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2011.07.14 0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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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취미가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취미만 있습니다.

 

제가 취미로 삼고 있는 그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취미로 삼지 않습니다.

무척이나 정열적이고 치열하게 인생을 올인해서 합니다.

 

전 무리한 치열함을 싫어합니다.

세상에 안 되는 것은 무수히 존재하고, 그것들을 안되는 게 어딨냐며 무리하게 되게 하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어진 결과물에 씁씁해하며 지금 무리한 그것들이 언젠가는 터질 거라고 자위합니다.

 

하지만 제가 취미로 삼은 것에 모든 걸 던지고 달려가는 그분들을 싫어하진 않습니다.

전부는 아니지만 진심으로 존경하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저에겐 취미인가 봅니다.

그것을 대하는 태도가 틀리다고 할 만큼 달라서 제가 감히 그것을 하는 사람이라 자칭할 수 없는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전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비겁한 겁니다.

그 말도 안 되는 치열함이 싫고, 그것들은 분명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인 요소를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분들만큼 어디 가서 나는 그것을 하는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때 붙는 많은 피곤한 것들이 싫었던 겁니다.

 

 

 

친구가 맥주를 청했습니다.

다이어트 중이지만 치맥은 진리이자 거절할 수 없는 제안입니다.

 

맥주를 마시며 제 걱정을 합니다. 걱정을 하면서 조심스러워 합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으면 그것이 틀렸을지언정 자기만의 가치관이 딴딴하게 굳어서 남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걸 알면서도 제 걱정을 한답니다. 제게는 이런 친구가 몇 더 있습니다. 자랑입니다.

 

'너는 너무 열심히 하지 않는 거 같다. 너만의 템포도 알겠지만 너무 느리다. 너에게서는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된다. 적은 나이도 아니다. 이왕 하는 거면 치열하게 하는 것이 결과가 나쁘더라도 좋다.'

 

'하지만 취미인걸?'

 

친구는 말문이 막힙니다. 취미인지 몰랐다고 합니다. 그걸 취미로 삼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합니다.

네 주위 누구도 그걸 취미로 하는 지 모를 거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대를 할 것이다. 그럼 넌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다.

..랍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티비에서 했던 '나는 록의 전설이다'를 보았냐고 묻습니다. 그게 뭐냐고 대답합니다.

요즘 티비 참 좋아요. 친구가 자신의 티비에 녹화가 되어 있는 것을 틀어 줍니다. 둘이서 조용히 봅니다.

 

이 친구가 어떤 의도로 이걸 제게 보여 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슬펐습니다.

저처럼 비겁하고 알량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은 그래도 됩니다.

겉멋만 들어서 기웃거리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철저하게 그래야합니다.

자신의 실력을 모르고 긴긴 세월 책임감 없이 덤비는 사람은 다른 일을 알아봐야죠.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잖아요. 그야말로 살이 있는 전설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래요?

다른 분들은 하소연하듯 이야기라도 합니다. 하지만 김도균씨는 아무 말씀도 안 하더군요.

그냥 혼자서 김치볶음밥을 드시고 세바퀴에 나와서 춤을 추시더라고요.

친구가 옆에 있어서 눈물 참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밴드 서바이벌 탑밴드'를 잘 보고 있습니다.

다른 분들이 S1이나 업댓브라운. 게이트플라워나 브로큰발렌타인에 주목하고 계실 때 전 '블루니어 마더'를 봅니다.

일단 보컬대신 노래하시고 부인님이 자기를 싫어하신다는 기타 아저씨가 너무 유머러스하고 좋잖아요.

뭐든 유머가 있어야 합니다.

 

16년 간 활동한 직장인밴드...... 그래 저거다 싶었습니다.

이런 실력과 이런 태도로 대하는 일에 돈을 바라면 도둑입니다. '나는 록의 전설이다' 보고나니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활동을 하려면, 게다가 취미를 갖으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전 취미만 있습니다. 이제 직장을 가지면 되겠구나! 그러면 저들처럼 멋지게 취미생활을 할 수 있을 거야!!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맥주를 마시며 다시 '블루니어 마더'의 방송분을 찾아봅니다.

다시 제가 가벼운 마음으로 취미활동할 수 있도록 응원 받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첫 번째 오디션에서 제가 좋아하는 기타아저씨가 말합니다.

 

'저희는 직장 생활을 하려고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하려고 직장을 선택한 것뿐이기 때문에 차원이 다르죠.

 다른 밴드보다 사명감이 있습니다.'

 

......

 

전 왜 처음 볼 때는 이 부분을 못 보았거나 기억에 안 남을 정도로 가볍게 넘겼을까요.

직장인 밴드지만 이분들도 남에게 말할 수 있를만큼 치열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16년 동안.

 

 

 

전 대부분의 것들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을 별로 없다고 쉽게 쉽게 간편하게 생각하며 삽니다.

하지만 친구가 말했습니다.

 

사람들과 네가 다만 다른 게 아니라.. 네 생각이, 너의 그 태도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한번쯤은 너를 생각하는 그 사람들의 말대로 해보는 것도 좋을 거라고.

 

 

 

아직도 그것은 제게 취미입니다.

좋은 결과물만을 위해서 눈살을 찌푸리게 달려가는 그 치열함은 여전히 싫습니다.

딱히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무언가도 없고, 큰 목표도 없고, 결과물이 끔찍하게 후지거나 아예 나오지 않아도

그 과정이 너무나 즐거워서 취미입니다.

 

하지만 지금 보다는 더 열심히 취미활동을 해야겠습니다.

 

김도균아저씨를 보며 울컥했던 내 감정을 위해,

16년간 사명감을 갖고 밴드를 하는 블루니어 마더 보기 부끄럽지 않게,

내 취미가 취미가 아닌 줄 아는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을 위해,

서른이 넘은 사람에게 욕먹을 거 각오하고 입아프게 걱정해준 친구가 사준 치맥을 위해!!

 

 

 

그 친구가 9월까지 해오라고 숙제도 내주고,

난 또 그걸 해가겠다고 약속해 버렸네~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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