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08 17:24
스포일러 다량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세대 차이가 느껴지는 분야가 있는데, 애니메이션 분야입니다.
요즘 아이돌 같은 경우는 제가 봐도 굉장히 예쁘고 귀여워요.
하지만 요즘 인기있는 애니메이션-[스즈미야 하루히]나 [토라도라]같은 작품을 보면...저게 뭐지. 재미도 없고 매력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듀게에서 [돌아가는 펭귄드럼]을 소개받고 푹 빠져 버렸습니다.
[펭귄드럼]도 시작은 황당무계합니다.
죽었다 살아난 여동생을 살리려면 핑드럼을 찾으라네요.
그리고 그 핑드럼을 찾으려면 어느 여고생의 일기장을 훔치래요.
이 일기장이 뭐냐하면 죽은 언니 모모카가 생전에 기록한 일기를 이 동생이 그대로 껴맞춰서 따라하고 있어요. 그러면 운명이 바뀐다면서요.
또 웃기지도 않는 4차원 만화인가, 제가 조금만 한가하지 않았다면 초반에 일찌감치 때려 치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 안드로메다가 현실이라면 어떨까요?
예를 들면 히틀러가 정말 살아있어 세계 3차대전을 계획하고 있고, 허모씨가 해모수의 자손으로 아이큐 400의 공중부양자라는게 사실로 밝혀진다면?
일기장의 주인공 모모카는 실제로 특별한 아이인게 드러납니다.
그녀는 불쌍한 아이들의 구세주같은 존재였고, 일기장의 힘으로 지하철 테러 사건을 막으려다가 순교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남긴 일기장을 차지하기 위해 난투가 벌어집니다.
굉장히 비슷하지 않나요?
지금 현실에서도 구세주가 남긴 책쪼가리 하나에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고, 그 말씀 그대로 따르라고 우격다짐하고 있습니다.
[펭귄드림]의 초반부 황당 개그를 낭비라고 보는 분들도 있으신데, 물론 재미없기는 하지만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성서에 대한 이렇게 기가막힌 비유를 본 적 없는 것 같해요.
만화는 순식간에 진지해지면서 성서드립, 동성애, 근친상간, 미스테리 등등 덕후들이 열광하는 온갖 것들을 공세하기 시작합니다.
안노 히데야키와 함께 떡밥계의 양대 산맥인 이쿠하라 쿠니히로 감독인 것입니다.
여전히 에바 Q를 찾아 극장을 찾는 노예지만, 안노 히데야키의 사도나 인류 보완계획에 엄청난 의미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반면 이쿠하라 감독의 떡밥은 보다 명확한 메세지가 있어왔습니다.
우테나의 혁명을 실패했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던 히메미야 안시가 우테나의 희생으로 변화한 것이야 말로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타부키의 성우는 에바 카오루의 이시다 아키라. 모처럼 이분의 코믹 연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우테나의 주제가 여성 혁명이었다면 [펭귄드림]의 주제는 가족입니다.
이 만화에는 정상적인 가족은 하나도 없습니다.
여동생 히마리를 살리기 위해 칸바는 목숨을 걸고 위험한 일을 무릅쓰면서 동생들에게는 '너희들은 그냥 웃으며 지내라'고 안심시킵니다.
하지만 그런 칸바에게 계속 '가족은 쓸모없는 존재야', '무엇을 위해 이렇게 하느냐'는 속삭임이 따라옵니다.
결국 그는 '항상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동생에게 총알을 날립니다.
타부키와 유리는 모모카를 통해 이어진 가짜 가족일 뿐이라고 한숨 짓습니다.
쓸모없는 아이들은 어린이 브로일러로 보내집니다.
부모는 아이를 착취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이고, 아이들은 그런 부모로 인해 숙명적인 죄의식과 좌절감을 안고 태어난 존재입니다.
만화를 보다보면 일본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무력감에 시달리고 병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1995년 사린 사건은 아직도 큰 상처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분명 아무것도 될 수 없는 우리들'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펭귄드럼]은 가족은 인류가 짊어진 원죄이고 살아가는 건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운명의 열매를 함께 먹자' 말합니다.
서로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어떤 운명도 바꿔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어쩌면 성경의 그 어떤 규율보다 큰 핵심일 수도 있구요.
물론 쭈욱 봐온 사람이라면 트렌드의 흐름을 아는만큼 세대차까지는 느끼지 않겠지만요.
제 경우, 극장판과 OVA, TV시리즈가 고르게 시장에 분포하던 8,90년대를 지나 시장의 중심이 TV시리즈로 옮겨온 2000년대부턴
이 바닥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었습니다. 제작공정이 수작업 셀에서 디지털 셀로 바뀐것도 기술적인 미성숙으로 인해 보기에 좋지
않았고, 뭣보다 미소녀와 모에 트렌드에 시장이 휘어잡힌 꼴이 보기싫어서 이 바닥을 떠나려고도 했었습니다. 실제로 그 시기에
많은 올드덕들이 탈덕했지요. 하지만 몇몇 걸출한 작품들 - 플라네테스, 공각기동대SAC, 충사, 그렌라간, 허니와 클로버 등 -
덕분에 제 탈덕은 저지되었습니다. 언급하신 하루히 시리즈도 제게는 그런 작품가운데 하나인데, 전 그 작품을 보면서 미소녀
모에물도 재밌을 수 있구나라고 느꼈고 특히 극장판의 경우는 늑대아이 정도를 제외하면 근래의 극장용 아니메가운데 가히 군계
일학이었습니다(TV판을 봐야만 내용이해가 가능하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말이죠). 그리고 이젠 디지털 셀도 기술적으로 안정되었
고, 양질의 작품들 - 바케모노가타리,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 하트커넥트, 빙과, 진격의 거인 등 - 을 보며 이 바닥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작품들이라고 오덕들에게 다 인기있는건 아니고(특히 바케모노가타리는 취향을 극명하게 타죠),
트렌드도 중요하지만 결국 근본적으론 작품의 개별성에 달렸지요. 그것은 곧 저는 하루히를 좋아하지만 쥬디님은 그렇지않으며,
에바를 공통적으로 좋아하지만 저는 우테나를 별로 좋아하지않는 것과 같은 차이로 나타납니다.
저는 국내 대중음악계가 라디오와 음반판매에서 티비방송 중심으로 넘어간 시기에 인디를 제외하곤 관심을 끊었고, 그런 제가
국내 음악계를 깐다한들 객관적인 평은 못될겁니다. 그 바닥에서 떠났기 때문에, 잘 모르기 때문이지요. 제가 아이돌들의 외모
어필과 싸구려바이브레이션을 보고들으며 손발을 오그릴때, 대중들은 아니메의 그림과 성우의 목소리를 보고들으며 손발을
오그립니다. 결국은 익숙함의 차이란거고, 다양성의 부재와 자극성을 비롯한 갖가지문제는 양측이 다 가지고 있으며, 그 편견들
속에서 '진짜'들은 못보고 놓쳐버립니다. 예를 들면 이 바닥에 몸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돌아가는 펭귄드럼'을 흔한
4차원 개그물로 여기고 보지않았던것처럼 말입니다.
쓸데없는 말이 길었네요;; 리뷰 잘 읽었구요, 피규어 구매로 이어질까 두려운 관계로 작품을 보게 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ㅎ;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만나실 수 있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