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4.07 01:12
보르 게임 - 보르코시건 시리즈 4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은이) | 이지연 | 김유진 (옮긴이)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3-11-18 | 원제 The Vor Game (1990년)
SF 중에서 세계 현대 스페이스 오페라의 양대 산맥은, 아너 해링턴 시리즈와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라고 한다. 아너 해링턴 시리즈는 텍스트 파일로만 십년 넘게 떠돌다가 최근에 현대문학 임프린트인 폴라북스에서 시리즈 첫 권인 『바실리스크 스테이션』(데이비드 웨버, 폴라북스, 2014년 3월)이 출간되었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는 행복한책읽기 SF 총서로 『마일즈의 전쟁』과 『보르 게임』이 소개 되었고, 『반지의 제왕』을 낸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사에서 새롭게 16권 전권을 계약하고 『명예의 조각들』, 『바라야 내전』, 『전사 견습』, 『보르 게임』, 『마일즈의 유혹』, 『남자의 나라 아토스』 등 현재까지 6권을 냈다.
이중 『전사 견습』은 『마일즈의 전쟁』에서 제목이 바뀐 것이다. 그리고 『보르 게임』은 행복한책읽기 판과 동일한 제목으로 나왔다. 『전사 견습』에 이어 마일즈의 활약을 보여주는 『보르 게임』은 역시 『전사 견습』만큼의 재미를 보장하며, 뛰어난 스토리텔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놀랍게도 씨앗을 뿌리는 사람 출판사는 휴고상까지 받은 이 『보르 게임』을 전자책은 0원, 즉 무료로 공개했다.(YES24, 알라딘은 물론 리디북스에서 공짜로 받을 수 있다) 열린책들 출판사에서 세계문학전집 어플을 런칭할 때, 『그리스인 조르바』를 무료로 공개한 것처럼, 시리즈 16권을 홍보하고 소개하는 목적이라고 한다. 즉, 아직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를 접해본 적이 없는 독자라면 부담 없이 공짜로 먼저 『보르 게임』을 살펴보고 시리즈에 빠져도 좋을 듯하다. 물론 『보르 게임』만 읽고서는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이나 재미를 느끼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일단 시리즈의 첫 권 느낌을 주는 것은 아무래도 『전사 견습』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 이 시리즈를 맛보려는 독자라면 『전사 견습』과 『보르 게임』을 함께 보고 난 뒤에 결정해도 좋을 것이다.
『전사 견습』에서 마일즈는 뛰어난 화술로 몇 명이서 용병단 하나를 통째로 집어 삼켰고, 덴다리 용병대로 만들었다. 신체는 태아에 있었을 때 어머니가 독가스를 흡입한 탓에 기형이지만,(자세한 내용은 『바라야 내전』에서 묘사된다) 천재적인 두뇌와 재치, 화술로 사람들을 조정하는 능력은 이 시리즈에서 마일즈에 빠져드는 재미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마일즈의 뛰어난 능력은 누구나 인정할만 하지만, 지휘관 적인 역할에 어울리는 마일즈에게 문제 있는 상관을 두면 트러블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점이 『보르 게임』 전반에 걸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문제다. 마일즈는 사관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그런 문제 때문에 우주선에 배치되지 못하고 척박한 외딴 곳에 기상 관측관으로 배치된다. 비유하자면 북극 기지에 배치된 셈이다. 마치 유배된 모양새다.
6개월만 말썽 없이 지내면 다른 곳으로 배치해주겠다는 것이었지만, 당연히 일은 그렇게 순탄하게 흐르지 않는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계속 사건이 터지고, 이를 수습하는 주인공의 활약에 잘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스토리텔링이 뛰어나다는 소설, 이야기성이 강하다는 소설은 하나같이 지루하고 평이하게 이야기가 흘러가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온갖 불행은 다 몰려든 것처럼, 연속으로 사고가 터지고 도저히 풀 수 없는 사건과 맞닥뜨리게 한다. 흔히 주인공을 굴린다고 하는 바로 그런 것이다.
마일즈 역시 심각하게 문제의 연속에 노출된다. 사병들의 장난에 목숨까지 뺏길 뻔하고, 이상한 성격의 상관 때문에 병사들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자 기지를 발휘해서 사건을 해결한다. 그러는 과정 속에서 마일즈 역시 징벌을 받게 되고 이번에는 다른 행성에 가게 되는데 여기서도 끊임없이 사건과 운명의 장난에 빠지게 된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우연이 연속적이지만, 그 마일즈 특유의 사건을 불러오고 해결하는 행운이 이 소설의 특징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그런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사건의 연속 속에서 마일즈의 빠른 상황 판단과 사건을 역전시키는 재치를 보는 것이다. 돌파구가 없는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마일즈는 역시 심리적으로는 좌절하고 절망하면서도 최선의 결과를 계산해내고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의 역량을 끌어올리며 작전을 짠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독자들은 기형이면서도 능청스러운 구석도 있고, 불의에 저항하는, 지혜로운 마일즈를 절로 응원하게 된다. 마침내 사건이 해결되고 에필로그를 맞으면 같이 안심을 하면서 기쁨을 나누게 되는 소설이다.
처음에는 우주에서 펼쳐질 모험을 기대하고 읽는데, 마일즈가 소위로 임관되면서 기상 관측관으로 가게 되자 황당함을 느끼게 되고, 거기서 벌어지는 사건도 기대와는 달리 펼쳐지면서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우주로 배경이 넓어지면서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가속도를 띄며 처음에 연관 없어 보이던 기상 관측관으로 부임했을 때의 이야기가 후반에 다시 결합되면서 대단원으로 가는 장면은 이 이야기가 우연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작가가 전체적인 이야기를 잘 짜고 진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령관에게 명령 불복종을 하면서까지 병사들을 구하려고 했던 마일즈의 결단은 결코 젊은이의 치기 같은 게 아니었으며, 아버지도 자랑스러워할 만한 결정이었고, 또 마일즈의 판단이 옳았음은 결말부에 다시 확인된다. 그 척박한 기지에서의 일이 결국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다. 군대에서의 고문과 의문사 문제를 우주에서의 인연으로 연결시켜서 이야기를 풀어나간 것이다.
물론 이 소설의 장점은 사건이 부풀어오르는 점에 있다. 『전사 견습』에 이어 『보르 게임』도 마찬가지로 사건이 우주 전쟁으로까지 커지고 마일즈는 다시 네이스미스 제독을 부활시킨다. 기형의 몸을 가졌지만 그만큼 나이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서 네이스미스 제독을 연기하는 부분에서는 역시 재미있다. 사람들을 선의의 거짓말로 속여서 덴다리 용병대를 재정비하는 부분, 결국 우주 전쟁에서 활약하는 지점은 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정이 가게 조형된 다양한 인물들도 이 소설의 매력이다. 강인하고 명석하지만 또 아들 걱정과 사랑이 가득한 아랄 보르코시건은 어떠한가. 소설 곳곳에서 인용되는 아랄 보르코시건의 말들은 모범적인 전략가로서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