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이야기

2012.03.09 01:27

멀고먼길 조회 수:1108

멀고먼길입니다. 꾸벅.

 

듀게에 올라오는 꼬냉이 이야기는 대체로 푸근하고 따뜻하다지요.

하지만 전 그런거 없이 하드보일드하고 드릴넘치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고양이가 귀신 본다는 이야기, 믿으십니까?

 

 

 

물론 전 믿지 않습니다만 어이 잠깐.. 믿을 뻔 했던 일이 있었지요.

 

이것은 무려 실화인 것입니다....!

 

상큼했던 복학생 시절 뭐임마 굉장히 친하게 지냈던 후배녀석이 있었습니다. 아, 물론 지금도 친하지요. 어느 정도 친했냐면...

이 아이가 고향에 내려갈일이 생기면 방열쇠를 저한테 맡깁니다. 그럼 제가 그 방에서 며칠을 먹고자고 하면서 할일하고 가끔가다 청소도 한번씩 해주고 뭐 그랬지요.

그러니까 열쇠를 함께 쓰던 관계였던 것입니다!

 

...흠흠, 각설하고 이 후배를 A라고 칭해보지요.

A는 사실 굉장히 개방적인 주거관리를 하기로 유명했던 터라, 열쇠를 함께 쓰던 강조하지마 저 외에도 온갖 군상들이 그의 방에 수시로 드나들었습니다. 주인은 없는데 창문을 따고 들어와서 객들끼리 술판을 벌인다거나...

21세기에 80년대스러운 캠퍼스라이프를 누리고 있던 녀석이었지요. 아무튼!

그 일은 A의 방에 선배 B가 고양이 한분을 맡기면서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B가 고향에 갈 일이 생겼는데 그의 부모님은 애완동물이라면 질겁을 하시고 그렇다고 주말내내 고양고양님을 빈방에 버려둘 순 없고...해서 동네 공용계정으로 유명한 A의 방에 임시로 고양님의 거처를 정한 것이지요.

무려 흰 바탕에 검은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아진 (혹은 그 반대일지도....) 자태를 뽐내시던 그 분은, 그러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시지 못했습니다.

저와 A와 그외 떨거지들이 꼬냉쨩 가와이를 외치며 끌어안을때마다 버둥버둥권을 시전하시며 우리의 품을 벗어나기 바빴지요.

저와 A와 그외 떨거지들은 어떻게든 그 분을 품에 영접해 보려고 하악거리고, 그 분은 저희에게 '너희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를 외치는 듯이 이빨을 드러내며 하악거리고...

이런 대치 상태가 계속되는 한편 B는 고향에서 일이 생겨서 당분간 서울로 돌아오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화무십일홍에 권불십년이요, 타렉고사 지팡이가 국민아이템이 되는 것처럼 그만 갖다붙여 그 분도 우리의 관심에서 멀어져갔습니다.

싱크대에 잔뜩 쌓여있는 접시A와 같은 존재가 된 것이지요. 그분은 그때 즈음 양 발목 사이를 온몸으로 훑고 지나가시는 스킬에 재미를 붙이고 계셨습니다.

평소에 그 존재를 잊고 있다가 새벽에 컴퓨터로 사교활동 와우 에 매진하고 있는데 꼬리를 꼿꼿이 세운 어떤 털달린 물체가 다리사이를 스윽하고 스쳐 지나가면 소름이 짝짝 끼치는 것은....설마 저뿐일까요?

게다가 옷장위에 훌쩍 올라가 우리를 내려다보며 하악~~~~! 하고 일갈하실 때의 그 분은....그야말로 지옥에서 우리를 끝장내기 위해 올라온 사자 같았지요.

 

그리고.....

기말고사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시험공부에 매진해야 된다는 핑계로 그 날도 A의 방에서 뒹굴거리고 있었지요.

A는 저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프린트를 보는 척하더니 어느새 "형, 제가 내일 일교시 시험이라서요, 밤새면 시험 망칠것 같아서 차라리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할게요."라는 김수령 솔방울 타는 소리를 지껄이고는 냅다 드러누워 버렸지요.

"형, 저는 빛에 민감하니까 불은 꼭 꺼주세요." 라는 추가주문까지 붙여서요.

저는 "하하, 알았어. 이런 성실한 녀석, 화이팅이다! 지금 한시 반인데 어떤 새벽에 일어나시는 건가요 꼴통아  "라는 응원을 남기고 불을 끄고, 스탠드 불빛에 의지해 꿋꿋이 공부했지요.

아시겠지만, 고양이는 어두운 공간에서 옵틱 블래스트를 쏩니다. 눈이 빛납니다.

이 분께서 저보고 자지 말라고 불이 꺼지자마자 옷장위로 뛰어올라가 번개같은 안광을 뿌리면서 하악~~~~! 이라 외쳐주시더군요.

그러다가 훌쩍 뛰어내려와서 제 양발을 끼고 빙글빙글 돌기 시작합니다. 치즈라도 되고 싶은게냐...

제가 이 모든 시련을 거치고 꿋꿋이 공부를 하고 있으려니, 이 분이 기어이 A의 집 화장실로 들어가더군요.

 

참고로 A의 연산회로에는 청소라는 개념이 탑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방에서 담배도 피워요.

화장실 휴지는 흘러넘쳐서 발바닥에 채일정도가 되어야 치웁니다.

화장실 겸 욕실은 천장부터 바닥까지 타일 구석구석에 담뱃재 + 물때가 끼어 있습니다.

일본 도시괴담에서 나오는 사람모양 얼룩을 보고 기겁한 적도 있었죠.

해서 저와 친구들은 A의 화장실을 '일곱 난장이의 던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 청소하려면 백설공주에 나오는 일곱 난장이의 손 정도는 빌려야 할거라고 말이죠.

 

아무튼 이 자시....이 분께서 그 던전으로 사뿐사뿐히 들어갑니다.

세면대 위로 훌쩍 뛰어올라가더군요.

옵틱 블래스트  안광을 뿌리면서 저를 지그시 쳐다봅니다.

새벽 세시에, 방은 컴컴한데.

 

신경쓰인다고!

 

한 삼십분을 그러고 있다가, 돌연 울기 시작합니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군요.

화장실 천장구석을 바라보고 우는데, 제 시야각에 들어오지 않는 부분입니다.

이십분째 울고 있어요.

 

울지마!

신경쓰인다고!

내 상상력을 자극하지 마!

최소한 사람모양 얼룩을 등지고 앉지는 말라고!

 

그 분은 도대체 그 야심한 시각에 뭘 보고 그렇게 울었던 걸까요?

 

그 다음날 저는 A에게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반 농담으로 "니 방에 무슨 역병신이라도 붙어있나 보다"라고 말하자 A가 하는 말이....

"형, 제가 자다가 잠깐 깼었는데, 처음에 고양이가 형을 보고 운게 아니라 형 머리위를 보고 울고 있더라구요."

 

내 상상력을 자극하지 마!

 

아직도 고양이가 마냥 귀엽기만 합니까?

 

 

 

 

 

 

사실, 이거 다 웃자고 하는 이야기인거 알죠? 주 차삐까...

 

그런데 써놓고 보니까 왠지 고양이가 아니라 A를 까는 듯한 느낌이....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997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895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9259
81722 부서진 달걀 [2] 석가헌 2012.03.09 1027
81721 화차 보고 왔습니다. 스포는 없어요. [2] 푸른새벽 2012.03.09 1974
81720 [듀나인] 이베이 해외 배송 관련 질문 드립니다, 나름 급한지라 T.T [5] 루이스 2012.03.09 918
» 고양이 이야기 [3] 멀고먼길 2012.03.09 1108
81718 화차..를 보고..[약간 스프첨가] [3] 라인하르트백작 2012.03.09 1802
81717 [아마도 바낭] 위로 좀 해주세요. [15] LH 2012.03.09 2193
81716 조만간에 캠핑카 타고 여행갑니다~ ㅎㅎㅎ [7] ColeenRoo 2012.03.09 1301
81715 소녀시대 숙소 좀 열악하지 않나요? [31] soboo 2012.03.09 6707
81714 바낭)ntldr is missing [2] 가끔영화 2012.03.09 705
81713 Toy Shining [5] 날다람쥐 2012.03.09 1167
81712 [듀나인] 영화를 찾아요! [5] 소풍 2012.03.09 825
81711 갤S2 + 아이패드2 [1] ev 2012.03.09 1138
81710 힘내기 위해 마시는 음료 (에너지 드링크 바낭) [18] loving_rabbit 2012.03.09 2328
81709 [ing 서평] 매일 리프레쉬 되는 노출된 뇌세포의 자아찾기? 무비스타 2012.03.09 851
81708 이히 금요일이에요. [3] 살구 2012.03.09 697
81707 전여옥 의원.. 마치 불사신과 같군요. [8] 완성도 2012.03.09 2873
81706 잠이 안 와서 결국은 영화 보면서 밤을 꼴딱 샜네요...=_=;; [3] ColeenRoo 2012.03.09 860
81705 [강정] 이쯤에서 적절한 4개월전 프레시안 기사. [6] 오뚜기 2012.03.09 844
81704 [강정] 이쯤에서 적절한 5개월전 프레시안 기사(경제효과 관련) [9] 오뚜기 2012.03.09 958
81703 나경원 외모의 전여옥 vs 전여옥 멘탈의 나경원 [21] 완성도 2012.03.09 339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