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1.19 21:35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넵튠 26]이라는 컬트 SF 시리즈의 주연이었던 재키는
캘리포니아를 떠나 블루밍턴에 있는 대학으로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홈 스쿨로 교육받아온 어린이 연예인이었던 재키에게 대학은 낯설고 조금은
무서운 곳이죠. 하지만 그런 낯설음을 제대로 음미하기도 전에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그 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캐서린과 사랑에
빠져 버린 거죠.
[블루밍턴]은 요새 LGBT 커뮤니티 안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우리가 동성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긴 한데, 진짜 중요한 건
다른 거거든?"식 태도를 취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아요.
이 영화에서 재키와 캐서린이 동성애 관계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들이 사제간이란 것과 (이건 [러빙 애너벨]의 영역이기도 하죠),
재키가 언제든지 할리우드로 돌아갈 수 있는 유명인사라는 것입니다.
영화의 도입부는 가볍고 경쾌합니다. 아무리 [제복의 처녀]에 대한
감상적인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전 기본적으로 사제 사이의 이런
관계는 옳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에, 둘 중 누구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광속 스토리 전개가 조금 불편하기도 했어요. 아무리
쿨하게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관계를 맺는 사람들은 불편하고
불안하고 그래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캐서린은 영화
시작한 지 15분도 안 되어 재키에게 수작을 걸고, 재키는 1분도
고민 않고 캐서린의 침대 속으로 들어가버려요. 보면서 이게 뭔가,
했습니다.
그래도 이들의 로맨스는 꽤 재미있습니다. 일단 캐릭터가 제대로 잡혔어요.
할리우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는 동안 조숙한 작은 어른이 된 재키와
유혹적이고 재미있지만 무책임하고 가벼운 캐서린은 화학반응이
좋은 커플입니다. 둘이 같이 있으면 이런 종류의 로맨스 영화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달콤한 즐거움이 상당해요. 적어도 러닝타임
50분을 넘기기 전까지는요.
영화는 재키에게 [냅튠 26]의 영화판 주연 자리가 들어오면서 위기를
맞습니다. 혼란에 빠진 건 엉뚱하게도 재키가 아니라 캐서린입니다.
여기서 캐서린의 고민은 충분히 설명될 수 있지만 그래도 좀 유치하고
경박한 종류입니다. 물론 이전처럼 재미있게 놀 시간은 부족하겠죠.
관계가 끊길 수도 있겠죠. 여자친구가 다시 유명인사가 되었으니
아우팅 걱정도 해야겠죠.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캐서린이 하는
짓을 보면 이건 아니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일단 이건
학생과 데이트할 때 당연해 고려해야 할 일이고, 일단 자기가 여자들,
그것도 어린 학생들과만 데이트 한다는 걸 학교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데, 아우팅이 그렇게까지 무서운 걸까요. 물론 학생들과
데이트하는 건 여전히 나쁜 거고 캐서린도 그걸 먼저 두려워했겠지만.
영화는 이 문제들을 지나치게 급하게 정리합니다. 50분을 넘겨서야
위기가 시작되는데, 러닝 타임은 83분이 조금 넘으니까요.
캐서린이 후반에 그렇게 유치해보이는 것도 위기를
정리할 시간이 짧아서일 수도 있죠. 캐릭터들이 조금 깊이있는
고민을 할 수 있도록 20분 정도의 시간만 추가했어도 영화는
훨씬 좋아졌을 거예요.
전 단지 많이들 싫어하는 결말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습니다.
그냥 사실적이죠. 막 할리우드 대작 주연자리를 딴 십대소녀에게
무작정 커밍아웃을 요구하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그 정도면
새드 엔딩이 아니에요. 최선의 영화 결말은 아니었지만, 얼마든지
이후의 이야기를 낙천적인 방향으로 상상할 수 있을 정도는
되지요. 하긴 위에 올린 사진 찾으려고 인터넷을 뒤져봤는데, 이미
팬픽 작가들이 속편을 쓰고 있더군요.
(12/11/19)
★★☆
기타등등
이 영화는 은근슬쩍 제 판타지 하나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이게
SF와 관련된 것이라는 건 짐작하실 수 있겠지요. 그게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말씀드릴 수 없고.
감독: Fernanda Cardoso, 배우: Allison McAtee, Sarah Stouffer, Katherine Ann McGregor, Ray Zupp, J. Blakemore, Erika Heidewald, Chelsea Rogers, Patrick Mullen, Steven Durgarn, John Dreher, Jim Dougherty
IMDb http://www.imdb.com/title/tt1409004/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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