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02 15:18
반 학생의 작품입니다.
대단히 훌륭하진 않지만 그래도 재밌어서.
그리고 뭔가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진심이 느껴지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서 잉여로운 금요일 오후에 살짝 올려 봅니다.
- 추억 -
어두운 방 안엔
밝은 모니터가 켜지고,
다크 서클이 진 소녀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캐릭터의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방으로
엄마가 분노와 함께 들어오시었다.
아, 엄마가 보여주셨던
그 엄청난 분노.
나는 한 마리 어린 폐인
분노에 찬 엄마의 화난 옷자락을 잡고
다 죽어가는 캐릭터를 말 없이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통수를 엄마 손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내 캐릭터와의 마지막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는
그 때의 나처럼 게임에 빠져버렸다.
옛 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새로운 던젼에는
다시 방어력 다 떨어진 캐릭터가 죽어가는데
서러운 열 여섯살, 나의 머리에
불현듯 엄마의 분노의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그 밤에 화를 내던 엄마 모습이
아직도 내 머리 속에 박혀 흐르는 까닭일까.
읽으면서 이미 눈치채신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이 작품의 패러디입니다.
성탄제 - 김종길
어두운 방 안엔
빠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날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都市)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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