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저스]와 [더 딥 블루 씨]가 나란히 개봉관에 걸려있는데 왠지 재미있네요. 어벤저스에 안 껴줘서 삐진 로키가 독립한 느낌. [어벤저스2]를 아직 안봐서 그러는데 2편에서는 안나온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물론 개봉관 수는 어벤저스에게 압도적으로 밀립니다.


[더 딥 블루 씨]는 많이 보아왔던 영국 상류층 여성의 불륜이야기입니다. 영국 상류 사회의 오만과 단조로움에 지친 해스터는 젊은 군인 프레디에게 반해서 남편과 지위를 버리고 동거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불륜물의 공식처럼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유로운 프레디는 고상하고 복잡한 해스터에게 흥미를 잃고 진절머리 치기 시작합니다. 성숙하지 못하고 책임감 없는 그는 해스터를 멀리하기 시작합니다. 상류 사회 시절에 해스터가 그렇게 경멸하던 고상떠는 상류층의 태도에서 해스터는 벗어나지 못한 겁니다. 그녀가 불륜 앞에서도 감정을 제어하는 남편을 조소했던 것처럼 프레디도 고상한 해스터를 조롱합니다. 목사인 아버님 아래에서 태어나 경직되고 고상한 사회에 숨막혀 하던 해스터이지만 그녀 역시 이미 뼈 속까지 스노브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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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의 불륜 이야기는 굉장히 흔했습니다. [안나 카레리나], [보바리 부인], [파 프롬 헤븐]...새삼 느낀 점은 이 당시의 불륜은 지금보다 의미가 컸습니다. 사회경제적으로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는 여성이 남편을 버리고, 불륜의 상대에게 버림을 받는다면 정말로 아무 것도 남는 게 없는 거지요. 수많은 고전에서 그들의 결말이 자살로 끝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해스터는 고집을 꺾지 않습니다. 자상한 남편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돌아와 달라는 부탁에도 그녀는 승낙하고 싶은 충동과 싸우면서까지 거부합니다. 그렇게까지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남편이 말한 것 처럼 단순한 정욕일 수도 있고, 집착일 수도 있고. 허망한 사랑일지도 모르겠네요. 요즘 시대의 눈으로는 지극히 어리석고 한심한 선택처럼 보입니다. 대놓고 그녀를 모욕하고 무능하고 이기적인 저런 남자에게 왜 저렇게 집착하는 걸까?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나이가 많고 지루하긴 하지만 품위있는 법률가이고, 그녀의 생일을 기억하고 좋아하는 소네트도 선물하는 섬세한 남자인 겁니다. 


하지만 영화는 나름의 설득력을 가집니다. 해스터-프레디-윌리엄이 삼자대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늙은 남편과 대조되는 훤칠하고 당당한 매력의 톰 히들스턴을 보니 한심하게 보이던 그녀의 선택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전혜린이 [삶의 한가운데]의 감상문에서 니나의 남편 퍼시와 슈타인을 비교하며 말하기도 했는데요. 아무리 정신적이고 독립적인 여자라도 남성적인 활력에 무릎을 꿇게 된다는 그런 내용입니다. 동물적인 활력을 가진 남성의 매력은 무시할 수 없는 겁니다. 그것이 하찮은 정욕에 불과해도 말입니다.

무엇보다 영화는 주연 레이첼 와이즈의 연기에 상당히 기대고 있습니다. 레이첼 와이즈는 원맨쇼에 가깝게 이 진부한 전통 불륜극을 이끌어갑니다. 우아하고 품위있던 그녀가 그녀를 멸시하는 무례한에게 매달리고 눈물짓는데는 그녀가 그렇게까지 하면서 지키고 싶은 무언가가 가치가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듭니다. 이 배우는 초라하고 비참해져가는 위치에서도 기품을 잃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기도 했고요. 저한테는 제임스 본드의 부인 정도로 기억되던 분이셨는데 굉장한 배우셨네요.


영화를 보고나서 엉뚱하게 가치를 확인한 것은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었습니다. 외설 논란으로 유명하지만 이 고전이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를 잘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 시대에 불륜을 선택하고도 끝까지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비극에 빠지지 않는 여성 캐릭터라니 정말 혁명적이었단 생각이 들었어요. 불륜이 물론 도덕적인 일은 아니지만. 하다못해 요즘 작품에서도 불륜을 선택한 여성 캐릭터가 해피엔딩을 찾은 작품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지금 떠올려 보려고 해도 잘 생각이 안 나네요. 뭐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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