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9.14 23:02
[라이미]는 스티븐 소더버그가 20세기 끝무렵에 만든 영화인데, 제가 계속 놓쳤습니다. 그리고 2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지요.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지만 영국인이 주인공인 영화입니다. 소더버그는 각본을 쓸 때 마이클 케인을 염두에
두었다지만 영화에서는 테렌스 스탬프가 주연입니다. 하여간 스탬프가 연기한 윌슨은 얼마 전에 감옥에서
나온 직업범죄자인데 딸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날아갑니다. 윌슨이 생각하기에
딸은 살해당했고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딸의 남자친구였다는 발렌타인이라는 남자입니다. 그리고 그
역은 피터 폰다에게 돌아갔지요.
러닝타임 1시간 29분의 짧은 영화입니다. 그리고 속도감이 상당해요. 짧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윌슨이
깊은 갈등 따위는 없고, 사람 목숨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윌슨은 이미 미국에 와 있고 몇 분 지나기도 전에 첫 번째 살육이 일어납니다. 관객들이 직접 보지는
못하지만요.
윌슨은 갈등은 없지만 고민은 있는 사람입니다. 딸에게 좋은 아버지가 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고
이는 여러 차례 회상과 대화를 통해 꼼꼼하게 묘사됩니다. 사람 죽이는 것에 거리낌이 없는 직업
범죄자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의외로 다정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딸의 복수를 위해 온 며칠 동안
윌슨은 딸과 알고 지냈던 두 사람과 친구가 됩니다. 그 사람들도 곧 떠나거나 죽을 사람이라
그렇게 마음을 열어주었던 것 같지만요.
노인네들의 이야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1960년대 말의 짧은 기간 동안 전성기를 보냈고 그 뒤로
그렇게까지 나이를 잘 먹지 않은 남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스탬프와 폰다의 캐스팅은 여기에 완벽하게
어울립니다. 20여년의 세월이 지나 영화가 그린 90년대 말이 더 과거가 된 지금은 그 흘러간 세월이
더 애잔해보입니다.
윌슨은 60년대의 남자이기도 하지만 영국인이기도 하고, 이 사람의 영국적 특성은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예를 들어 윌슨이 코크니 슬랭으로 긴 대사를 읊는데 상대 미국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설정은 꾸준히 반복되지요. 한국인 관객들은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만.
조금 재미있는 편집을 쓰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직선으로 진행되지만 종종 화면과 대사가 일치하지
않고 컷들이 시간여행을 합니다. 익숙해지면 그렇게 헛갈리지 않고 재미있긴 합니다.
(22/09/14)
★★★
기타등등
윌슨의 젊은 시절 회상 장면을 위해 켄 로치의 [Poor Cow]의 클립을 쓰고 있습니다.
감독:
Steven Soderbergh,
배우:
Terence Stamp,
Lesley Ann Warren,
Luis Guzmán,
Barry Newman,
Peter Fonda
IMDb https://www.imdb.com/title/tt0165854/
Naver https://movie.naver.com/movie/bi/mi/basic.naver?code=2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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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스티븐 소더버그와 각본가 렘 돕스가 DVD를 위해 녹음했던 음성 해설은 아직도 전설입니다. 각본에 담긴 내용 상당 부분을 날려 버린 결과물에 실망한 돕스는 음성 해설 내내 사정 없이 소더버그를 비판합니다. 소더버그는 물러섬 없이 자신을 변호하고요. 하지만 둘의 격론은 인신공격 수준으로 치닫는 법 없이 영화 창작 과정에서 감독과 각본가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생산적인 논쟁으로만 남습니다(예를 들어 "첫 번째 살육" 장면을 인상적으로 만드는 카메라 위치는 소더버그가 아니라 돕스가 시나리오에 지시해 둔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요). 돕스는 [라이미] 이전에 소더버그의 [카프카] 각본을 썼고 그 영화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는데, 두 번의 실망에도 아랑곳 않고 [헤이와이어]에서 소더버그와 세 번째로 함께했습니다. 세 번째 결과물에는 만족했다는군요.
시공간을 뒤섞는 편집 방식이나 무뚝뚝하고 세월에 뒤떨어진 남자의 복수극이라는 점에서 [라이미]의 직계 선조는 [포인트 블랭크]입니다: http://www.djuna.kr/movies/point_blank.html 소더버그는 존 부어맨과 함께 [포인트 블랭크] DVD에 음성 해설을 녹음한 적도 있지요.