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기증 (2014)

2014.12.02 00:29

DJUNA 조회 수:6009


순임은 큰 딸 영희, 의사인 사위 상호 그리고 고등학생인 막내 꽃잎과 함께 전원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영화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영희는 아기를 낳고 가족 모두는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이 행복은 곧 끝나버립니다. 순임이 손주를 씻기다가 실수로 그 아이를 죽여버리고 만 것이죠. 충격을 이기지 못한 영희와 상호는 집을 떠나고 순임은 꽃잎과 함께 집에 남겨집니다. 그리고 이건 고통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돈구의 전작 [가시꽃]처럼 [현기증]도 감독이 짜놓은 사악한 음모에 말려들어 끔찍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가시꽃]에는 속죄의 가능성이 열려 있었지만, [현기증]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 중 죄인은 없습니다. 순임은 심각한 실수를 저지른 노인네일 뿐이죠. 하지만 그게 더 문제입니다. 아무도 죄를 짓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속죄가 가능하죠? 책임이라는 약한 단어를 써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매 증상이 시작된 노인네에게 어떤 책임을 묻는다는 겁니까?

이는 분명 묵직하기 짝이 없는 질문이며 훌륭한 드라마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돈구는 아직 여기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충격적인 도입부 이후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야 하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일단 이렇게 이야기를 열었으니 순임과 가족 사이로 영역을 제한하고 여기서 이야기를 발전시켜야 할 텐데, 그게 잘 안 됩니다. 영희와 상호가 나간 뒤로는 캐릭터간의 상호작용이 어렵고, 그 뒤에 사건 중심에 서는 꽃잎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새 고민을 안고 옵니다. 그 결과 이야기가 산만해지고 중요한 질문에 답변은 계속 유보됩니다. 감독이 생각했던 것처럼 잘 묶이는 이야기가 아니었던 거죠. 결과물은 연결되지 않는 고통의 전시장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극저예산 영화지만 [가시꽃] 때와는 달리 유명한 배우들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이름값을 하지만 영화에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순임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엔 스타 캐스팅이 필요하지 않아요. 오히려 모두 잘 알려진 배우라서 텔레비전 단막극처럼 감상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순임의 경우도 김영애처럼 연기의 매너리즘이 잘 알려진 배우를 캐스팅하지 않았다면 더 효율적이었을 거 같고요. (14/12/02)

★★☆

기타등등
미지근하게 리뷰를 쓰긴 했지만 그래도 굉장히 무서워하며 본 영화라는 점은 고백해야겠습니다. 전 아기의 죽음과 치매라는 소재 자체가 무서워요. 영화가 이를 어떻게 다루어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감독: 이돈구, 배우: 김영애, 도지원, 송일국, 김소은, 김민지, 김학선, 최유송, 다른 제목: Entangled

IMDb http://www.imdb.com/title/tt4023856/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13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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