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알고 지낸 동생이고, 일년에 두어번 만나는 지인이예요. 

최근 들어 고백을 받았고 전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라 이 관계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었어요.

그 대답을 하려고 만난 자리였어요. 술을 좀 먹었고, 전 완곡하게 거절을 했고요.


화장실을 다녀와보니 직원이 테이블을 치우고 있더라구요. 다행히 핸드폰을 갖고 있었어서 전화를 했더니 먼저 계산하고 나가서 기다리고 있다더라고요. 테이블엔 제 가방이 없었고요.

나가보니 자기 가방만 들고 있더라고요. 제 가방 어쨌느냐 물어보니 못 봤대요.

지인은 제가 화장실 갈 때 들고 갔다가 놓고 온거 아니냐고. 근데 전 많이 취한 상태도 아니었고, 분명 테이블에 놓고 갔던 기억이 있었어요.

그 친구가 집까지 데려다줬고 제가 너무 상심해있으니까 위로해주고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어요.

어제 그 술집에 가서 씨씨티비 확인했어요.

그 친구가 저 화장실 가자마자 제 가방 들고 일어나서 나오는게 찍혀 있었어요. 계산하고 나가는 것까지요.


바로 연락해서 씨씨티비로 본 것을 얘기하고 어떻게 된거냐고 물었어요.

당황해하더라고요. 미안하다, 기억이 안난다, 확인해보고 연락주겠다, 그러길래 일단 기다렸어요.

먼저 나가서 어딜 들른건지, 누굴 만나고 온 건지, 가방을 되찾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이미 없었고, 상황만이라도 알자는 마음으로요.

밤중에 연락이 왔어요. 너무 미안하다, 자기 실수다, 취해서 몰랐다, 기억이 안난다.

걔가 그날 많이 취했었나봐요.

너무 창피하고 미안해서 앞으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지갑이랑 안에 있던 것 해서 얘기해달라 최대한 피해없게 원하는대로 해주겠다더라고요.

이 상황이 황당하고 민망해서 제가 다 미안할 지경이예요.


잃어버린 제 백은 친동생이 첫월급 받아서 선물해준 건데, 지금은 단종되서 구하기도 힘들어요 이게 제일 화나요.

화장품 파우치에 든 것만 아무리 적게 잡아도 30만원은 족히 넘을 것 같아요. 파우더, 파운데이션, 각종 색조화장품들, 리무버, 거울과 향수 등.

지갑도 꽤 고가였고, 현금이 십만원쯤. 안에 든 중요한 명함들, 사진, 메모, 편지 등, 생각하면 진짜 속상하고요.

그밖에 작업 중이던 원고. 다른 자질구레한 것들 빼도 소중한 게 너무 많이 들었어요.

가방 하나 사소해보여도 생각해보면 억울하고 화날 만큼이예요.

잃어버린 첫날 밤엔 잠도 못 잤어요. 하루종일 시름시름.

금전적으로도 적지 않은 손실이고, 지금 제 상황에서 당장 필요한 것들만 원상복구 시키기도 쉽지 않은 정도예요.

제 입장에선 가만히 있다가 도둑맞은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근데 그 친구도 악의로 어디 버리고 온 것 같진 않고, 

차이고나서 홧김에 술김에 일부러 그런거 아니냐고 말하는 친구도 있는데, 그 정도의 인간은 아니란 믿음은 있어요.


지금 그 친구 입장을 생각해보면 제가 너무 민망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

그렇다고 잃어버린 품목들 정리해서 액수 말하는 것도, 후아, 미치겠네요.

이런 상황에서 그깟것 대수롭지 않게 그 친구 덜 민망하게 다독여줄 수 없다는 자괴감이 커요.

일단 진짜 소중한 것들은 어차피 되찾을 수 없게 됐다는 게 제일 속상한데, 그건 어차피 보상받을 수 없는 거고.

금전적으로 쿨하게 괜찮아질 수 없다는게 참. 현실적으로 저한테 타격이 너무 크거든요.

어제 친구를 만나서 조언을 구했는데;; 제가 지금 어떻게 해도 그쪽에서 다시 저를 만날 수는 없을 거라더라고요.

그럴 것 같긴해요. 그래서 되려 제가 더 미안해져요.

뭐 이런 황당하고 민망한 사고가 다 있나 싶네요. 가방 잃고 관계 잃고; 

어제 그 친구한테 문자받고 나서 아직 뭐라 답을 안한 상태예요. 제가 답이 늦어질수록 그쪽이 힘들거란 생각이 드는데 정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34277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53529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63948
123319 결국 언플천재 광수한테 한방 먹었네요 [4] 사과식초 2012.08.03 5791
123318 미국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들은 왜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님들 뿐인가요? [39] theforce 2011.05.02 5791
123317 트위터를 통한 자살예고 [16] mii 2010.06.15 5791
123316 요즘세대의 건축학개론이라고 해야하나.. 웹툰 하나 추천합니다. [11] eque 2013.03.27 5790
123315 [급듀나인] 홍대에서 혼자 술마시기 괜찮은 바 [5] V3 2012.10.14 5790
123314 맥도날드 커플 미스테리 [22] 듀라셀 2012.09.15 5790
123313 " 어디 가서 내 팬이었다는 소리 하지 마세요. 쪽팔리니까." [16] asylum 2012.02.07 5790
123312 역시, SM은 소녀시대가 쉽게 가게 놔두질 않는군요. [30] 아리마 2011.10.19 5789
123311 [급질] 신랑, 신부를 모두 아는 경우 축의금 문제... [19] 순정마녀 2012.09.21 5789
123310 헉뜨. 장조림도 쉬는거 아시나요? [13] 바스터블 2014.09.11 5788
123309 똥값된 아파트.... [11] theforce 2013.01.06 5788
123308 라이프 오브 파이 [46] 세상에서가장못생긴아이 2013.01.14 5788
123307 요즘 카페에 하루 종일 있다시피 하는데....갈수록 좀 민망해요...;; [27] 낭랑 2011.01.26 5788
123306 여직원을 숙직에서 빼주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33] 침엽수 2011.07.01 5787
123305 소개팅 상대가 자기를 맘에 안들어하면 자존심 상하나요? [18] sweet-amnesia 2011.03.19 5786
123304 백지영, 쿨 유리 쇼핑몰 문제가 있군요. [10] 자본주의의돼지 2012.07.10 5786
123303 결혼한 친구들과 관계 유지가 점점 힘들어져요. [24] 스트로베리앤크림 2014.02.21 5785
» 지인이 잃어버린 제 물건, 어쩌면 좋을까요 [41] 잠시익명할게요,, 2012.10.31 5785
123301 신촌 굴다리 앞, '맛의 진미' - 분식집 제육덮밥 [13] 01410 2010.11.30 5785
123300 [TED] 벤자민 젠더, 음악과 열정에 대하여 [3] Jekyll 2010.08.22 578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