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잡담끝]See Ya!혜화!!

2011.03.09 16:51

말린해삼 조회 수:3178

한달 남짓, 입원을 마치고 오늘 아빠가 퇴원했습니다. 물론, 완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졌고 결핵은 수술을 요하는 병이 아니라길래 우선은 퇴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한달 후에 다시 외래를 받으러 오긴 해야하지요. 그래도 퇴원이라고 하니, 기분이 묘합니다. 그동안 서울, 특히 이 혜화에서 많은 생각과 많은 볼 것들을 보면서 짧은 시간에 좀 변한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변하긴 개뿔. 분위기 타지 말아라. 하는 마음 속의 자책도 들려 옵니다.

처음 격리실에서 엄빠, 나 셋 다 마스크를 끼고 아빠를 만지면 소독액으로 손을 소독했어야 했습니다. 대소변을 갈때에는 수술용 장갑을 끼고 말도 아니었지요. 그 때에 오만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듀게에는 되도록 밝은 글을 올리려고 했었는데 지금 오니 말해도 될까요.

하루는 새벽에 어떤 소리에 깨어보니, 엄마가 울면서 아빠에게 말하고 있더군요.
-해삼아빠. 그냥 가세요. 우리 힘들게 하지 말고 편하게 가요. 그럼 내가 자식새끼들 잘 키우고 따라 갈테니까 제발 먼저 좀 가요.
이 소릴 듣자마자 저는 등에 불이라도 닿은 것 마냥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오만 욕을 해댔습니다. 물론, 그러면 안되겠지만 그 때엔 그 말이 제게 엄청난 충격이었거든요.

말도 못하고, 굳은 얼굴로 움직이지도 못하던 아빠. 산 송장이란게 저런건가.. 싶기도 하면서 저 역시 3개월 정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아빠는 조금씩 나아지셨죠. 밤과 새벽마다 열이 39도를 넘나들며 힘들어하고 일어났다 누웠다를 반복하고.. 기저귀를 가는 도중에 볼일을 보시고. 저는 쓴것처럼 굉장히 비관적으로 생각했기에 그런 일들이 대수롭게 여겨지지 않았나 봅니다. 그냥 웃으면서 하는 절 보고 간호사님들은 착하다고 하셨지만 칭찬 들을 행동은 아니었지요.

예전에 쓴 시와 같이 정말 가끔 `생각`이란 걸 할 수 있을때엔 헛소리를 하거나 할때엔 모두 과거의 이야기 뿐이었습니다. 가게를 안한지 오래면서, 손님이 왜 없는거냐. 이렇게 조용할리가 없다. 하시고, 아들의 나이는 아직도 국민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눈물과  한숨에 젓갈처럼 절여진 엄마와 먹지도 못하게 굳어버린 북어같은 아빠 사이에선 난 뭘 해야하나. 많은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은 웃는 거더군요. 나 스스로 즐거워지려 했고,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듀게에 글을 올리고, 그 글을 엄빠에게도 보여줬습니다. 엄마는 시골 아줌마답게,
-이 공을 어떻게 갚냐...;; 다 죽어가는 니 아방이 뭐라고 이런걸 다...
하셨었죠.

병실을 옮기시고 아빠는 말도 하시고 부축하면 걷기도 하셨습니다. 눈 한쪽이 살짝 마비가 왔지만, 그래도 잘 웃으십니다. 복잡한 생각을 못하셔서 그런지, 마음의 표현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옛날부터 의구심이 들었던 생각이 있었죠. 아빠는 날 그렇게 아끼셨으면서 왜 나에게 그리도 잔혹한 폭력을 행했었나. 날 정말 사랑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었는데 이번 기회로 알게 되었습니다. 아빠는 제가 하는 말은 다 듣습니다. 제가 하는 심한 농담도 다 웃고, 틈만 나면 아들에게 돈 좀 주라고 하십니다. 뭐 좀 먹이라고 하십니다. 살 빼야 한다고 제가 말하면, `에이!`하시면서 자기 밥마저 내밀며 먹으라고 하십니다. 좀 더 일찍 이랬었다면, 저는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 생각도 해봅니다.ㅎㅎ.....

병실을 나서면서 한장 찍어봤어요. 제 얼굴을 공개하면 -현빈까지 군대간 이 공황상태에서- 큰 파장이 있을거기에 마스크를 썼습니다.

(사진 펑)
아빠 모자는 제가 어제 선물한 뉴발 모자. 빨강을 좋아하는 아빠와 패딩 색을 맞췄습니다.


공항에 가서 아빠가 좋아하는 티라미수를 스타벅스에서 사 드리고, 엄빠를 보냈습니다. 아빠는 말한대로 자꾸 웃으십니다. 저만 보면 정말 바보같이 웃으세요. 엄마가 부축하고 들어가시는데 자꾸 웃으시면서 돌아보셨어요. 뭐라고 말하는데 엄마가 급하다고 빨리 가자고 재촉하셔서 제대로 말은 못 들었지만. 서너번 계속 웃으시면서 돌아보는 모습을 보니, 이렇게 좋은 날 자꾸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운 적은 2002년 옛 애인이 절 떠날때 이후로 없었는데.ㅋㅋㅋ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데미안 라이스의 노랠 또 들었습니다. 가사대로 자꾸 그 마지막 모습이 눈에 남아서 지워지지가 않아요. 노래들마다 자기에게 어떤 이미지나, 사연이 있겠지요. 이 노랜 앞으로 저에게 공항에서의 웃으며 뒤돌아보던 아빠의 이미지로 각인될 것 같네요. 웃어야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나려해서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이쁘고 아름다웠던 거리란 찬사를 하게했던 혜화. 이쁘고 아름다웠던 간호사님들. 잘생겼던 전 주치의 선생님. 이요원같은 새로 온 주치의 선생님. 무너지던 나를 더 무너지게 해서 완전 바닥치고 팔짝 뛰게 했던 혜화 포차.(잊지 않으마 너 이자식.)
다들 안녕. 담 달에 또 보자.

수많은 댓글과 선물로 저와 저의 가족에게 희망을 줬던 듀게여러분들에게도 벅찬 감사를 드립니다.

p.s.아빠의 공항패션. 엄마왈.
'이게 꽃거지네.꽃거지.깔깔깔.'


거지 아닙니다. 우리 아빱니다.
자세히 보면..

자고 있어요.
좋은 꿈 꿔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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