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17 17:04
전작이 악명 높은 [트와일라잇]인데도, 여전히 전 캐서린 하드윅이 좋은 영화들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압니다. 첫 작품인 [13살의 반란]만 해도 준수한 영화였지요. [트와일라잇]의 문제점 대부분은 원작자인 스테파니 마이어의 탓이었고요(이 사람은 에드워드 컬런에게 햇빛에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피부를 준 죄로 호러작가들의 지옥에 떨어질 겁니다). 전 여전히 하드윅의 차기작인 [프리헬드]에도 기대를 걸고 있어요. 하지만 하드윅의 신작 [레드 라이딩 후드]는 어떻게 봐도 칭찬해줄 구석이 없습니다. 이 영화는 작정하고 만든 [트와일라잇]의 아류작이며 생기없고 우스꽝스러운 자기 복제물입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를 호러/로맨스로 만드는 아이디어 자체는 괜찮습니다. 이 동화에 대한 정신분석학적 접근법은 너무 많이 써먹어 좀 지겨운 경향이 있긴 있지만, 그래도 장르물로도 써먹을 구석은 많죠. 수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졌고, 저 역시 그 중 꽤 많은 작품들을 리뷰했습니다. 하드윅이 한 번 더 하지 말라는 법은 없죠. 여전히 새 이야기의 자리는 있습니다.
하드윅은 늑대인간 추리물의 구성을 택했습니다. 주인공 발레리가 사는 마을 근처에는 늑대인간이 삽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축들을 제물로 바치면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 밤 한 소녀가 늑대인간에게 살해당한 시체로 발견됩니다. 늑대인간 사냥꾼인 솔로몬 신부는 마을 사람들 중 한 명이 늑대인간이라고 선언하고 사람들은 서로를 의심합니다. 가장 노골적인 용의자는 두 명입니다. 발레리의 나무꾼 남자친구와 발레리의 약혼자가 될 예정인 대장장이 청년. 누가 늑대인간이어야 이야기가 [트와일라잇] 스타일로 섹시해질까요.
이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하드윅이 이야기를 [트와일라잇] 스타일의 12살 여자애들 전용 포르노 영화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오해가 있을까봐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제가 포르노라고 말하는 건 노골적인 섹스 묘사 때문이 아닙니다.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논리는 같습니다. 이 영화의 모든 재료들은 딱 12살 미국 여자애들의 욕망과 소망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있어요. 오로지 그들이 원하는 것만 만들어 주는 겁니다. 소비자의 욕망을 건드리는 게 나쁘냐고요? 아뇨. 그건 좋은 겁니다. 나쁜 건 오로지 그것만 하는 것이죠. 여기서부터 예술작품은 더 이상 관객들과 정당한 대화를 할 위치를 잃어버립니다. 포르노가 되는 거죠.
얼핏 보면 가능성이 있었던 기획이 무너지는 것도 이 태도 때문입니다. 영화는 현대 미국을 사는 12살 소녀의 감수성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중세 유럽의 마을이어야 할 곳이 현대 미국 시골 동네처럼 보이고, 마을 축제가 나이트클럽처럼 그려지는 것도 그 때문이죠. 물론 영화는 용의자인 두 청년을 제대로 몰아붙이지도 못합니다. 주인공 발레리가 겪는 고난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관객들이 보기 싫어할 것 같은 건 처음부터 포기해버린 거죠. 영화가 밍밍해지고 비겁해지는 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특히 결말은요. 멀쩡하게 제대로 결말을 맺을 수 있는 길이 열려있으면서도 어쩜 그렇게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택하는 건지.
로맨스 판타지를 보호하기 위해 주인공들을 건드리지 못하자, 영화는 엉뚱한 부분을 찔러댑니다. 그 중 가장 고생하는 건 솔로몬 신부입니다. 물론 솔로몬 신부를 악당으로 만드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를 이용해 종교의 광기를 비판하는 것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죠. 하지만 그게 그를 이런 식으로 멍청하고 한심하게 만들어도 된다는 말은 되지 않습니다. 영화에서 그는 위험한 악당보다는 주인공들을 대신해 나쁜 이미지를 몽땅 뒤집어 쓴 일종의 쓰레기통처럼 보입니다.
좋은 배우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지 같은 각본 때문에 게리 올드먼, 줄리 크리스티, 버지니아 매드슨과 같은 좋은 배우들이 고생하는 걸 보는 건 슬픈 일입니다. 12살 관객들을 낚기 위해 캐스팅한 두 남자 배우들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 말 그대로 그들은 미끼 이상의 역할은 없으니까요. 다른 영화에서는 자기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을 겁니다. 레드 라이딩 후드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어떠냐고요? 예쁩니다. 정말로. 여러분이 1시간 반 동안 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보면서 눈요기를 하는 게 유일한 목표라면 전 이 영화를 추천해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의 가치는 기대하지 마세요. (11/03/17)
★☆
기타등등
청년들 중 한 명인 맥스 아이언즈는 제레미 아이언즈와 시네이드 큐삭의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더 잘 생겼습니다.
감독: Catherine Hardwicke, 출연: Amanda Seyfried, Gary Oldman, Billy Burke, Shiloh Fernandez, Max Irons, Virginia Madsen, Lukas Haas, Julie Christie
IMDb http://www.imdb.com/title/tt1486185/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6451
2011.03.17 17:33
2011.03.17 19:26
2011.03.17 19:28
2011.03.18 02:06
2011.03.18 02:40
2011.03.18 10:05
2011.03.23 20:38
2011.04.02 11:59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 레드 라이딩 후드 Red Riding Hood (2011) [8] [29] | DJUNA | 2011.03.17 | 12646 |
308 | 악의 연대기 (2015) [3] | DJUNA | 2015.05.19 | 12376 |
307 |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Di Renjie (2010) [8] [1] | DJUNA | 2010.10.03 | 12358 |
306 | 폭스캐처 Foxcatcher (2014) [5] | DJUNA | 2015.02.18 | 12300 |
305 | 터커 & 데일 Vs 이블 Tucker and Dale vs Evil (2010) [8] [36] | DJUNA | 2012.09.22 | 12298 |
304 | 더 도어 Die Tür (2009) [2] [2] | DJUNA | 2010.08.13 | 12294 |
303 | 러블리 본즈 The Lovely Bones (2009) [1] [42] | DJUNA | 2010.02.11 | 12282 |
302 | 하울링 (2012) [3] [1] | DJUNA | 2012.02.10 | 12203 |
301 | 더 파이브 (2013) [3] [2] | DJUNA | 2013.11.09 | 12049 |
300 | 1987 (2017) [3] | DJUNA | 2017.12.14 | 11961 |
299 | 아이들... (2011) [5] [2] | DJUNA | 2011.02.01 | 11956 |
298 | 나는 아빠다 (2011) [7] [1] | DJUNA | 2011.04.07 | 11944 |
297 | 침실의 표적 Body Double (1984) [4] [72] | DJUNA | 2013.08.25 | 11865 |
296 | ABC 오브 데쓰 The ABCs of Death (2012) [39] | DJUNA | 2013.07.30 | 11804 |
295 | 몽타주 (2012) [2] [3] | DJUNA | 2013.05.09 | 11765 |
294 | 시체가 돌아왔다 (2012) [3] [1] | DJUNA | 2012.03.20 | 11752 |
293 | 헤드 (2011) [5] [1] | DJUNA | 2011.05.19 | 11693 |
어쨌든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예쁘게 나온다니 그냥 큰 화면으로 볼래요ㅋ
정말 포스터에서 눈을 못 떼게 만드는 미모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