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잡담

2011.11.28 03:21

yusil 조회 수:1456


남자친구의 고향은 울릉도라고 했어요.

고등학교 때 만나 사귀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6년을 만났대요.  

"이렇게 오래 사귀면 결혼해야 하는 거 아니예요?" 하고 처음 보는 제게 대뜸 묻는

그 아가씨는 스물세넷쯤 됐을까요. 하얀 얼굴에 머리카락은 노랗게 탈색했는데도 

결이 고아요.  느슨하게 묶어놓은 머리끈 때문인지 자꾸 목덜미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려요.

자세히 봤더니 얼굴 여기저기에 작은 피어싱을 했어요. 무서운 생각보다 앞서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쉬지 않고 얘기를 하면서도 손톱을 다듬는

손놀림은 프로같아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톱을 갈고 닦고 바르고 했을까요.


"손님은 요리를 잘 하실 거 같아요."라는 말에 제가 크게 하하- 웃었더니

"손만 보면 왠만한 건 다 알아요."라고 해요. 그리고는 "정도 많고 눈물도 많으시죠?"하고

또 물어요. 제가 마음에 드나봐요. 그저 손님을 향한 립서비스라고 보기에는 너무 엉성하죠.

어쩌면 자기 얘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정도 많고 눈물도 많을 것 같은 아가씨였어요.

이 아가씨가 가장 두려운 건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별을 하게 되면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라는

거였어요. 울릉도가 고향인 남자친구가 첫사랑이래요. 자기 친구는 몇년 사이 남자친구를

열명도 넘게 사겼는데 자기는 한 사람만 만나서 헤어지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도 되지 않는데요.

그리고는 제게 "헤어지면 어때요? 아, 진짜 하늘이 무너질 거 같고 그래요?"하고 천진하게도 물어요.

마땅히 해줄말이 떠오르지도 않고 그냥 웃음만 나왔어요.  

별 기대없이 초대권 받아 본 영화 첫씬에서 하핫-하고 소리내 웃어버린 기분이었어요.


많이 바빠요. 딴 생각, 딴 짓 할 새가 없다고 매일 생각하며 딴 짓을 해요.

일년에 한번 받을까말까 한 네일케어도 받고, 지인들을 불러내 멀리까지 가서 밥도 먹었어요.

집에 돌아와서는 잠만 자고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두려운 생각에 컴퓨터를 켰는데

보시는 것처럼 지금 이러고 있죠.

역시나 너무 바쁜 친구가 전화를 해서 "이렇게 살다가는 진짜 얼마 못가, 이 알량한 젊음.."하고

수애톤으로 말해요. 말하는 친구도 듣는 저도 하나도 웃기지 않는데 안 웃어주면 서로 너무

쓸쓸해질 것 같아서 핫- 핫- 하고 웃다가 또 옛날 얘기 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친구라서 서로 모르는 역사가 없죠. 옛날 얘기는 하고 또 해도 

재밌어요. 서로 총질하듯 하나씩 센 걸 던지며 웃다보니, 새삼 끈끈한 우정을 확인한 것처럼

서로 건강을 염려하고 곧 얼굴보자고 부질없는 약속을 해요. 

막상 전화를 끊으려니까 하고 싶은 얘기가 떠올라서 간질간질하지만 참았어요.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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