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상...(오픈월드)

2023.07.08 03:02

여은성 조회 수:235


 1.여행은 좋아하지 않아요. 완전히 다른 것을 좋아하지는 않거든요. 무언가 살짝 다르지만 엇비슷한 그런 걸 좋아하죠. 그래서 한달살기나 다른 동네 탐방하는 걸 즐기는 편이예요.



 2.요즘은 새로운 동네를 갈 때 500만원을 뽑아서 가져가곤 해요. 이제는 여름이라 양 옆 주머니에 나눠 넣어도 너무 묵직한 느낌이라...좀 귀찮긴 하지만요.


 왜 그러냐면, 모르는 거잖아요? 새로운 동네를 갔는데 엄청난 미인이 있다...500만원을 쓸 기분이 나게 만드는 미인이 있다...고 한다면 500만원을 써야 하니까요. 만약에 내가 새로운 동네를 가는데 500만원을 뽑아가지 않는다면? 그건 처음부터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는 거랑 같거든요. 적어도 그 정도의 엄청난 술집을 발견할 거라는 기대쯤은 하는 거니까, 한 시간 두 시간씩 들여서 다른 동네를 가는 거예요. 500만원을 가지고 가지 않을 거면 처음부터 가지도 않겠죠. 돈을 뽑아 가져가는 건 처음 가는 곳에 갈 때 하는 일종의 의식 같은 거예요.



 3.뭐 어쨌든, 새로운 곳에 가도 그 돈을 쓸 곳은 술집밖에 없어요. 아무리 맛있는 제육덮밥을 파는 가게를 발견해도, 아무리 엄청난 커피를 뽑는 바리스타가 있는 카페를 발견해도, 아무리 분위기 좋은 클래식바를 발견해도 거기서 돈을 쓰는 재미를 볼 일은 없으니까요. 제육덮밥은 비싸봐야 만원...커피는 비싸봐야 팔천원. 클래식바는 돈을 써봐야 호응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재미가 없고. 클럽이나 나이트는 혼자 시도할 수 없으니 fail. 애초에 신도시에 클럽은 있지도 않고.


 게다가 나는 강남이나 비싼 곳은 다 가봤기 때문에, 이제 와서 새로운 곳을 간다면 어딜 가든 물가가 훨씬 싼 곳들뿐이예요. 프랜차이즈 가게를 가는 게 아니라면 물가는 내가 살거나 다니는 곳에 비해 50% 가까이 쌀 수도 있죠. 결국 내가 들고 가는 500만원을 한번에 써버릴 곳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는 건 술집뿐인거죠.


 그러나 아직까지는 500만원을 들고가서 처음 가는 곳에서 500만원을 다 써본적은 한번도 없어요. 애초에 강남에서도 클럽을 제외하면 하루에 500만원을 쓸 만한 술집은 거의 없거든요.



 4.휴.



 5.사실 당연한 거죠. 뭐 아무리 핫한 신도시나 잘 꾸며진 곳을 가도...그곳이 강남을 넘었을 리는 없으니까요. 일단 자신의 외모가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인천에 살든 남양주에 살든 강남으로 출근할 거거든요. 


 아무리 도시 구획이 잘 되어 있고 아무리 삐까번쩍한 빌딩들이 늘어서 있어도...신도시라는 곳은 하드웨어가 완성되어 있는 거지, 그 안에 채워넣을 사람까지도 완벽히 완비된 건 아니예요. 신도시를 다녀보다 보면, 마치 GTA급 오픈 월드라고 광고하지만 막상 맵을 돌아다녀 보면 텅텅 비어 있는 오픈월드 게임을 하는 기분일 때도 있죠.


 하지만 이런 것들을 다 알고 있어도 나는 어쨌든 번거로워도 500만원을 가져가곤 해요. 어차피 새로운 곳에 놀러가는 건 '기대감'을 품고 가는 건데 500만원을 뽑아가지 않는다는 건 나는 이미 그곳에 대해 기대하기를 포기했다고 자인하는 거니까요.



 6.어쨌든 나이가 먹으면 그래요. 돈을 쓰는 재미보다는 돈을 쓸 가치가 있는 곳을 발견하는 재미가 더 크죠. 예전에는 강남이나 홍대를 그렇게 한번씩 가보곤 했는데...어쨌든 이제는 강남을 잘 안 가요. 강남은 강남인 만큼 좋지만 강남이라는 한계가 있거든요. 강남의 한계를 넘은 곳이 어디 없나...싶어서 신도시나 안가본 도시 위주로 한번씩 가보고 있죠.



 7.한데 그렇게 들뜬 기분일 때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앉아서 일기를 쓰고 있으면 냉정하게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어딜 가도 강남보다 좋은 곳은 없을 거라는 거 말이죠. 당연한 거죠. 없는 거예요. 돈을 쓰는 입장에서도 돈을 버는 입장에서도 돈을 버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입장에서도, 가장 많은 재화가 교환되는 곳이 강남이니까요. 그리고 가장 많은 재화가 교환되는 곳에 인재들이 모이는 법이고요.


 

 8.하지만 이렇게 알아도...나는 다음주에도 강남은 안 가겠죠. 강남은 예를 들면 GTA5 같은 거예요. 현존하는 오픈월드 게임 중 가장 잘 만든 오픈월드 게임이고 가장 재밌는 오픈월드 게임이죠. 맵 어디를 가도 개발자에 의해 모든 게 구현되어 있고 npc가 꽉꽉 채워져 있고 이벤트가 일어나고요.


 그러나 GTA5를 10년 넘게 했으면 GTA가 아무리 명작 게임이라도...그냥 새로 나온 오픈월드 게임에 손이 가는 법이거든요. GTA처럼 재밌지 않아도, 맵이 허허벌판이어도, npc나 이벤트가 GTA만큼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새 게임인 거니까요.


 아무리 재밌는 게임도 10년을 플레이하면 기대할 게 더이상 없거든요. 더 못 만들었어도 새로운 오픈월드 게임의 새로운 맵을 탐사하면 재미는 덜하지만 기대감은 더 가지고 떠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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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건 망할 놈의 코로나 때문이기도 해요. 게임에는 확장팩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래서 강남이든 어디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하고 매운맛 업데이트가 이루어진단 말이죠.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강남은 업데이트가 계속되는 게임 같았어요. 더 커지고 더 많아지고 더 화려해지고 있는 중이었죠.


 한데 코로나가 터져버리니 업데이트가 안 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퇴화해 버렸단 말이죠. 유동하는 사람수도, 교환되는 재화의 총량도 다 줄어들어 버려서 재미가 2014년만도 못해요. 그래서 요즘은 강남을 가면 마치 서버가 해킹당한 게임을 하는 기분이란 말이죠. 업데이트가 되긴 커녕, 해킹 바이러스에 당해버리고 서버가 백섭되어서 훨씬 과거 버전의 강남을 플레이하는 기분이예요.


 뭐 그래서 요즘은 강남 오픈월드가 재미가 없다 이거죠. 재미가 없으니 새로운 맛이라도 찾아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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