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2 14:22
쥘리앙 뒤비비에의 [타인의 목]은 조르주 심농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첫 번째 영화입니다. 원래는 심농 자신이 직접
연출하고 싶어했다던데 뒤비비에에게 넘어갔다죠. 심농은 매그레 역할로 이전에 같은 역할을 한 적 있던 피에르
르느와르를 원했다고 하지만 스케줄 때문에 그 역할은 아리 보르에게 넘어갔고요. 단지 살인범 라데크 역으로
발레리 인키지노프를 캐스팅한 건 심농의 아이디어였다고 합니다.
이야기는 유명하죠. 부유한 미국인인 핸더슨 부인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집 안에 피투성이 지문을 남긴
꽃집 직원 외르탱이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하지만 그의 무죄를 확신한 매그레는 그를 일부러 풀어주고 진범을
찾아내려 하죠. 그리고 그 진범은 카페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는 체코인 의대생인 라데크입니다.
영화는 원작이 가진 추리소설적인 구성을 없앴습니다. 외르탱의 탈출로 시작했다가 살인사건으로 돌아가고
라데크의 이야기로 이어졌다가 마지막에 매그레가 진상을 설명하는 구조를 일직선으로 쭉 폈어요. 어차피 원작도
범인이 그대로 드러난 내용이긴 했지만 그래도 서술구조를 통한 미스터리를 남겨놓았잖아요. 이 영화엔 그게
없습니다. 그래서 원작보다 좀 밋밋해 보이긴 하는데, 영화에서는 소설만큼 명탐정의 설명이
잘 먹히지 않으니 이 선택은 아주 이상하지 않습니다.
심농의 축축함보다는 표현주의 영화의 악몽과 같은 느낌이 더 강화된 영화입니다. 라데크도 사악함이 훨씬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외향적인 악당이고요. 경찰이 주인공인 걸 제외하면 초기 히치콕 영화와 유사한 점이
많은데, 일단 '무고하게 쫓기는 남자'라는 테마를 공유하고 있으니까요. 영화는 핸더슨 부인의 조카의 여자친구와
라데크를 엮어 그의 좌절과 고독감을 보다 노골적으로 표출할 수 있게 길을 열어주고 있는데, 전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영화에서 제가 가장 집중하면서 봤던 건 발레리 인키지노프의 캐스팅이었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원주민 출신의
러시아 망명객 배우로, 프랑스에서는 주로 동양인 역할을 했고 이 영화에서도 체코인보다는 중국인처럼 보여요.
당시 심농과 뒤비비에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전 이 배우의 얼굴을 볼 때마다 원작엔 없었던
인종적 긴장감을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라데크의 고독과 증오가 조금 다른 의미로 읽히기도 하고요.
(16/01/02)
★★★
기타등등
30년대 뒤비비에 영화들을 묶은 이클립스 세트에 속해 있는 작품입니다. 1월엔 이 영화들을 모두 다루려고요.
감독: Julien Duvivier, 배우: Harry Baur, Valéry Inkijinoff, Alexandre Rignault, Gaston Jacquet, Louis Gauthier, Henri Échourin, Marcel Bourdel, Frédéric Munié
IMDb http://www.imdb.com/title/tt0024710/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46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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