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미제라블 감상

2012.12.21 17:13

영화처럼 조회 수:2559

대선결과를 알고 나서 무력감에 빠졌습니다. 다음날 휴가를 내놔서 망정이지...

힘을 내고자 다음날 아침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내와 동네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저는'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좋아합니다. 

96년, 2000년 내한공연과 라이센스 전에 국내극단의 해적판 공연을 봤고,

런던캐스트 2CD와 컴플리트 3CD 앨범, 10주년, 25주년 콘서트 DVD를 구입해 수없이 반복해 듣고 봤습니다.

아내는 저와 함께 공연과 DVD를 보긴 봤는데, 집중하지 않았는지 별로 기억하지 못하더군요.


공연을 본 팬의 입장에서는 물론 공연이 더 좋고, 영화는 공연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디테일을 집중하게 하는 보완제로서 기능을 잘 살렸다는 느낌입니다.

반면 공연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는 아내는 영화를 보며 많은 눈물을 흘렸고, 스토리 진행을 잘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군요.


영화는 공연과 거의 비슷한 러닝타임과 진행을 보여줍니다.

요즘 대작영화가 많아지긴 했지만,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영화에서는 부담스러운 분량이죠.

공연에서는 무대전환과 함께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게 자연스럽지만, 노래진행에 맞춰 같은 장면을 컷전환으로 표현하는 영화는 급작스런 점프컷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공연에서는 서로 다른 공간에 있는 배우들이 한 무대위에서 앙상블을 부르는 장면이 영화에서는 컷으로 나뉘어 단절되는 느낌입니다.

클로즈업과 하이앵글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디테일에 집중하기 위한 의도는 알겠지만 좀 과하다는 생각이 들고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라이브 녹음이라 원샷을 길게 잡은 탓도 있겠지만, 클로즈업이라도 바스트샷이나 풀샷을 다양하게 활용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클로즈업과 원경 CG처리로 로케이션 비용을 절약하려는 의도는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고요.^^;; 오프닝의 CG는 너무 티가 났어요.


공연에서 영화로 이식되면서 매체 간의 연출 차이로 인해 더 힘을 얻은 곡과 손해를 보는 곡이 있습니다.

클로즈업으로 배우의 내면연기의 디테일을 강화하는 솔로넘버들은 더 힘을 얻었죠.

앤 해서웨이의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폭발적인 파워를 발휘하는 팡틴의 'I Dream the Dream'과

장발장의 참회와 회한을 심도깊게 보여주는 'Who Am I'와 'Bring Him Home'은 원곡의 힘을 배가시켜 주었고

마리우스의 뜨거운 눈물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전해주는 'Empty Chairs At Empty Tables'는 원작을 뛰어넘는 묵직한 울림을 전해주었습니다.
원작과 달리 마리우스를 코제트와 만나게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부르는 에포닌의 'On My Own'은 퍼붓는 빗줄기와 함께 짝사랑의 아픔은 깊어졌지만, 행복한 연인에 대한 질투로 슬픔의 폭이 좁아진 느낌입니다.
장발장과 자베르의 칼싸움이 벌어져 박력을 더한 'Confrontation'은 두 사람의 노래만으로 긴장감을 연출했던 공연 쪽이 더 좋았지만, 둘의 격돌과 장발장의 탈출로 이어지는 스토리 진행은 영화가 매끄러웠습니다.
장발장의 최후와 커튼콜 합창으로 이어지는 피날레는 배우들의 연기력을 과시하며 영화적으로 깔끔하게 표현되어 폭풍 눈물을 불러왔습니다. 중창에 에포닌이 빠진 건 아쉽지만, 사실 공연에서도 그 장면에서 에포닌의 등장은 좀 생뚱맞긴 했죠.

반대로 군중이 함께 부르는 곡은 손해를 봤습니다.
'One Day More'는 컷 전환에 맞춰 배우들의 발성을 짧게 끊어가며 불려져 장중함이 덜했고, 다른 공간을 아우르는 앙상블의 입체감이 죽었습니다.
죄수, 직공, 거리의 여자들이 부르는 코러스, 테나르디에 부부와 손님들이 부르는 곡들도 클로즈업이 들어가 공연의 왁짜지껄한 분위기가 덜 살더군요.
그리고... 자베르의 솔로 넘버들이... 러셀 크로우의 노래실력이 딸려서 힘을 잃었습니다. 크흑! 'Stars'는 제가 참 좋아하는 곡인데.

휴 잭맨의 장발장은 좋았습니다. 무대출신 답게 연기와 노래를 모두 잘 소화했습니다. 체구가 좀더 당당했으면 좋았을텐데 늘씬한 꺽다리의 느낌이었고, 나이가 들어가도 별로 변화가 없는 게 아쉬웠습니다.
앤 해서웨이는 짧지만 강렬한 연기와 뛰어난 가창력을 선사합니다. 강력한 여우조연상 후보죠. 다만, 너무 이쁩니다. 망가진 후에도 배경과 이질적일 정도로 도드라지게 너~무 이뻐서 몰입에 방해가 됩니다. 
러셀 크로우는... 노래를 못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노래만 잘했으면 장발장을 했을텐데,  락커 출신이지만 뮤지컬 노래는 간신히 부르는 수준이다 보니 연기에도 방해가 되고, 자살장면에서도 자베르의 고뇌가 잘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공연계를 대표한 사만다 바크스는 탁월한 가창력을 과시했고 누구보다 능숙하게 자신의 배역을 소화해냅니다. 피날레의 등장신을 빼앗긴 것이 아쉽겠지만, 에포닌 대신 등장한 것이 무대의 대선배 콤 윌킨슨이시니 토를 달 수 없겠죠.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에디 레드메인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빛내는 연기와 노래를 보여주었고, 샤샤 바론 코헨과 헬레나 본햄 카터는 감초역할을 해냅니다만 아무래도 공연무대의 테나르디에 부부에 비해서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공연 무대의 오리지널 장발장이었던 콤 윌킨슨이 미리엘 주교로 등장하고, 사만다 바크스와 앙졸라스 역의 아론 테빗이 공연에서 스크린으로 자리를 옮겨 노래실력을 뽐냈습니다.

전체적으로, 무대에서 영화로 옮겨진 레미제라블은 여전히 강력하고 웅장한 감동을 선사합니다. 
배우들의 호연과 영화매체의 특성을 살린 연출이 효과적으로 무대의 매력을 전달했지만, 이식의 한계를 느끼게 하는 부분도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날이면 날마다 공연이 열리는 게 아닌 만큼, 영화 레미제라블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벅찬 감동을 선사하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뮤지컬 팬이라면 콘서트 DVD와 함께 공연의 감동을 되새기게 해 줄 소장 아이템이 하나 더 늘어난 것도 즐겁겠죠.

ps. 세월이 하수상하니, 마지막 가사를 되새기게 됩니다. Tomorrow 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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