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19 10:49
- 1962년작. 런닝타임은 106분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어요. 어차피 결말은 뻔하니까요.
(포스터는 컬러!!!)
- 그레고리 펙은 잘 먹고 잘 삽니다. 잘 나가는 법조인에 아내랑 딸도 모두 러블리하고 커다란 집에서 예쁜 강아지 키우며 살아요. 모두가 화목, 선량하고 인생에 고난이 안 보이죠. 하지만 이 아저씨가 8년(대략!) 전에 범죄 현장을 목격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증인이 되었던 미성년자 성폭행 사건이 있었고. 범인 로버트 미첨이 형을 마치고 출소하자마자 이 사람 앞에 나타나 대놓고 위협을 하면서 악몽이 시작되는데요. 문제는 이 놈이 복수심에 불타 8년 내내 법 공부에 매진해 현역 법관 수준의 법률 마스터가 되었다는 겁니다.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가며 최대한의 스트레스와 공포를 안겨주는 민폐남 때문에 검사님 멘탈도 무너져가고 가정도 무너지고 급기야는 오히려 수세에 몰려 버리게 되구요. 결국 마지막 한 판 뒤집기를 위해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이렇게 위험합니다!)
- 이 영화의 1991년 스콜세지 버전을 안 봤거든요. 그래서 이제라도 볼까 하다가 왓챠에 원조가 있길래 이걸 먼저 봤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재밌게 봤는데, 덕택에 스콜세지 버전에 불만이 막 생긴다는 게 문제네요. ㅋㅋ 그것도 잘 만든 영화지만 원조에 뭔가 더 강한 아우라 같은 게 있고 이 쪽이 좀 더 제 취향이었어요.
('사냥꾼의 밤'에서도 그랬고, 위험한 변태남 최적화 로버트 밑-첨!!!)
- 여기서 로버트 미첨이 연기하는 '케이디'란 녀석은 간단히 말해 걍 쓰레기입니다. 인간 말종이고 개자식이죠. 미성년자를 성폭행했고 거기엔 어떤 오해도 숨겨진 사연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냥 '감옥 가는 바람에 망친 내 인생 어쩔!!!' 이라면서 너무나 당당하게, 아주 그냥 진심을 팍팍 담아서 진상을 부려요. 뭐 당연히 현실에도 이렇게 어이 없는 원한 품는 놈들이 천지겠습니다만 영화에서 보니 신선하게 짜증나더라구요.
그런데 웃기게도, 동시에 이 케이디란 놈은 이 영화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나쁘고 찌질한 놈인 주제에 머리가 정말 좋고 그게 영화 속 사건들로 잘 표현이 돼요. 언제나 침착하고 여유롭게, 유창한 언변으로 그레고리 펙을 조롱하며 압박하는 걸 보면 답이 안 나오는 갑갑함과 함께 뭔가 변태적인 쾌감 같은 게 느껴지구요.
마지막으로 참 섹시합니다. 매우 1960년대스런 몸매(?)지만 배우와 배역의 카리스마 덕에 매우 위험해 보이는 매력 같은 걸 풍겨요. 특히 막판에 '케이프 피어' 강에서 벌이는 격투를 보면 뭐 거의 인간이 아니라 악어 느낌.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로버트 미첨 쩐다!!'라는 거죠. ㅋㅋ 잘 만든 영화지만 거기에 또 확실하게 격을 높인 게 로버트 미첨이라는 느낌.
(사실 전 이 분 보면 '오멘'이랑 '로마의 휴일' 밖에 안 떠올라요.)
- 반면에 그레고리 펙이 연기하는 '그냥 정상인' 샘 보우든에겐 그리 강렬한 매력 같은 건 없습니다. 특별히 훌륭한 연기 같은 거 필요 없이 걍 허우대 멀쩡하고 모범적으로 생긴 미남이기만 하면 되는 역할인데요. 그렇기 때문에 또 그레고리 펙이 아주 완벽한 캐스팅이기도 해요. 저 시절 헐리웃에 그레고리 펙보다 잘 생기거나 그레고리 펙보다 모범적으로 생긴 배우는 있었겠지만 이만큼 바른생활 깝깝이 미남으로 생긴 배우는 그레고리 펙 이상은 없었을 거에요. ㅋㅋ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로버트 미첨의 불쾌 카리스마 캐릭터와 합이 참 잘 맞구요. 둘이 주고 받는 장면들을 보면 그런 게 느껴져요. 펙은 미첨의 불쾌한 짐승 같은 느낌을 키워주고 미첨은 펙의 '관객 감정 이입용 캐릭터' 효과를 증폭시키구요.
(작용과)
(반작용 콤비. 합이 장 맞습니다.)
- 영화의 내용은 뭐랄까... 참 미국적입니다. 우리네 선량한 시민을 보호해야할 법이라는 게 작정하고 치밀하게 달려드는 악마들에겐 이리도 무력하다! 라는 메시지를 내내 설파하고 결국 마무리는 우리의 선량한 상식인들이 '어쩔 수 없이' 법의 범위를 벗어난 방식으로 해결을 하게 되죠. 주인공이 무려 현직 법조인인데도 노골적인 위협 앞에서도 아무 힘을 못 쓰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에게 '왜 법과 경찰이 아무 도움이 안됨!' 이라고 양반전의 양반 와이프 대사 같은 타박을 계속 듣구요.
생각해보면 당시에 이 영화를 무섭게 본 미국 관객들은 이런 부분에 진심으로 공포를 느낄 수 있었겠다 싶더라구요. 요즘 같으면 뭐 걍 스토킹에 사생활 침해로 금방 해결(?) 가능할 텐데요.
(쯧쯧 그놈에 법률, 공권력은 한 푼 어치도 안 되는구려!! 그러니 내게 총을)
- 기본적으로 참 잘 만든 영화입니다. 시나리오도 이 정도면 그 시절 범죄물로서 꽤 치밀한 편이고 아이디어도 많아요. 마지막 보트 하우스에서의 대결 같은 것도 꽤 근사하구요.
로버트 미첨이 나쁜 짓을 할 때마다 깔리는 버나드 허먼의 음악도 뭔가 클래식이란 느낌으로 훌륭하구요. 인상에 남는 장면들도 많습니다. 딸이 학교에서 쫓기는 장면이나, 아내가 미첨과 대면하는 장면 등등 스릴 있고 뭔가 상상력 뿜뿜하게 잘 뽑은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뭐 요즘 기준으로 볼 때 미첨의 초반 압박이 좀 순한 느낌도 있고, 또 아주 간간히 살짝 느긋해지는 감이 아예 없진 않습니다만. 시대의 한계를 생각할 때 이 정도면 정말 잘 뽑았다는 느낌.
(하지만 우리 미첨옹 간지로 뭐든 극복 가능!!!)
- 그래서 결론은 뭐, 재밌게 잘 봤다는 겁니다.
포스 넘치는 로버트 미첨의 빌런 연기만 봐도 재밌는데 영화 자체도 잘 뽑힌 스릴러구요.
중요한 건 아니지만 당시 미국 법 체계와 요즘 상황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었어요. 영화 초반에 언급되는 '부랑자법' 같은 건 대체 뭐하는 법인지 한참 찾아봤는데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ㅋㅋ 미국도 가만 보면 법 체제가 요즘 상식에 가깝게 정비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요.
암튼 뭐 결론은 로버트 미첨 짱짱맨이시다!! 이런 겁니다. 이 분의 포스만으로도 안 본 분들께 한 번 추천하고 싶어지는 영화였네요.
다음엔 '사냥꾼의 밤'이나 한 번 더 볼까 싶기도 하구요. 봤던 영화지만 거기서도 우리 미첨옹이 아주 멋졌(?)죠.
+ 보다 보면 케이디와 아내, 딸 사이에 뭔가 상상력을 자극하는 서브 텍스트 같은 게 느껴집니다만. 여기선 그냥 사알짝 냄새만 피우고 빠지는 것을 스콜세지 버전은 그걸로 맘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더군요. ㅋㅋ 덕후의 마음이란.
++ 옛날 영화 책들 보면 이걸 굳이 '공포의 만' 이라고 번역해서 적는 경우가 있었죠. 뭐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실제 지명인 것을...
2022.07.19 11:34
2022.07.19 12:30
사실 올레 티비 등 iptv쪽에 한국인들에게 익숙한 고전 영화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왓챠에 들어가는 고전들도 중복이 많아요. 막 신 날(?) 정돈 아니어도 넷플릭스나 아마존 같은 ott들이 고전에 소홀해서 그나마 단물 같은 존재랄 수 있겠습니다. ㅋㅋ
말씀대로 덜 자극적이어서 오히려 맘에 들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바로 이어서 91년 버전을 봤는데 확실히 훨씬 지저분(?)하더라구요. 하하.
2022.07.19 11:38
마틴 스콜세지 판을 흥미롭게 보긴 했지만 굳이 원작을 찾을 생각은 못했는데 이렇게 되니 궁금하긴 하네요. 스콜세지판의 로버트 드 니로-닉 놀테는 로버트 미첨-그레고리 펙 처럼 나쁜 놈-착한 우리편 느낌은 아니었거든요. 정확하게 기억은 못하지만 원작과 다르게 닉 놀테의 법조인은 그리 결백한 입장도 아니었던 것 같고요. 앗, imdb를 보니 스콜세지판에 그레고리 펙과 로버트 미첨이 둘 다 카메오로 나왔었군요. 저는 제시카 랭과 줄리엣 루이스가 맡은 모녀가 이 범죄자에 성적으로 끌리던 부분만 기억에 남아요. 스콜세지가 덕후로써 목적 달성한걸로^^
2022.07.19 11:49
2022.07.19 12:40
개인적으로 원작을 더 재밌게 봐서 한 번 보시라고 말씀은 드리고 싶으나... ㅋㅋ 옛날 영화이다 보니 자극은 약합니다. 그래도 고전의 맛 같은 건 확실하구요.
91년작이 개연성 면에 많이 시경을 썼죠. 말씀대로 닉 놀테에게 화가 날 이유를 만들어 넣었고 형기도 확 늘렸구요. 웃기게도 미첨은 놀테를 돕고 펙은 드 니로를 돕는 역할을 해요. 역할 체인지. ㅋㅋㅋ
2022.07.19 11:51
2022.07.19 12:43
그런 변태스런 즉흥 연기라니 사실은 내추럴 본 변태셨... ㅋㅋㅋㅋ
2022.07.19 12:16
저도 리메이크판 밖에 보지 않았어요. 원래 스콜세지는 쉰들러리스트 하기로했었는데 스필버그가 이거리메이크랑 바꿨다지요 ㅎㅎ 제가 처음으로 본 드니로 영화고요. 덕분에 한동안 대배우님을 악역전문 성격파배우로 잘못 알고 있었어요.ㅋ
원작을 찾아보는 건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는데 참 세상 좋아졌군요. 이 영화도 주말 리스트에 넣어두어야겠네요 ㅎㅎ
2022.07.19 12:52
참 잘 바꾼 것 같아요. 스필버그 버전 케이프 피어는 상상이 안 가네요.
드 니로는 악역 전문 맞는데요? 엔젤 하트, 히트, 코미디의 왕, 언터처블, 더 팬... 아닐 수가 있나요. ㅋㅋㅋㅋ
보세요. 저는 기대보다 훨 맘에 들었네요.
2022.07.19 12:29
저도 스콜세지 작만 봤어요. 본지는 오래 되었는데 드니로의 악역 연기 인상적이었고 ally님 언급처럼 모녀를 성적으로 희롱했던 것 등이 기억에 있어요. 이 영화도 보고 싶어져서 리뷰는 건성건성 넘겼어요. 얼릉 보고 읽어야 겠습니다!
2022.07.19 12:54
미첨과 드 니로 캐릭터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어요. 둘 다 잘 했지만 제 취향은 미첨이네요. ㅋㅋ
재밌게 보시길!!!
2022.07.19 12:34
이 영화 정말 보기드문 수작이지 않나요. 검열때문에 오히려 더 연출도 연기도 절제되어있는데 그래서
더 정묘하게 공포가 느껴졌어요. 영화를 보는 내내 내가 스토킹을 당하고 있는 것처럼 불안하고 공포스럽고
연출과 로버트 미첨의 연기, 현실 공포로 다가오더군요.
수작이다!라는 내 감상과는 달리 흥행에 참패했었다고 들었어요.
리메이크작은 안봤지만 흑백으로 나온 오리지널이 훨씬 수작일거라고 믿어요.
2022.07.19 13:06
계속 하는 말이지만 미첨이 정말 잘 했어요. ㅋㅋ
제가 오리지널을 더 좋게 봤지만 리메이크도 나름의 맛이 있긴 합니다. 최종 결전 같은 것도 나름 화려(?)하구요.
2022.07.19 13:08
왓챠를 마침 보고 있으니까 이 영화 찾아서 다시 보려고 해요. 리메이크작도 궁금하긴 한데
제 편견일까요? 로버트 드 니로 연기는 외향적? 로버트 미첨보다는 전형적인 스토커의 외적인 협박이
강조되는 연기일거 같아요. 보고 판단해야 하겠죠.
2022.07.19 12:56
2022.07.19 13:26
그냥 스타일이 많이 달라요. 원작은 뭔가 고오전스런 느낌이 충만하고 여백이 많구요. 근데 그 여백이 뭔가 간지가 나는? ㅋㅋ
91년 버전은 자극 강화에 개연성 보강하고 갖가지 메시지나 흥미로운 떡밥거리들이 추가됐는데, 원작이 취향에 맞는 사람 입장에선 살짝 투머치란 생각도 들더라구요.
2022.07.19 16:36
2022.07.19 21:05
아, 히치콕의 영향이었군요. 그런데 히치콕보다 더 절제를 많이 했고 더 현실적인 공포감?
히치콕이 훨씬 드라마틱하거나 영화적이라는 느낌이 들죠.
2022.07.19 16:29
야망의 계절에서 엄청난 싸움꾼에 터프가이로 나오던 닉 놀테가 스콜세지판 리메이크에선 그가 고용한 깡패들을 드니로가 두들겨 패는 동안 구석 쓰레기통에 숨어 벌벌 떨고 있던데 도무지 이미지가 맞지 않더군요 ㅋㅋㅋㅋ
2022.07.19 19:46
맞아요. 사실 닉 놀테도 나름 짐승남 터프가이 캐릭터였는데 여기서 너무 약하죠. ㅋㅋㅋ
2022.07.19 17:45
봤습니다. 드니로가 강한 인상을 주며 강조점을 팍팍 찍는 연기를 하는 반면 미첨은 힘 들어가지 않은 연기를 하네요. 티내지 않는 가운데 드문드문 본성을 드러내는 식으로 공포심을 준다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대사를 없애고 보면 동네 아저씨 포즈로 돌아다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막판의 강 장면에서 폭력성이 효과가 큰데 별 표정없이 몸으로 하는 연기가 말씀대로 악어를 연상시킵니다. 흑백 영화라 그 분위기로 먹고 들어가는 면도 있고요.
저는 로버트 미첨은 나이든 인자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어서 이런 악한 역이 신선했습니다. 그레고리 펙이 미남이며 바른생활 맨 이미지 확고하지만 '깝깝이'미남이라니요! 살짝 항의 들어갑니다.
덕분에 모처럼 60년대 영화 한 편 잘 봤습니다.
2022.07.19 19:50
동네 아저씨 ㅋㅋㅋㅋㅋㅋ 맞아요. 걍 배우가 뿜어내는 아우라 같은 걸 빼고 보면 걍 양아치 한량 느낌이기도 하죠. 말씀대로 흑백의 대비 큰 화면 덕도 많이 보구요.
하지만 그레고리 펙은 제게 그런 이미지라서요. 하하. 하지만 깝깝한데 잘 생긴 것도 절대 쉽지 않다구요! 헐리웃 최고의 깝깝 미남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땡기시면 1991년작을 다시 보셔도 좋습니다? ㅋㅋ 원작을 보고 바로 보니 91년 버전의 의도나 포인트 같은 게 잘 보이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언제나 그렇듯 전 잘 모릅니다만.
2022.07.20 08:59
2022.07.20 10:00
억눌리면 억눌린대로 강렬하게 표현할 길을 찾아내는 게 예술가란 사람들 같기도 하구요. ㅋㅋ 말씀하신 계란 장면 참 당황스러웠습니다. 저 시절에 저래도 되나? 막 노출이나 많이 위험한 접촉이 아닌데도 참으로 부담스러웠어요.
전 무비콘 채널에서 봤는데 고전들이 오티티로 많이 들어갔나봐요. 앞으로 지적재산권 문제가 어떻게 될지 흥미롭습니다.
고전이란 카테고리가 애매하긴 하지만 왓챠나 웨이브에서 찾으려면 바로 제목을 넣어야해서 꽤 불편하긴 해요. 연도별 감독별 장르별 이런식으로 해놓으면 찾기 편할 것 같은데 십 층짜리 코스트코를 헤매는 기분입니다. ㅋㅋㅋ
올려주시는 글 그런 의미에서 매우 유용합니다. 감사히 읽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