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9.20 00:45
보통 영화를 재미있게 보면 원작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마련인데, [메이즈 러너]의 경우는 예외였습니다.
원작도, 다음에 이어질 속편이 궁금하지도 않더라고요. 그러려면 영화가 그리는 세계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그 세부묘사가 궁금해야 하는데, [메이즈 러너]는 전혀 안 그랬어요. 관심을
가지기엔 설정이나 설명이 너무 엉망이었죠.
어떤 설정이냐고요. 이름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린 젊은 남자애들이 한 달에 한 번씩
'박스'라는 기계를 통해 미로로 둘러싸인 공터로 운반되어 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미로는 낮에는
열려있다가 밤만 되면 닫히는데, 밤이 되면 '그리버'라는 괴물이 그 안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 때는
절대로 미로 안에 들어가서는 안 돼요. 아이들은 매일 구조가 바뀌는 미로 안에서 탈출구를 찾기
위해 특별히 훈련된 애들을 미로 안에 보내는데 그 애들이 '러너'고요. 아, 그리고 걔들이 사는
넓은 공터는 '글레이드'고요. 요새 영 어덜트 SF 소설들은 이름 붙이기를 왜들 그렇게
좋아하는지.
척 봐도 설정을 위한 설정이죠. 이 애들을 갖고 무슨 실험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지나치게
에너지와 자원이 많이 드는 놀이가 아닙니까? 일단 거대한 건물만한 콘크리트 벽을 매일
움직이는 데에 에너지가 얼마나 드는지 상상해보세요. 거의 [트루먼 쇼] 수준이지요.
제대로 된 설명이 거의 불가능한데, 정말 막판에 나오는 설명은 어이가 승천할 정도로
엉터리더군요. 게다가 애들이 3년 넘게 이 안에 갇혀 있었으면서 미로의 외벽에 오르지 않은 건
이해하기 어려워요. 도입부에서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자기네들도 그걸 시도해봤지만
실패했다고 하던데 전 믿기지 않더군요. 그 정도 인원에, 그 정도 장비로 3년이라면
벽 꼭대기까지 계단도 만들었겠네요.
그런데 영화가 재미있더란 말입니다. 적어도 그 말도 안 되는 설명이 나오기 전까지는요.
주인공 토머스가 깨어난 뒤 일어나는 일들은 적당히 물에 탄 [파리대왕]에 [피터팬]을
섞은 거 같죠. 알아요. 하지만 아무리 설정이 엉망이어도 고대 신화의 그림자가 깔려 있는
이 사악한 음모에는 무시못할 매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괴물이 숨어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미로를 질주하는 아이들의 이미지는 강렬하기 짝이 없고 서스펜스도
풍부합니다.
무엇보다 캐릭터와 캐스팅이 좋더군요. 다른 영 어덜트 소설 각색물보다 특별히 더 좋은
배우를 쓴 건 아니에요. 캐릭터도 기능적인 수준 이상은 아니고. 하지만 배우들의
개성이 뚜렷하고 그들의 이미지와 연기가 캐릭터에 잘 녹아들어 있으며 앙상블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기죽지 않은 젊은 에너지가 넘쳐요. 이 정도면 채식주의자 뱀파이어의
맥빠진 연애질을 구경하는 것보다 훨씬 좋죠.
(14/09/20)
★★★
기타등등
한국인 캐릭터가 한 명 나오는데 의외로 비중이 크고 이름도 제대로 지었습니다. 들어보니
3편까지 계속 나오고 인기도 좋다고 하더군요.
감독: Wes Ball, 배우: Dylan O'Brien, Aml Ameen, Ki Hong Lee, Blake Cooper, Thomas Brodie-Sangster, Will Poulter, Dexter Darden, Kaya Scodelario, Chris Sheffield
IMDb http://www.imdb.com/title/tt179086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5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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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는' 운반되어 옵니다.가 아니고 공터'로'가 맞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