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교사의 죽음

2023.07.20 15:52

Sonny 조회 수:1026

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46310&CMPT_CD=P0010&utm_source=naver&utm_medium=newsearch&utm_campaign=naver_news


통상 자살이라는 행위는 이렇게 공적인 공간에서 이뤄지지 않습니다. 자살을 할 만큼 쌓인 절망과 비참함은 훨씬 더 내밀하고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해당 교사는 학교,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자살을 감행했습니다. 자살이라는 행위를 이 공간에서 반드시 했어야 했다는 뜻입니다. 본인의 자아실현의 장소이자 가르치던 아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회적 관계들이 녹아있는 이 공간에서 왜 하필 그는 그랬어야만 했는지, 저는 이 질문을 사회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학교에 남긴 나의 흔적을 모두가 똑똑히 보시오'. 이 행위는 그 자체로 피해자가 남긴 다잉메시지입니다.


해당 교사의 주변인들은 악성 학부모들의 민원을 주요한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해당 교사에게 자신의 아이를 관리해주라며 비상식적으로 요구한 갑질의 정황들이 증언되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바로 어제 당일 초등학교 교사가 남학생에게 구타당해 3주 전치 상해를 입은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정말 대단한 우연의 일치였다면 차라리 좋겠지만 이 사건들을 둘러싼 교사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 두 끔찍한 사건에 조금 못미칠 뿐 한 사람을 미치고 돌아버리게 만들면서도 달리 대응책이 없는 학생들의 폭력과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대한 이야기들이 줄을 잇습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제일 극단적인 사건들이 불거졌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제일 표면적으로 이 사건들은 '교사'와 '학부모'의 대립으로 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교권'과 '학생인권'의 대립으로도 해석합니다. 저는 두번째 해석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서로 파이싸움을 하는 대립구조가 아니며, 이 사안들은 단순히 교사와 학생 사이의 갈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사안들에는 교사가 학생을 통제하지 못하게끔 하는 '학부모'의 개입이 항상 있습니다. 그리고 학생의 존재 없이도 학부모가 교사에게 직접적으로 교사 권한을 침범하거나 무력화합니다. 그렇다면 '나쁜 학부모'를 비난하고 '좋은 학부모'가 되주길 바라면 되는 것일까요.


왜 어떤 학부모는 '나쁜 학부모'가 되는 것일까요. 교사에게 나쁜 학부모들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녀들에게 좋은 학부모가 되려고 할 때 생겨납니다. 이들은 좋은 학부모가 되기 위해 자기 자녀에 대해 교사의 무한한 정신적, 신체적 돌봄노동과 자기관리를 요구합니다. 좋은 부모로서의 책임을, 타인에게 계속해서 전가합니다. 물론 이것은 '내 자식은 대접받아야한다'는 그릇된 교육관에서 발생되기도 하겠지만,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이유에는 노동자에 대한 멸시가 자리잡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너는 내 자식을 위해, 학부모인 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 이 정도 요구는 그 책임에 포함시켜줘야 한다는 노동자 멸시가 뿌리깊게 박혀있는 거죠. 


한국사회는 만인이 만인을 착취하는 나라입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상담사가 고객을 맞이해야하고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라고 뒤틀린 경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고객님"이라고 소비자에 대한 존칭은 있지만 그 반대로 서비스 제공자, 노동자에 대한 존칭은 없어서 직원에게도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노동을 천시하고, 특히나 서비스직에 대한 기본적인 하대가 사회 전체에 배어있습니다. 교사는 교육이라는 지식, 정보상품을 전달하는 사람이지만 교사의 이 노동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이 노동을 대개 서비스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교육이라는 노동 자체가 대인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 소비자의 권위가 광기에 가까울 정도로 높은 이 사회에서 교사라는 노동자의 노동은 다른 노동과 다르지 않게 경시될 수 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교육자의 의무와 책임만이 강요되고 때로는 노동시간 외의 감정노동과 헌신도 지당하게 요구됩니다. 교육이라는 "노동"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좋은 학부모가 되시오"라는 요구는 핀트가 빗나간 비판일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런 사람들은 이미 좋은 학부모가 되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하고 있고, 자기 자식한테는 "너무 좋은" 학부모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나쁜 부모가 아닙니다. 노동자를 하대하는, 나쁜 소비자죠. 카톡의 프로필 사진을 간섭하고, 정당한 훈육에 대해 아동학대라고 과장하고, 자식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소모적으로 요구하는 이 모든 것은 결국 교육의 소비자로서 교육의 생산자이자 노동자인 교사를 하대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일 것입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존중 이상의 특별대우를 받으려하는 갑질에서 교육자도 예외가 되지는 못합니다. 


저는 이 사건에 대해 '교육은 교육의 전문가에게 맡기고 신뢰하시라'라는 말도 경계합니다. 소아과의원들이 토로하는 환자 부모들의 지독한 갑질들만 보더라도 이제 전문가의 타이틀마저 이 노동멸시에는 더 이상 유효한 대책이 되지 못하는 시대입니다. 저는 이제 소비자로서의 의식을 경계하고, 특히나 자식을 보호한다는 명분과 결합된 소비자 의식에 대해서도 사회 전체적으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느낍니다. 이것이 단순히 과잉애정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내 자식에게 감히 이런 대우를 하다니'라는 특권의식의 승계 같아서 훨씬 더 암울해보이기도 합니다. 단순히 '나'가 아닌 '나의 자식'이 받아야 하는 어떤 대우를 맹목적으로 추구하고 그 만족도를 평가하는 것은 가족이라는 사회를 단위로 계급을 형성해나가는 것처럼도 보이거든요.


물론 이같은 계몽적 흐름이 먹힐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입니다. 대다수의 상식적인 부모들은 고민하겠지만 '나쁜 학부모'들은 교사라는 노동자에 대한 천시를 늘 자식에 대한 보호라는 명분으로 착각하고 있을테니까요. 어쩌면 이 같은 '모든 직군에 대한 소비자로서의 갑질'은 주변의 노동자 누군가를 반드시 부려먹어야 본전은 뽑는다는, 자본주의 마인드가 심화된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당장 이 현실을 인지하고 교육청과 각 학교에서 노동자인 교사들을 소수이되 크리티컬한 학부모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게 급선무일 것입니다. 소비자로부터 노동자를 지켜야, 노동자에 대한 존중과 금기가 또 따로 발전할 수 있겠죠. 


어떻게 보면 의미심장합니다. 수많은 노동시장들이 붕괴해나가는 가운데 유난히 돌출된 노동시장이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시장이라는 점이요. 출산율이 무너지는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사회 전체가 아동을 키우고 성장을 도울 수 없게끔 책임을 약자에게만 몰아댄 현상 중 하나로 훗날 기억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사라는 노동자의 문제는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린 공무원의 문제이기도 하면서, 돌봄노동자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고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돈만 있으면 자식의 가정교육을 포함해 모든 것을 외주주고 책임도 물을 수 있다는 외주 노동의 문제이면서, 사회 전체가 아이의 교육을 포기해버린 문제이기도 할 것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살아있는 교사들이 어떤 식으로든 자기 권리를 잘 지켜내고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상대하고 만족시키는 이 노동의 조건이라는 걸 사회가 다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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