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술집이 문 닫을 때] 잡담

2024.07.07 14:15

thoma 조회 수:239

즐겁게 읽었습니다. 주인공이자 화자인 스커더가 80년대 중반에 10년 전인 70년대 중반을 회상하는 식으로 되어 있어요. 그때는 내가 술에 쩔어지내던 시절이었지, 그때 가장 많이 드나들던 술집 세 곳이 있었는데 이 술집들을 둘러싸고 일어난 일에 대해 썰을 풀어 볼까, 라는 것인데 자신의 십 년 전을 돌아보면서 더불어 뉴욕의 십 년 전과 현재(80년대 중반)의 변화한 모습과 떠나간 사람들을 서술하며 뭔가 향수어린 마음을 갖는 정서가 있습니다. 술집이 세 개, 사건도 세 건인데 술집 두 곳은 사건 장소이기도 하고, 한 곳은 스커더의 아지트이면서 중요한 인물과 만나게 되는 술집입니다. 가까이에 있는 술집들이라 서로가 아는 인물들이 얽혀 있고요. 책 제목은 노래 제목이라 '라스트 콜'이라는 노래의 가사 일부라고 합니다.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조건으로 뭐니뭐니해도 이런 소설에선 주인공에 대한 믿음과 호감이 중요합니다. 사건이 어떤 식으로 시작되어 펼쳐지고 해결되는지가 나무의 기둥 줄기라면 주인공은 그 위의 무성한 이파리처럼 바람이나 햇살에 춤추기도 반짝이기도 해줘야 되는 거 같습니다. 지난번에도 썼는데 주인공은 전형적입니다. 원래 형사였지만 어떤 계기로 그만두고 술에 빠져 산다는 게 읽기 전부터 많은 걸 말해 줍니다. 보통 이상의 도덕성이나 양심이 있는 사람이겠고 나쁜 사건 이후로 혼자 단출하면서 무절제하게 살 것이라 예측되고 그 와중에 여차하면 수사의 기본을 갖춘 동네 능력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거요. 보통 이런 인물은 술이나 고립된 생활 등으로 자신에겐 무절제한 가혹함을 휘두르지만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신중하고 축소지향의 삶을 살지요. 하지만 본의와 상관없이 사람들 문제에 얽히게 되고 신뢰와 원칙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사건에 개입하게도 됩니다. 

돈, 돈이 중요한데 무자격 탐정인 스커더는 자식들을 위해 부정기적으로 송금하는 돈, 술값, 숙식비는 주변에서 알음알음 들어온 일거리를 호의로 처리해 주면 알아서 적당히 주는 보수로 해결합니다. 얼마나 받아서 이런 일상 경비 처리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미래를 대비한 여윳돈 꿍쳐두지 않고 말끔하게 써버린다면 가능한가 보죠. 이 소설의 사건 처리로는 쏠쏠하게 받네요. 입성은 아직 형사 때 걸로 그럭저럭 유지가 되는 거 같고요. 계속 이렇게 산다면 교회 계단에 앉아(누워) 있는 중독자 꼴 되기 십상이라는 언급이 나오기도 합니다. 돈 얘기 연관해서 이 작품 주인공만의 특징을 소개합니다. 교회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하네요? 마치 마르틴 베크가 심심하면 부두로 가서 배구경을 했던 것처럼 스커더는 구교, 신교, 특정 종파 따지지 않고 동네 교회나 지나다 마주치는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멍하게 있곤 하는데, 조용한 특유의 분위기가 좋다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수입이 생길 때면 십분의 일을 헌금함에 넣고요.  


스커더와 가깝게 지낸 술집 운영자 스킵이 잊고 싶은데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으며 확실하게 잊고 싶을 뿐이라는 내용의 대사를 합니다. 참 이거 어렵죠. 쉽게 해결하려고 덤비면 부작용에 영영 잊을 수 없게 되고요. 결국 이 인물은 그러기 위해 나쁜 방법을 쓰고 결과도 안 좋아요.

스커더는 자신의 고통스런 기억을 나쁜 방법을 쓰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다스렸으리라, 소설이 십 년 전의 일을 회상하는 내용이니 계단에 널부러져 있는 중독자가 되지는 않았으리라 짐작하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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