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때보고 거의 20년만에 다시 본 영화.
그 때의 기억으로는 "왠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아름다운 예술영화"였는데,
지금 다시 보니 이 영화 "중2병 돋는 프랑스 블럭버스터"로 보입니다.
그래서 실망했냐구요?
아뇨, 오히려 더 정이 갑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루요.
전 - 진지하게 말하건데 - 다들 욕하는 폴라X 쪽이 
완성도로 보나 작가의 성숙함으로 보나 더 "나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90년도 초반 저를 포함한 수많은 영화광들을 들뜨게 하였고
또 - 그 때는 흔한 일이었지만 - 예술 영화 주제에 박스오피스에서도 잭팟을 터뜨리며 화제가 되었던,
한 시대를 상징하는 이 영화를 어찌 제 맘 속에서 지울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이 영화를 오랫만에 다시 보았고,
다시 보고 난 감상은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그러니까 이 오래전 친구 어쩌구하는 표현 만큼이나 
진부하지만 또 그만큼이나 진심으로 반가운,
그런 묘하고 들뜬 기분입니다.

음, 제 글이 영화만큼이나 쓸데없이 배배 꼬이는군요. :-)



#.
기억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예전에 이 영화 개봉 당시에는
영화 초반부의 수용소 장면이 뭉텅 잘려나가 있었죠.
처음의 터널이랑 사고나는 장면만 있었는지
아니면 곧장 다리 위에서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이 삭제 장면을 영화 잡지같은데서도 언급했던 게 생각납니다.
나중에 비디오로는 복원이 되었던가요?
허긴 이 무렵 - 특히 프랑스 영화들의 경우 - 검열이 아닌 배급사의 이해로
이 장면 저 장면 뭉텅뭉텅 잘려나가는 경우가 많았죠.



#.
영화 중간에 해변가에서, 드니 라방은 키스를 하면서 줄리엣 비노쉬에게 약을 먹여줍니다.
어릴 때는 그게 피임약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 당시 자막에 그렇게 나왔는지, 함께본 부모님이 그렇게 설명해주셨는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지금 다시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극중에서 특별히 줄리엣 비노쉬가 복용하는 약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약이었는지 아시는 분 있나요?



#.
예전에 보면서는 몰랐는데 영화 거의 마지막,
안과 의사의 사무실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는 줄리엣 비노쉬의 장면이 있더군요.
오늘 극장에서 만난 친구의 해석으로는 "그 안과 의사랑 동거한다는 건가?"라고 하던데,
저도 그쪽에 한 표를 던집니다.
하지만 좀 갑작스러운 설정이었어요.
허긴 이 영화 내내 이렇게 뜬금없는 스토리전개가 한 두번은 아니었지만.



#.
누벨 이마주라는 표현이 우리나라에서만 쓰이던 것이던가요,
아니면 프랑스나 다른 나라에서 건너온 용어이던가요?
어쨌든 시대를 건너뛰어도 여전히 걸작 취급받는 그들의 선배, 후배들과 달리,
이 무렵 각광받던 레오스 카락스, 뤽 베송, 장 자크 베넥스의 영화들은
다시 보면 여전히 우리의 감수성을 건드리긴 합니다만,
그 당시 그랬던 것 만큼 "훌륭"하고 "시대를 대표할만한" 작품이냐고 물으면
그 대답을 주저하게 됩니다.
레오스 카락스는 은둔한 도인처럼 되어버렸고,
거꾸로 뤽 베송은 헐리웃 블럭버스터의 열화카피판을 찍어내느라 바쁩니다.
장 자크 베넥스는… 
IP5로 이브 몽땅을 죽였다는 비난을 받은 이후로 그냥 사라져버린 것 같아 보이네요.
(근데 정말로 "아픈 노배우를 혹사시킨" 책임이 있었던 거였나요, 아니면 그냥 찌라시들의 가십이었나요?)

하지만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퐁네프의 연인들, 나쁜피, 니키타(이 영화가 tv시리즈로 부활할줄이야!), 디바 등등
우리를 설레게 하고 집집마다 포스터로 붙어 있던 그 많은 영화들을.

어쨌든 기억속의 그 영화는 기억만큼 고상하지는 않았지만,
기억보다도 더 아름답기는 하더군요.
반가웠습니다, 퐁네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080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9883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0145
120593 8만원짜리 롤라이 똑딱이 사진 [1] 푸른새벽 2010.08.25 3683
120592 다음생에는 뭘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29] zaru 2010.08.25 3037
120591 소녀시대 오늘 일본 쇼케이스 흥했어요. [8] high 2010.08.25 4788
120590 저도 수 십년전에 다녀 온 여행 사진 몇 장 찌끄려 봅니다 [11] r2d2 2010.08.25 2452
120589 옛날 소년중앙 보물섬 등에 실려있던 광고 중에요... [15] 악명 2010.08.25 3369
120588 [오랫만에바낭] 결혼생활에서 가장 민감하고 민망한 일 [24] 비네트 2010.08.25 5889
120587 지금 무릎팍 이봉원이 개그콘테스트 얘기하는데 [8] 푸른새벽 2010.08.25 3949
120586 윤은혜가 너무 귀여워요. 이제와서 궁을 보고 있어요. [5] 미소라 2010.08.25 3375
120585 충무로 영화제 그래도 하기는 하는군요 [10] lynchout 2010.08.26 2163
120584 상해 - 사라진 풍경들 [4] soboo 2010.08.26 1886
120583 가슴이 이상해요.. [5] dlraud 2010.08.26 2638
120582 맥스마틴 전성기가 돌아왔는지... [3] mii 2010.08.26 2284
120581 KBS2 음악창고 더클래식 [2] 말린해삼 2010.08.26 2019
120580 오늘 무릎팍 이봉원 편 재밌었어요. [16] 감자쥬스 2010.08.26 4417
» 20년만에 다시 본 퐁네프의 연인들. (스포일러) [19] mithrandir 2010.08.26 4279
120578 xxx 마스터 쿠로사와<19금> [6] catgotmy 2010.08.26 3772
120577 박주영 첼시행 가능성 소식의 느낌이... [7] Aem 2010.08.26 2617
120576 태양 앨범 어디서 사는게 가장 쌀까요? + 태양 잡담과 신곡 뮤비 [3] art 2010.08.26 2357
120575 연아양, 힘내세요! [20] theforce 2010.08.26 4561
120574 (듀게인)영화 좀 추천해주세요!이런 영화요. [10] 전기린 2010.08.26 2174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