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1.20 10:50
폐소공포증 있으세요? 전 가끔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 시사회를 보기 바로 전날 밤, 그와 관련된 끔찍한 악몽을 꾸고 새벽 2시 40분 경에 깼지요. 이게 운이 나빴던 건지, 좋았던 건지, 전 아직도 잘 모르겠단 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전화공포증은 있으신지요? 전 있어요. 전 전화를 거는 것도 싫고 받는 것도 싫습니다. 다시 말해 [베리드]는 딱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호러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땅 속에 묻힌 나무관 안에 갇혀 영화 내내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휴대전화로 통화를 합니다, 아아아아악!
도대체 주인공 폴 콘로이는 어쩌다가 이렇게 난감한 상황에 빠졌을까요. 그는 재산가도 아니고 군인도 아닙니다. 순전히 돈 벌려고 이라크에 간 트럭 운전사에 불과하지요. 하지만 이라크(이 영화에서는 시대배경이 2006년입니다)의 혼란 속에서 그건 핑계가 안 됩니다. 인질로 잡힌 그는 그에게 주어진 휴대전화를 이용해 어떻게든 몸값 500만 달러를 만들거나 구해달라고 조난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얼핏 보면 콘로이에게 기회는 많습니다. 현대 휴대전화는 거의 [스타 트렉]의 트라이코더와 같은 기계니까요. 그는 전세계 어디로건 전화를 걸 수 있고, 동영상과 사진을 찍을 수도 있으며, 관련정보들을 수집할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 조건이면 영화는 문제 풀이와 위기 탈출을 중심으로 한 장르적 스릴러가 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베리드]는 그 방향으로 갈 생각이 없습니다. 대신 영화는 콘로이에게 주어진 상황을 호러의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콘로이에게 이 모든 것은 공포입니다. 일단 손발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나무관 안에 갇혀 있다는 것 자체가 공포죠. (전 그가 발 밑에 있는 물건을 손 닿는 데까지 집어올리려고 기를 쓰는 걸 보고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그가 휴대전화를 드는 순간부터 찾아옵니다. 전세계 어디로건 그를 연결시켜줄 수 있는 이 만능의 발명품은 오히려 그가 시도하는 모든 소통을 작정하고 차단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이건 기계의 잘못이 아닙니다. 그가 기댈 수밖에 없는 유일한 대상인 회사와 정부가 그를 처음부터 버리려 작정했기 때문이지요.
보통 영화의 하이컨셉은 스토리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베리드]는 거기서 벗어난 드문 예외입니다. 영화 내내 카메라가 주인공이 갇힌 나무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설정은 극단적으로 보이지만 이 영화에는 주인공의 폐소공포증과 고립감을 완벽하게 살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 영화는 길쭉한 와이드스크린이 얼마나 갑갑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될 것입니다. 그 제한된 공간과 상황 속에서 영화가 꾸준히 만들어낸 아이디어들은 설득력 있을 뿐만 아니라 종종 새롭습니다. 물론 영화 내내 진짜 얼굴이 나오는 유일한 배우인 라이언 레이놀즈에게도 [베리드]는 그의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멋진 기회입니다.
[베리드]는 스페인 감독이 만든 미국/유럽 합작 영화지만, 전통적인 미국 영화처럼 보입니다. 할리우드 영화 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에드거 앨런 포와 앰브로스 비어스의 전통을 잇는 호러라는 뜻이죠. 이 영화를 보면서 [너무 이른 매장]과 [함정과 진자]를 연상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베리드]가 포 영화의 최고 걸작들 중 하나라고 우길 수도 있습니다. (10/11/20)
★★★☆
기타등등
지금 같은 스마트폰의 시대였다면 콘로이가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더 많았을까요?
감독: Rodrigo Cortés, 출연: Ryan Reynolds, José Luis García Pérez, Robert Paterson, Stephen Tobolowsky, Samantha Mathis, Ivana Miño
IMDb http://www.imdb.com/title/tt1462758/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4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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