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듀나리뷰랄라랄라] 요술

2010.06.10 21:46

DJUNA 조회 수:4552

[요술]이라는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관객들은 무대가 되는 예술학교의 사실성을 따지는 것은 무익하기 짝이 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현실세계에서 이런 학교는 존재할 수 없거든요. 나이 든 교장을 제외하면 교사들은 아예 없는 것이 분명하고, 학생들은 오로지 뉴에이지 음악에만 몰두하는 곳이지요. 시대나 공간적 배경을 밝히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익합니다. 여러분은 그냥 이 세계가 자기만의 논리와 법칙으로 움직이는 평행우주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셋입니다. 첼리스트 정우는 자기가 제2의 요요마쯤 된다고 생각하는 학교짱인데, 이런 이야기의 학교 짱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한 없이 불쾌한 아이입니다. 지독한 자기도취에 빠져있고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걸 모르죠. 정우에게는 친구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그가 하인처럼 부리고 모욕하는 버릇이 든 소심한 안경잡이 첼리스트 명진이고, 다른 하나는 둘 사이에서 어장관리를 하고 있는 지은이라는 피아니스트입니다. 전 이들이 영화 내내 불행한 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우야 원래 그런 놈이니 어쩔 수 없다고 해도 명진이나 지은은 탈출구가 있었지요. 정우랑 안 놀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정우 곁을 돌면서 그가 그들의 등을 지려밟고 가게 허락합니다. 하긴 매저키스트도 자기가 선택해서 되는 건 아니긴 합니다. 


영화 이야기의 기본틀은 불치병 삼각관계입니다. 정우는 손의 상피세포가 떨어져나가고 가끔 피를 토하는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명진은 지은에게 감정을 품으면서 친구를 배신하고 있다고 느끼고, 지은 역시 비슷한 죄책감에 괴로워합니다.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이들의 죄책감은 자기파괴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가 너무 지나치기 때문에, 이야기만을 떼어놓고 보면 좀 어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까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요술]의 세계에는 자기만의 논리가 있습니다. 이 세계는 이런 감정과 그에 기반하는 감수성이 목숨보다 더 중요한 곳이에요. 그냥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해요. 여러분이 [트와일라잇] 세계의 모든 수컷 괴물들이 벨라 스완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대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요술]의 심리묘사도 받아들일 수 있을 겁니다. 이건 그냥 장르 소통의 문제인 것입니다. 


이야기는 단순하고 러닝타임도 짧지만, 영화의 구조는 약간 복잡하고 혼란스럽습니다. 이야기가 정리되려면 시간이 걸리죠. 하긴 이 이야기를 단순하게 그리는 건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면 빈약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만 남으니까요. 그 이야기를 재료로 여벌의 의미를 창출해야 합니다. 이건 소위 '하이 아트'의 논리이기도 하지만 순정만화의 논리이기도 하죠. 전 이 영화를 보면서 70년대 순정만화들이 떠오르더군요. 목표나 접근방식이 비슷합니다. 


영화가 우리에게 선사하는 공간적 배경은 예상 외로 설득력이 있습니다. 일종의 판타지적인 현실성이죠. 영화가 추구하는 아날로그 풍 복고는 우리의 과거와 직접 연결되어 있지 않은 허구의 것이지만, 그래도 그 세계 안에서는 묘한 무게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종종 예쁘기도 하고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초현실주의와도 어울립니다. 오로지 뉴에이지 스타일로 도배된 음악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그런 세계려니 하고 들으세요. 배우들의 연기는 비교적 잘 통제되어 있으며, 대사들은 (노골적으로 관객들의 닭살을 돋게 하는 종류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발목을 잡지 않습니다. 


[요술]은 제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러기엔 둘 사이의 갭이 너무 크죠. 전에 말하지 않았나요. 전 십대 때도 십대 문화를 온전히 이해했던 적이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세상엔 저보다 이 영화를 더 잘 소비할 수 있는 관객들이 있을 겁니다. 그들이 얼마나 되고, 그들이 이 이야기를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타등등

감독 카메오가 있습니다. 몰랐는데, 감독과 주연여자배우의 실루엣이 은근히 닮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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