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를 한달 반 동안 안고 계셨죠. 큰 병원에 가보라는 가족의 권유에도 겁이 나셨는지, 병원이라면 지긋지긋하신지.. 동네 내과에 가서 링거만 맞고 오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거동도 불편하게 되셨죠. 아버지의 병치레는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혈압이 있으시다가, 심장. 괜찮아지면 눈. 또 괜찮아지면 피부 알레르기가 갑자기.


이번에는 폐렴이랍니다. 그것도 일반적 균에 의한 폐렴이 아닌, 희귀한 균이라네요.


거동이 불편하신지 한달 반 정도 지나서 설날 때, 제를 올리는데 절 하시다가 엉덩방아를 찧으셨어요. 재빨리 일으켜 드리고 자리에 눕게 했죠. 다음 날 새벽에 119를 불러서 대학 병원에 모셨습니다. 엑스레이, CT촬영 두번. 태어나서 소변도 받아봤네요. 그 전에는 아빠가 강하게 거부하셨는데 이번에는 제가 했어요. 뭔가, 익숙해져야 할 것 같다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거든요. 못된 생각이지만, 그랬습니다.


전 사소한 것에 잘 웁니다. 드라마, 영화, 소설, 시. 노래 들어도 잘 웁니다. 감정 이입을 잘하지요. 심지어 유명한 스포츠 선수의 하이라이트 영상만 봐도 눈물이 납니다. 하지만 이런 큰 일에는 한번도 운 적이 없어요. 군대 있는데 아버지가 심장 때문에 쓰러지셨을때, 휴가 나와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저를 보며 어머니는 인정머리라고는 개뿔도 없는 새끼라며 오열하셨죠. 하지만, 막상 일이 닥치니 눈물보다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생각이 앞서더군요. 다(多)인실에 누워계신 아빠가 걱정되서 간호사와 싸우고, 병실이 남은게 없는지 둘러보고. 전 이런 일에는 울지 않아요. 아니, 눈물이 나질 않아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너무 지치고 힘드네요. 대학 때 동기나 지인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빠가 쓰러졌다. 이것 참.. 되는 일이 없네 ㅎㅎㅎ 하면서 웃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했고 모두들 걱정을 해줬습니다. 너무 고마웠죠. 그래도 계속 기분은 허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퇴근해서 계속 걸었어요. 노래 들으면서. 랜덤으로 듣다가, 제가 좋아하는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가 나오는데 노래는 제가 안 좋아하는 게 나오더군요. blower's daughter.


그냥 듣는데, 가사가 갑자기 쿵 하니 계속 귀에 맴돌았어요.

`I cant take my eyes off you.`

네. 병실에 누우셔서 머리가 조금 하얗게 새버리시고, 면도를 혼자 못하셔서 제가 해드리는 아빠에게서 눈을 땔 수가 없었습니다. 계속 이 가사가 반복되는데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어요. 노래를 계속 들으려니 미치겠더군요. 허한 기분을 달랠 수 있을까 해서 다른 노래로 바꾸고 또 걸었습니다. 전 이런 힘든 일이 있으면 티를 잘 안내고 남에게 말도 잘 안합니다.말한다해도 아무 일 아닌냥, 견딜 수 있는 것마냥 말하죠. 상대방은 답답해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좋았지요.


걷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기대고 싶다.`


기댈 곳이 있을 수도 있겠죠. 친구들에게 기대라. 하지만 굳이 제 아픔을 남에게 절절하게 나누고 싶진 않아요. 그게 제 생각이구요.

미술관에 간 것도 실은 마음이 너무 지쳐서 간 거였는데, 일상으로 돌아오니 참 답답하네요. 


그냥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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