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기억해 (2018)

2018.04.13 23:58

DJUNA 조회 수:10757


이한욱의 [나를 기억해] 시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전에는 [마리오네트]라는 제목으로 알려져있던 영화죠. 영제는 여전히 [Marionette]를 쓰고 있습니다. 보면서 즐거웠다고는 못하겠어요. 영화 내내 불편했습니다.

주인공 한서린은 결혼을 앞둔 고등학교 윤리교사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어두운 과거가 있는데 14년 전에 남자친구를 포함한 또래의 고등학생에게 집단 성폭행 당하고 동영상이 누출되었던 것이죠. 어느 날, 서린은 교무실 책상에 누군가가 갖다놓은 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잃는데, 그 뒤로 마스터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그 때 찍은 동영상을 갖고 서린을 협박합니다. 서린은 14년 전 자신의 사건을 맡았지만 지금은 퇴직해 PC방을 운영하고 있는 오국철을 찾아갑니다.

제가 영화를 보면서 불편한 이유를 짐작하시겠죠. 성범죄 자체가 편하게 볼 수 있는 소재는 아니니까요. 게다가 이 소재를 장르적으로 다루는 대부분의 한국영화는 의도와 상관없이 선정적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폭행 장면을 꼼꼼하게 보여주지 않는다고 해도 그 범죄의 상황, 암시, 무엇보다 고통받은 여자주인공의 모습 자체가 '관객의 분노를 유발한다'는 목표와 상관없이 다른 식으로 소비될 수 있는 것이죠. 사실 전 이렇게 분노를 유발하는 것이 이런 이야기에서 그렇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주인공 서린이 보다 적극적이거나 주도적인 인물이라면 이 문제도 어느 정도 커버될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서린을 괴롭히느라 정신이 없어요. 영화가 100분이 조금 넘는데, 서린의 이야기는 거의 80분이 넘어서야 간신히 상승하기 시작합니다. 그 때까지는 대부분 '고통받는 피사체'로 남아요. 그것도 모자라서 영화는 상당히 긴 과거의 회상 장면을 넣는데 이 역시 상당히 괴롭습니다.

영화에는 반전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깜짝쇼 용인데, 그렇게 놀랍지 않으면서도 전혀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지독하게 장르적인데 그것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멀쩡한 배우들이 어색한 대사를 씹느라 애를 먹는 게 보일 정도죠. 다른 하나는 아마 이 영화의 전체 주제와 연결된 것일텐데, 역시 건성으로 다루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를 기억해]는 중요한 주제들을 많이 다루고 있고, 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에 진지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원래부터 그렇게 새롭다고 할 수 없었던 이 영화는 순식간에 낡아버렸어요. 지금은 같은 주제와 소재를 다룬다고 해도 [나를 기억해]와 다른 접근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18/04/13)

★★

기타등등
모 자양강장제 음료가 중요한 소도구로 등장하는데, 이름을 바꾸었더군요.


감독: 이한욱, 배우: 이유영, 김희원, 오하늬, 이학주, 김다미, 이제연, 다른 제목: Marionette

IMDb https://www.imdb.com/title/tt8134688/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58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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