. 한큐에 설명이 됩니다.
2018.11.05 04:58
아이를 먹이는 아버지의 입장도 항상 부성애로 가득찬 것만은 아니라는 걸 오무라이스 잼잼에서 재밌게 풀어낸 적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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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웃기는게, 가사노동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노동이 평가절하되는 걸 지적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가사노동이 상품화되기 시작하자 무슨 페미니즘이 여성노동자를 착취하는데 일조라도 하는것처럼 호들갑을 떨더란 말입니다.
본문에서 이슬람 사회 예시를 드셨는데,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런 현상에는 '직접적으로 돈을 벌지 못하는 가사노동은 일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뿌리박혀있는 겁니다. 남편이 밖에서 벌어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편하게 살림이나 하는 주제에 집안일에 사람 사서 쓸데없이 돈이나 쓴다는 생각을 하는거죠. 비단 전업주부 말고 직장에 다니는 주부에게도 별 생각없이 이런 식으로 자기들 편하게 생각하는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