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07 13:20
-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 정확한 배경은 모르겠지만 83년 영화이니 대략 그 때 쯤이겠죠. B급 호러에 흔히 나오는 평범한 미국 마을이 배경이고 주인공은 그 동네 왕따 청년 '어니'입니다. 특별한 문제는 없지만 비교적 엄하고 과보호 축에 속하는 부모 아래에서 말 잘 듣는 착한 너드(...)로 자라났으나 학교의 불량배들이 이 녀석을 가만히 둘 리 없고. 미식 축구부에서 잘 나가는 미남 친구 데니스가 곁에서 지켜주지만 그래도 사는 게 별로 재밌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 데니스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가던 길에 길바닥에 판다고 내놓은 폐차 상태 (시동이 걸리고 움직여서 깜짝 놀랐습니다ㅋㅋ)의 빨간 옛날 차를 보고 홀딱 반해 버린 어니는 친구의 만류도 뿌리치고 그걸 말도 안 되는 바가지 가격에 구입해서는 직접 고쳐본다고 난리를 치는데, 차를 다 고친 후로는 갑자기 세련된 멋쟁이이자 성격 파탄자가 되어 가족도 친구도 멀리하게 되고, 그런 친구가 넘나 이상했던 데니스는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그 차의 전 주인 일가가 모두 수상쩍게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던 와중에 학교 불량배들은 어니를 괴롭히기 위해 어니의 차에 테러를...
- 그러니까 또 미국 고딩들 문화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서도 남학생들요.
미국 고딩들 문화에 대해서는 수많은 영화, 드라마들로 학습을 당해서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사실 그게 썩 그리 와닿지는 않아요. 어쨌거나 남의 나라 문화니까요. 직접 겪어 보지도 못한 제가 그런 걸 다 이해하는 게 이상하겠죠. 그래도 그냥 영화로 보고 즐기는 덴 충분하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 영화가 그러한 미국 고딩들 문화 중에서도 제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분야를 다룬다는 점입니다. 자동차에 대한 로망과 집착이요.
옛날 옛적 국민(...) 학생 시절에야 뭐 저도 남들처럼 람보르기니 카운타크 장난감 같은 물건을 바라보며 하악거렸던 적이 있지만 금방 끝났어요. 그 후론 자동차에 아무 관심도 애정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려서. 직접 몰고 다니는 제 차도 그냥 친척분의 권유로 중고로 구입한 물건이고 세차도 잘 안 하고 관리도 안 해서 식구에게 혼나고 가끔 태우는 지인들의 놀라움을 사고 그렇습니다. 나중에 갖고 싶은 차도 없어요. 관심이 없어서 찾아 보지도 않으니 아는 것도 없고 그러니 원하는 것도 없고 그렇죠.
이런 제가 뭐 간지나는 차를 타고 친구 & 여자들에게 어필하고 싶고. 차에다 이름까지 붙이고서 직접 닦고 조이고 기름 칠 정도로 애착을 갖고... 뭐 이러는 고딩을 소재로 한 영화를 재밌게 볼 수 있을리가요.
- 그리고 이게 자동차란 말입니다. 결국 이 유령 들린 자동차가 공포감을 조성해야 하는데, 손도 발도 없고 표정도 없으며 덩치가 커서 집 같은 좁은 공간엔 들어가지도 못 하는 자동차가 악역이다 보니 별로 그렇게 긴장감이 생기거나 무섭지가 않습니다. 또 어떻게든 이 자동차가 사람을 위협해야 하다 보니 억지 연출도 많아요. 여러분들 같으면 자동차에게 쫓기는 상황이면 일단 어떻게 하겠습니까. 차가 못 가는 곳으로 가버리면 되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 그런 당연한 선택을 하는 사람은 딱 한 명 뿐인데 그마저도 애매한 곳으로 도망을 쳐서...
- 차라리 코미디에 가까운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대놓고 코믹한 장면을 짧게 한 번 보여주는데 그 쪽이 훨씬 어울렸어요. 물론 원작 소설도 영화도 궁서체로 진지한 호러입니다만. 코미디로 만드는 편이 더 설득력 있고 재밌었을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하고 싶은 말을 라디오 음악으로 대신하는 자동차이니, 그것도 30년전 음악들만 틀어대는 할매 자동차이니 드립 꺼리도 무궁무진할 듯 한데(...)
- 결론을 내자면.
별로였습니다. 전혀 무섭지도 않고 그렇게 긴장되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그냥 이야기 자체가 별로 저의 흥미를 못 끌고.
그래도 원작자와 감독 능력치가 있다 보니 특별히 지루하고 재미 없지는 않아요.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악행을 지르는 액션 장면들을 보면 연출도 꽤 괜찮아서 볼만한 장면도 몇 개는 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가장 큰 의미는 그냥 수십년 밀린 숙제를 끝낸 뿌듯함 정도였고 별로 남들에게 추천하고 싶진 않네요.
그럼 이제 남은 숙제는... '쿠조'겠네요. 이건 보려면 어디를 찾아봐야할지...
- 사족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불쾌하고 호러스런 장면은 초반의 학교 폭력 장면이었네요. 이런 장면은 봐도 봐도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 그리고 가만 보면 크리스틴이 그렇게 나쁜 놈이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건의 결말만 요약판으로 전해지는 '이전 소유자 가족의 비극'은 접어 두고 영화 안에서의 내용만 보면 버림받은 자기를 고쳐주고 사랑해준 새 주인에게 헌신(!)하는 캐릭터일 뿐인지라(...)
2019.10.07 13:24
2019.10.07 17:31
2019.10.07 15:50
줄거리만 대충 읽으면 변신 못하는 범블비가 나오는 트랜스포머잖아요.
2019.10.07 17:32
2019.10.07 20:35
너무나 스티븐 킹 스러운 컨셉이라고 생각했었더니 역시나 그 분이 원작이군요. 귀신 들린 자동차가 나오는데다 그 이름이 크리스틴이라 얼핏 생각하면 코미디로 풀 법한 이야기인데 의외로 진지하고 어둡더라고요. 촬영하면서 자동차를 무지하게 많이 부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살난 자동차가 멀쩡하게 돌아오는 장면들은 지금 봐도 신기했어요. CG도 없던 시절에 그런 특수효과는 어떻게 낸 것인지... 윗분 말씀대로 자동차를 갖고 싶어하는 고등학생이 신비한 고물차를 만나 이런저런 일을 겪게 되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이후에 나온 범블비나 몬스터트럭 같은 이야기들의 원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검색해 보니 주인공 배우 두 명은 특이하게도 연출자로 전향해서 아직까지 살아남았더라고요.
2019.10.07 21:54
자가 복구 장면은 아마 부수는 걸 찍은 후에 거꾸로 돌린 거겠지... 라고 생각은 했는데 그렇게 하려면 내부에 부숴지는 장치를 만들어 넣어야 했을 테니 역시 신비롭기는 마찬가지더라구요. ㅋㅋ
네. 저도 그 연출자 변신 이야기를 어디서 읽고 검색해보니... 특별히 기억할만한 작품은 없어도 꾸준히 활동하며 잘 살고 있더군요. 특히 친구 데니스 역을 했던 분은 보니깐 B급 액션 전문 제작자가 됐던데. 이 영화에서의 의외로 온화한 캐릭터랑 달라서 괜히 좀 웃겼습니다.
2019.10.07 21:49
딱히 미국 고딩까지 안가더라도 '남자는 수동' 아입니까(머래..) 제가 차에 이름 붙이고 닦고 광내는 종류의 사람인데요, 영화를 봐도 자동차 관리 tip은 없을 것 같네요. 패스해야 하나...
2019.10.07 21:55
아무리 때려 부숴도 스스로 회복해버리는 오파츠급 기술의 자동차라 팁은 없습니다. 패스하셔도 될 듯요. ㅋㅋ
평이 좋아서 봐야지 생각만 하고 미뤄주고 있었는데(존 카펜터 팬입니다ㅠ) 기대를 좀 접고 봐야겠네요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