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1 21:12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M. 버터플라이'(1993)를 며칠 전에 봤어요.
푸치니 오페라에서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역할을 역전시킨 내용이었고,
감독의 '플라이'(1986)와도 연결되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플라이'는 본지 오래 되긴 했지만 그때 감상은 다음과 비슷합니다. '인간은 서로에 대해 변화하는 존재다. 관계가 시작될 때 내가 아는 상대방은 그 사람의 일부일 뿐이니 시간이 가면서 몰랐던 부분이 나타나고 짐작과 다른 부분들이 드러나면서 애초에 갖고 있던 '그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상이 변화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린 어느만큼의 상의 변화를 수용하며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서로의 변화하는 상을 시간 흐름 속에서 업데이트시켜가며 사랑하는 부지런함이나 무엇보다 의지가, 그런 능력이 우리에게 있을까.'
버터플라이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비나 파리나 둘 다 변태로 형태의 변화가 심해지는 공통점이 있어요. 많은 이들의 분석이 있었을 것 같고, 저는 깊이 생각 않겠습니다.
다만 남자인지 몰랐던 것이 이해가 안 되었어요. 실화 기반으로 만든 영화라니까 말도 안 되는 설정이라는 이의제기를 감독에게 할 수는 없겠죠.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게 가능했다는 것은 저 외교관이었던 남자가 인위적인 장치, 기만적인 상황 같은 것을 깨닫지 못할만큼 자기만의 환상 세계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 속인 사람보다 속은 사람의 내면이 더 그로테스크합니다. 이국적 여건과 동양적 신비에 맹목이 되었다 해도 몇 년 동안을? 사랑 자체에 대한 어마어마한 자기최면이 없다면 상상할 수가 없어요. 상대를 보지 않는 그것은 자기사랑이겠죠.
.....사랑이야기 말고 '폭력의 역사'나 다시 볼까 싶어요.
2021.10.21 21:44
2021.10.21 21:53
무척 현실성 있는 그럴듯한 짐작입니다.
인간 신비의 비밀을 캐려는 마음은 좀 꺽여지지만요.ㅎㅎㅎ
2021.10.21 21:45
푸치니의 <나비 부인>을 실화와 연결시켜서 중국계 미국인 데이빗 헨리 황이 쓴 희곡게 기반한 거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동양에 대한 환상에 빠져 그 환상을 상대에게 전이시킨 게 있죠. 나체를 보지 않았던 것도 동양 여자들은 다 순진하고 다소곳해서 나체를 전면으로 보여 주지 않는다는 믿음때문에도 그랬다고 하고요. 브로드웨이 초연에서 갈리마르는 존 리스고우가 했고 상대는 <로 앤 오더>에 나온 b.d.왕이 했어요. 크로넨버그는 캐스팅 과정에서 트렌스젠더, 쌍둥이도 고려했다고 합니다.
2021.10.21 21:58
네, 그건 읽었는데, 현실은 말할 것도 없고 작품의 설정도 '아무리 그래도...'라는 믿기지 않는 마음이 남아요. 뭐 그래서 이런저런 머리를 쥐어짜는 해석들을 하게 만드는 모양입니다.ㅎㅎ
2021.10.21 22:07
제레미 아이언스가 영화에서 해서 그렇지 희곡 읽어 보면 르네는 그닥 외모가 출중하지 않고 자신의 남성성에 자신감이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데이빗 헨리 황이 "동양인으로서 나는 송에 감정이입하지만 남성으로서는 르네에게 감정이입한다" 이렇게 말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2021.10.22 09:52
실제 인물 사진을 보았는데 아주 평범한 외모의 남자였습니다.
2021.10.21 23:15
그때는 성교육이 없었겠죠?
아무리 어두워도 그렇지 어떻게 아이가 생겼다고 믿을수가
2021.10.22 09:53
상식적으로는 믿기가 어려운 이야기예요. 그러니 영감의 원천이 되었나 싶습니다.
실화의 프랑스 남자는 그냥 동성애자였던 게 아닐까요. 그래서 여장 남자와 사람들의 의심스런 시선을 피해 원 없이 행복하게 살고 싶었지만 이용당했고. 나중에 갸가 남자라는 게 대중들에게 알려지자 좌절하고 사람들에겐 몰랐다고 둘러댄 게 아닐지. 그냥 20년간 살면서 숨기는 건 어떻게든 가능했다고 쳐도 나중에 자식까지 키웠다는 건 아무리 봐도 그냥 불가능하잖아요. ㅋㅋ 물론 이렇게 생각하면 재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원작 소설, 영화나 뮤지컬 등에선 걍 진짜 몰랐던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