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혈과 교리

2010.12.13 11:01

와구미 조회 수:1922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종교적, 사회적 금기는 당시 환경적인 이유 때문에 생기게 되고 그것이 세월이 흘러 전통이 되어 현재까지 이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 국가들과의 교류와 과학의 발달로 인해 많은 제약들이 극복된 지금에 와서는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금기도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금기도 하나씩 사라지는 경우도 많죠.


성경엔 피를 먹지말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어떤 이유 때문에 금기시 된 행동인지 쉽게 떠올리지 못하겠습니다. 동물에 피에 들어 있는 세균이나 기생충에 의해 병을 얻는 경우가 많아서였을까요. 하지만 다른 민족에서는 그러한 금기가 별로 발견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동물을 잡으면 피를 마시는 민족이 아주 많죠(감염이 될 가능성은 있지만 그것이 특별히 높지 않아서 일겁니다). 이 구절은 수혈이란게 뭔지도 모르는 시기에 쓰여진 구절인데 이것을 수혈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하는게 과연 옳을지 의문이 듭니다. 주류 기독교의 해석대로 생명을 귀하게 여기라는 말씀이란게 더 그럴듯 하죠.


수혈을 하면 중요한 교리를 어기게 되어 심지어 구원을 받지 못할 상황까지 처할 수 있는데 왜 신은 수혈로 사람의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만들어놓았을까요. 기독교의 교리는 사람의 생명보다 구원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같은 혈액형끼리의 수혈이더라도 거부반응을 일으키도록 만들어 놓았다면, 선의로 한 행동이 한 사람의 구원 가능성을 박탈할 일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그 이전에 신의 모습을 본따 인간을 창조했으면서 그 고귀한 인간끼리 체액교환을 한게 뭐 그리 신이 보기에 불쾌한 일일까요. 그것도 가장 최상을 형벌을 내리면서까지 말이죠.


혈액이라는 것도 구성 성분을 따지고 보면 대부분이 물이고 일부 단백질과 지질이 섞인 액체입니다. 우리가 먹는 고기의 성분과 별다를게 없습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지적처럼 고기에는 그 동물의 피가 섞여 있죠. 고기를 통해 평생 섭취하는 피가 사람이 한 번 수혈받는 양보다 훨씬 많을겁니다. 의도성이 없이 한 번에 소량의 피를 섭취하는 건 괜찮다면, 다른 금기에 비해 약간 느슨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부는 허용되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의도성이 개입되는 순간, 어마어마한 형벌을 주는 교리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다들 아시다시피 어떤 교리에 대해 오류나 모순을 찾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죠. 그들에게 이런 의문들을 제시해봤자 그들은 그건 신의 섭리이니 우리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고 그저 믿고 행하라고 말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왜'라는 질문을 허용하지 않죠.


명확한 이유도 없이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 어떤 행위를 금지하고, 그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서 생기는 불행에 대해서는 무감각해하지만 그 행위를 한 자에게 끔찍한 형벌을 내리는 신은 믿고 싶지 않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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